▲ 삼성본관과 이종왕 법률고문(얼굴). | ||
기존의 구조본 인원 147명은 전략기획실로 재편되면서 99명으로 줄어들었다. 구조본 시절 1실 5팀(법무실 재무팀 경영진단팀 기획팀 홍보팀 인사팀) 체제는 3팀(전략지원팀 기획홍보팀 인사지원팀)으로 축소 개편됐다. 구조본의 최고의결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는 전략기획위원회로 명칭이 바뀌면서 인원도 11명에서 9명으로 줄었다.
구조본의 이 같은 외형적 축소에도 과연 그 기능까지 축소된 것이냐에 대해선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평이다. 최고의결기구인 전략기획위원회의 수장은 구조조정위원회 시절과 마찬가지로 이학수 부회장이다. 그룹 내 주요계열사에 대한 감사 기능을 담당했던 경영진단팀은 재무팀과 합쳐져 전략지원팀으로 재편됐지만 여전히 각 계열사에 대한 감독 기능을 수행할 것이란 평을 듣는다. 구조본 2인자로 통했던 김인주 사장에 대한 ‘위상 격하’ 논란도 있지만 그가 전략지원팀장을 맡은 점 역시 계열사 감사기능이 크게 축소되지 않을 것임을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략기획실은 구조본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란 평이 나오기도 한다. 일각에선 이번 개편으로 구조본이 확실히 재무팀 위주로 재편됐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번 구조본 축소 개편에서 최고의 관심사는 법무실이었다. 구조본 산하에 있던 법무실은 지난해 국가를 상대로 한 각종 소송을 이끌면서 ‘삼성공화국’론의 빌미가 됐다. 지난해 법조계 유력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국가권력에 맞서는 삼성’을 뒷받침 하는 기구로 평가받기도 했다. ‘반 삼성’ 정서 확산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은 법무실은 이제 구조본에서 완전 분리됐다. 앞으로 ‘수요회’로 불리는 사장단협의회 산하기구로서 계열사 사장들에 대한 법률자문을 하는 것으로 역할을 제한한다는 것이 삼성 측 설명이다.
그렇다면 향후 삼성 법무실의 위상도 전에 비해 낮아지게 될까. 우선 전략기획실(구 구조본)과 법무실의 향후 관계형성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법무실 기존 인원 17명엔 변동이 없다. 법무실이 기존 구조본 조직에서 분리됐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곳에 사무실을 차린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향후 변동이 있을 수 있다”고 밝히지만 법무실 소속 인사들은 전과 다름없이 삼성본관 내 구조본 시절부터 사용하던 사무실에서 그대로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으로 알려진다. 직제상으론 분리됐지만 물리적으론 기존의 구조본 조직과 호흡을 같이 하는 셈이다.
지난 2월 7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대 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할 때 법무실은 향후 구조본에서 분리돼 특정 계열사에 편입될 것이란 관측을 낳은 바 있다. 해외업무 관련 법률 자문의 필요성이 큰 삼성물산이 법무실의 새로운 둥지가 될 것이란 예측도 나돌았다. 그러나 특정 계열사 소속이 되면 다른 계열사의 법률 자문을 해주는 것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이런 탓에 법무실 인원이 여러 계열사로 분산될 것이란 전망이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법무실 조직은 결국 ‘찢어지지 않고’ 유지됐다. 사장단 법률자문에 업무가 국한될 것이라고는 하지만 특수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룹 차원의 대외협력·로비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은 남아있는 셈이다.
법무실 수장인 이종왕 법률고문의 위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에 대한 유죄판결이나 ‘반 삼성’ 정서 확산으로 인해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고문에 대한 책임론이나 구조본 내 다른 팀과의 갈등설이 재계 전반에 퍼지기도 했다. 항간에는 ‘이 고문이 주머니에 사직서를 넣고 다닌다’는 미확인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이번 구조본 개편을 통해 이 고문의 입지는 일단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구조본 내 최고의결기구였던 구조조정위원회 11인에 이 고문의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개편 이후 구조조정위원회는 9명의 전략기획위원회로 축소 개편됐지만 이 고문은 김순택 삼성SDI 사장과 함께 새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 구조본 개편을 통해 기존의 재무팀과 경영진단팀은 전략지원팀(팀장 : 김인주 사장)으로, 기획팀과 홍보팀은 기획홍보팀(팀장 : 이순동 부사장)으로 통합 개편됐으며 인사팀은 인사지원팀(팀장 : 노인식 부사장)으로 재편됐다. ‘리틀 이학수’로 불리며 구조본의 2인자로 통했던 김인주 사장(전 구조본 차장)이 전략기획실 산하 3팀 중 1개팀의 팀장이 되면서 일각에선 ‘강등’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전략기획실 자체가 재무팀 위주로 재편됐다는 점, 3개 팀장들 중 최고의결기구인 전략기획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인사는 김인주 사장이 유일하다는 점 등을 들어 오히려 실세 자리를 재확인시켰다는 평도 많다.
기존의 구조조정위원회 11인 중 이윤우 부회장, 황창규 사장, 최도석 사장(이상 삼성전자), 배정충 사장(삼성생명)이 전략기획위원회 9인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은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동시에 순환지배구조의 핵심을 이루는 계열사란 점에서 이들 4인의 누락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지난해 ‘반 삼성’ 정서 속에서 핀치에 몰렸던 것으로 평가받은 이종왕 고문은 전략기획위원회 합류로 인해 주요 계열사 사장단보다 ‘외형적 입지’에서 일단 앞서게 됐다는 평이다.
재계에선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관련한 현안들이 법률적 문제와 얽혀있기 때문에 기존 법무실 조직에 크게 손을 대지 않은 것으로 평하고 있다. 지난 2월 7일 삼성의 8000억 원 사회 헌납 발표 이후 지금까지 자금 사용 주체와 용처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삼성그룹이 구조본 때와 마찬가지로 전략기획실 중심의 경영을 펼치면서 내실을 기하는 동시에 ‘구조본 개편’이란 이벤트를 만들어 화제몰이를 해나가려는 것이란 평도 나온다. 5월 지방선거와 6월 월드컵 시즌까지 ‘대 국민 사과성명’에 대한 후속조치를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그 사이에 에버랜드 관련 재판도 매듭짓고 ‘반 삼성’정서도 희석시키려할 것이란 관측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