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과 여고생의 파격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 <은교>가 흥행을 거두며 노인의 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콜라텍에서 나오는 노인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5월 10일 기자는 영등포시장 로터리 일대에 위치한 콜라텍거리를 찾았다. 이곳은 대한민국 노인들의 유흥문화 1번지로 잘 알려져 있다. 단돈 2000원 만 내면 입장이 가능한 극장식 콜라텍과 카바레가 몰려있는 이곳은 외로운 남녀 노인들의 쉼터와 같은 곳이다.
5호선 영등포시장역 인근은 삼삼오오 모인 노인들이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수십 명의 노인들이 한 곳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다. 그런데 일반적인 우리네 부모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하와이언 셔츠와 백구두로 멋을 낸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5㎝는 족히 넘을 것 같은 하이힐에 짙은 화장도 모자라 뿔테 선글라스까지 걸친 할머니도 눈에 띄었다.
몇몇 노인들은 벌써부터 자신의 짝을 찾아 두 손을 마주잡고 있었다. 전혀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콜라텍거리로 이어지는 역사 2번 출구 앞에서 만난 70대 김 아무개 할아버지는 “이제 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충분히 즐기러 왔다. 거의 매일 콜라텍을 찾고 있다. 아직 춤은 서툴지만 부킹으로 만난 여자친구를 보기 위해 나온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얼마 전 영화 <은교>를 봤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현실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얘기지? 도덕이라는 것도 있는데. 하지만 그 마음만은 이해가 간다. 그 대상이 여고생이라는 게 문제지만 늙어도 본능이라는 것은 있으니까. 젊은 애들은 욕할지 모르지만 늙어도 남녀가 만나 사랑하는 건 당연한 얘기다. 여자를 만나 데이트도 하고 마음만 맞으면 잘 수도 있는 거다. 콜라텍 거리에 나온 많은 노인들이 짝을 찾아 춤을 추다 근처 소줏집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또 그러다 잘 되면 인근 여관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자신의 사랑관에 대해 무척이나 당당해 보였다.
시장 로터리를 끼고 쭉 늘어선 콜라텍 주변에서는 ‘100% 부킹 성공’이라는 문구가 선명한 전단지를 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노인 몇몇이 눈에 띄었다. 흥겨운 뽕짝음악이 흘러나오는 콜라텍 입구 앞에서 한 무리의 노인들은 만남 주선을 앞두고 작전을 짜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한 커플은 만남에서 성공한 듯 근처 영등포 시장에 늘어선 소줏집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이곳 노인들은 춤을 추다 지치거나 만남에 성공하면 저렴한 안줏거리가 있는 시장 내 소줏집으로 자리를 이어간다.
근처 소줏집에서 만난 한 60대 커플은 교제 6개월째라고 전했다. 콜라텍 근처 댄스교습소에서 만났다는 이들은 “자식들만 허락하면 동거를 하고 싶다”며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남성은 “나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지금 혼자 살고 있다. 기회만 되면 합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데 역시 자식들 눈치가 보인다. 자식들이 여자친구가 있는 것은 알지만 동거 얘기까지 꺼내기는 어렵다. 요즘 우리 또래에서는 황혼결혼보다는 서로 마음만 맞으면 부담이 없는 동거를 택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앞에서 ‘자식’이라는 현실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제일 물 좋기로 소문난 Y콜라텍 앞 벤치에는 수많은 노인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성들 사이에서 음료수병을 들고 뭔가 얘기를 하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60대 초반 남짓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한 남성에게 5000원을 받고 두유 한 병을 건네고 뭔가를 계속 권하고 있었다. 일명 ‘박카스 아줌마’라 불리는 고령의 성매매 여성이었다. 이곳에 온다고 모두 파트너를 찾는 것은 아니다. 콜라텍 주변에서는 이처럼 욕구 해소를 위해 빈번히 성매매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노인들은 황혼의 마지막 불꽃을 유감없이 불태우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만 사랑을 탐닉한 영화 속 주인공 이적요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다. 자식 때문에 동거를 망설이고 있다는 소줏집 노노(老老) 커플을 통해서는 여전히 젊은 세대들이 노인들의 성과 사랑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감춰진 욕구는 ‘성매매’라는 비정상적인 루트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 심훈보 팀장은 “노인들의 성생활과 이성교제에 대해 이제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거보다는 어느 정도 인식이 변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 센터에도 노인분들이 성과 이성문제에 대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꽤 많다. 노인도 젊은 세대 못지않게 성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상담 내용 또한 성관계, 성 기구 및 약품 사용, 이성교제 등 다양하다. 또한 자녀들이 늙은 부모의 성생활을 이해 못해 갈등을 겪는 노인들도 상당히 많다. 단순히 물리적 나이 때문에 사랑의 욕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젊은 세대들도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남친 만나니 죽은 남편에 죄책감”
서울시 어르신상담센터가 본지에 제공한 노인들의 성 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노인들이 안고 있는 성에 대한 고민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다음은 그 몇 가지 사례다.
▲남친을 만나는 것이 죽은 남편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요.
70세 여성 A 씨는 남편과 사별한 지 4년 만에 20세 연상의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A 씨는 남자친구와 성적 접촉을 하는 것에 대해 깊은 죄책감에 빠졌다. 더군다나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지나친 도덕적 통제 때문에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경우였다. 실제 많은 노인들이 이러한 도덕적 관념 때문에 자연스러운 본능을 숨기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욕구를 들어줄 수 없어요.
71세 여성 B 씨는 성관계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 고민하는 경우였다. 호르몬제 처방도 소화기 장애로 어려웠다. 센터는 B 씨에게 단순한 삽입관계뿐 아니라 스킨십과 다른 방법으로 성적욕구를 채울 것을 조언했다. 노인 부부 사이의 원활하지 못한 부부관계에서 오는 고민사례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