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증권가 주총의 최대 관심사는 KDB대우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다. 이른바 ‘친 이명박’인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회장이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는 곳이다. 현 정권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다 보니 이들 ‘회장님’들의 거취 역시 다음 정권 초 갈릴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다.
자연스레 산은·우리 계열 두 증권사 사장 교체 여부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빅3’의 다른 한 곳인 삼성증권은 지난 연말 삼성그룹 인사에서 박준현 사장에서 김석 사장으로 교체가 이뤄졌다. 일단 우리투자증권은 황성호 사장의 연임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팔성 회장이 이미 한 차례 연임을 한 처지이다 보니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 회장도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따라서 우리투자증권 사장도 ‘1년짜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증권업계 고위관계자는 “중견 자산운용사 출신인 황 사장이 대형 증권사인 우리투자증권의 사령탑에 오른 데는 현 정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고려대 경영학과 인맥이 큰 힘이 됐다”면서 “우리투자증권 사장에 정치적 영향이 컸다는 뜻이다. 이는 달리 말해 이번 주총에서 선임될 사장의 임기가 1년밖에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대우증권은 사령탑 교체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통상 5월 말에 열리던 주총이 6월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새 사장 인선작업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현 임기영 사장은 강만수 회장과 ‘라인’이 다르다. 강 회장은 자기 사람을 두고 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남의 사람인 임 사장을 끌고 갈 이유가 적다”면서 “게다가 임 사장 임기 동안 경영성과가 좋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한 듯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 임원 비리 의혹이 불거지는 등 연임을 추진하던 임 사장의 움직임에 힘이 떨어지기도 했다.
대우증권의 경우 그동안 ‘대우 출신’ 사장 때 조직력이 극대화됐다는 점에서 현재 거론되는 후보들은 모두 대우증권 출신이다. 다만 내부승진이냐, 외부로 나갔던 대우맨의 유턴이냐를 놓고 막판 진통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이나 대우증권에 비해 외형은 작지만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신증권의 사장 교체도 꽤 전격적이다. 창업자인 고 양재봉 회장의 둘째 사위인 노정남 사장이 퇴진하기로 하고, 대신 전문경영인인 나재철 부사장에게 대표이사를 맡길 예정이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창업자의 며느리이자 현재 공동 대표이사인 이어룡 회장의 아들 양홍석 부사장이 등기임원에 선임된 점이다. 나재철 대표이사 부사장-양홍석 부사장의 ‘투톱’ 체제를 갖춘 셈이다.
대신증권은 소매영업 분야에 치우치면서 한때 업계 ‘빅5’였던 외형이 10위권까지 추락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사업모델을 기업금융과 투자은행(IB), 자산관리 등으로 확장하며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나 부사장은 이 작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변화의 성과가 나올 때인데, 양 부사장에게 그 공을 돌리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다. 대표이사직은 나재철 부사장이 수행하지만, 양 부사장이 파트너로서 경영을 함께하게 되면 경영성과에 대한 공을 공유할 수 있다. 만약 경영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책임은 대표이사인 나재철 부사장이 더 크다는 점도 감안됐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신증권은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낮아 뚜렷한 경영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경영권이 도전 받을 가능성이 큰 곳”이라며 “양 부사장의 치적을 최대한 부각시켜 낮은 지분율로도 회사 전체를 경영할 만한 명분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 3월 사장이 바뀐 현대증권을 포함해 5대 증권사(삼성, 대우, 우리투자, 현대, 한국투자) 가운데 3곳의 사장이 바뀌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미소 짓는 이가 있다. 바로 한국투자증권 유상호 사장이다. 한국증권은 지난 회계연도 증권업계 순이익 1위를 기록하면서 유 사장의 연임을 일찌감치 확정했다고 한다.
대우증권, 메리츠증권을 거쳐 옛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 합류한 유 사장은 오너인 김남구 부회장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옛 동원그룹과 동원증권 출신들의 견제가 끊임없이 이뤄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업계 최고 순이익 이라는 경영성과를 무기로 사실상 연임에 성공했다.
사장 교체 바람은 5대 증권사뿐 아니다. 이미 미래에셋, 신한금융투자, 동양, 하나대투, NH투자증권 등도 사장이 교체됐거나 주총을 통해 교체될 예정이다. 김신 대표의 현대증권 사장 행으로 차석인 변재상 대표가 임명된 미래에셋증권을 제외하면 예상 밖의 인사가 대부분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올 초 2004년 이후 무려 8년여 만에 은행 출신이 아닌 강대석 사장을 선임했다. 강 사장은 이전 마지막 증권맨 출신 사장인 도기권 사장 시절 부사장으로 호흡을 맞춘 인물. 4대 금융그룹 가운데 가장 내실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신한이지만 유독 증권부문에서는 업계 상위로 도약하지 못하자, 과점 체제로 비교적 손쉽게 돈을 버는 은행식 경영마인드로는 증권사를 경영할 수 없다는 점을 신한금융이 인정한 셈이다.
동양증권은 그동안 현재현 그룹 회장의 측근들이 대거 나가고 파격적인 인물을 영입한 경우다. 전상일 동양증권 부회장은 NH투자증권 사장에 내정됐고, 유준열 동양증권 사장은 물러난다. 대신 1960년생인 이승국 현대증권 부사장이 전격 영입됐다.
한편 현역 최고령 사장인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은 6월 임기를 마친 후 퇴임이 확정됐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물러나면서 그룹 차원의 세대교체에 김 사장이 퇴임을 자처했다는 후문이다. 후임으로는 하나금융그룹 내 임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