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조만간 세무조사를 받을 것’이란 소문이 계속해서 나도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계열사인 탓에 이를 둘러싼 갖가지 추측도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삼성전자에 대한 세무조사 소문은 지난해 말에도 등장했던 바 있다. 2004년에 삼성SDS, 2005년에 삼성코닝 등 주요 계열사들이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세무조사 실시 여부가 관심사로 불거졌지만 결국 무위로 끝났다.
그런데 얼마전 <머니투데이>가 ‘삼성전자가 곧 세무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삼성전자가 다시금 화제에 오르게 됐다. 이 보도 직후 국세청은 세무조사 실시 여부에 대해 ‘조사인력과 업무량 등을 감안하여 지방국세청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사항으로서 현재로서는 확정된 바 없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삼성전자가 올 납세자의 날(3월 3일)에 ‘국세 1조 5000억 원 탑’을 수상하지 못한 점이 이번 세무조사 실시와 무관하지 않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국세청은 ‘관련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무당국이 특정 법인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할 경우 이를 사전통보해주기 마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세무당국으로부터 세무조사 관련 통보를 받은 적 없다”고 밝혔다.
국세청 관계자는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이 세무당국을 믿고 자료를 다 맡기는데 이들에 대한 세무조사 실시 여부가 미리부터 공개된다면 기업들의 세무당국에 대한 신뢰가 깨질 것”이라 밝혔다. 세무당국 안팎에선 ‘입이 있어도 말 못한다’는 이야기가 격언처럼 나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세무조사 실시 가능성은 여전히 재계의 관심사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10년간 세무조사를 받지 않은 점이나 최근 몇 년간 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세무조사를 받아 일각에선 ‘이젠 삼성전자 차례’라는 말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8년과 2002년 금탑산업훈장, 2004년에는 업계 처음으로 국세 1조 원 탑을 받는 등 성실납세기업으로 자리를 굳혀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전자의 세수기여도가 높았기 때문에 세무조사를 받지 않은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업계의 한 인사는 “삼성전자가 세무조사에 대비해 충분히 준비를 해뒀을 것”이라 전망한다. 업계 인사들 사이에서 삼성은 특정 상황을 설정해 놓고 자체 방어 매뉴얼을 가동시키는 식의 ‘모의 실험’을 자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업계 인사는 “삼성전자 내부에서 세무조사 실시를 상정한 ‘실험’을 해보고 만전의 준비를 갖춰놨을 것”이라 지적한다. 삼성전자가 높은 세수기여도를 인정받는 상황에서 세무조사를 맞닥뜨릴 경우 삼성전자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될 것이란 관측도 등장한 상태다. 즉, 하나마나 한 세무조사가 될 것이란 관측이 업계에 확산되고 있는 것.
주요 대기업에서 정보수집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 사이에선 ‘이미 세무당국이 삼성전자 측에 세무조사 실시를 통보했으며 삼성전자가 준비를 끝낸 상황’ ‘삼성전자가 세무당국측에 요청해 최소한의 선에서 세무조사가 실시될 것’이란 내용들이 나도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세무조사 논란을 정치적 논리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삼성그룹에 대한 정치권과 법조계, 시민단체 등의 날카로운 시선이 몰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세무조사를 ‘훌륭하게’ 마무리할 경우 이는 곧 삼성그룹 대표 계열사의 대외 이미지를 상승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배구조 문제 등으로 수세에 몰린 삼성그룹이 삼성전자에 대한 세무조사로 인해 자칫 대외적으로 부정적 이미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세무조사가 ‘잘 끝나면’ 삼성전자로선 오히려 ‘역시 성실납세기업’이란 소릴 듣게 될 것이다.
지난 2월 이건희 회장 귀국 이후 삼성은 8000억 원 사회 헌납을 결정했고 얼마전엔 삼성그룹 황제경영을 위한 친위부대로 여겨졌던 구조조정본부 축소 개편 방침을 발표했다. 지난해부터 조성된 ‘삼성공화국론’과 ‘반 삼성’ 정서를 희석시키기 위한 삼성의 전방위적 노력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는 삼성그룹의 대외적 이미지를 상승시킬 수도 추락시킬 수도 있는 셈이다.
타 기업 정보팀의 예상대로 삼성전자가 무난한 세무조사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 경우를 상정해 이를 정부와 삼성 간 물밑교감 차원에서 해석하는 업계 인사들도 있다. 삼성의 8000억 원 헌납 결정 이후 청와대와 여권 일각에서 이를 환영하는 의사 표시를 한 점이나 여권 주도하에 마련된 금산법 개정안이 삼성그룹에 지분구조를 조정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줬다는 점에서 정부-삼성 간에 교감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 재계 인사는 “삼성전자가 성실납세 기업으로 각인된 상태에서 굳이 세무조사를 한다면 이는 삼성이 가장 잘 치를 수 있는 시험문제를 당국이 마련해놨다는 것”이라 지적한다.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삼성그룹 측과 삼성전자 측은 “사실 무근”이라 못 박았다. 국세청 관계자는 “고위공직자들도 작은 실수로 인해 자리를 잃는 세상이다. 말도 안된다”며 세무당국-삼성전자 간 교감 소문을 전면 부인했다. 그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라는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