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나쇼핑몰의 대출을 알선해주고 금품을 챙긴 혐의로 김재록씨가 구속됐다. 사진은 부천의 투나쇼핑몰. | ||
문제의 건물은 N 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외환위기 후 경매물건으로 나와 모건스탠리를 거쳐 국내 한 부동산개발업체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대출알선이 일어난 것. 이런 쇼핑몰 분양에 얽힌 사건은 허다하다. 그런데 왜 내로라하는 정·관·재계의 인물들이 귀를 쫑긋거렸던 것일까.
그가 바로 김재록 인베스투스글로벌 고문이었기 때문이다.
외환 위기 후 그의 이름이 기아차 매각, 진로그룹 사태, SK그룹 사태, 대우차 매각서 들먹여진 것은 물론 현대차그룹과 고합그룹 컨설팅, 그 외 셀 수 없는 금융기관 인수합병전에 등장하던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거물이 뜻밖에도 ‘잡범’ 수준인 수억 원에 불과한 대출알선 혐의로 ‘꼬리’를 잡혔지만 그 여파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김 씨가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된 사건은 다음과 같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2001년 부천의 투나쇼핑몰이 우리은행으로부터 250억 원을 대출받도록 해주고 수고비 명목으로 2억 원을 받는 등 10억 원대 금품을 챙긴 혐의다.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측은 “2001년에 투나 측에 돈을 빌려준 적이 없다”며 김 씨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밝힌다. 은행 측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투나 측에 대출을 해준 것은 2005년의 일이다. 우리은행은 현재 투나쇼핑몰을 소유한 투나디엔씨에 15% 지분 참여를 하고 있는 상태다. 은행 관계자는 “2005년 투나 측에 325억 원을 부동산 담보 대출 형식으로 투입했다”며 “투나 측의 분양 사업 등이 수익성이 높다고 판단돼 지분 참여도 하게 된 것”이라 덧붙였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김 씨는 DJ 정부 시절 막후 실력자로 소문난 덕에 금융권 고위 인사들과의 친분도 두터웠다고 한다. 수사당국 주변에선 김 씨가 금융권 실세들을 동원해 대출건을 성사시켰을 것이란 관측이 나돌기도 한다.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대출 관련 업무에 외압이 절대 작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IMF 사태 이후부터는 실무팀이 여신 업무에 대한 검토 심사 작업을 벌일 때 최고경영진이 절대 간섭할 수 없으며 실무팀의 작업이 종료된 후 최고경영진에 결과가 통보되는 식으로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우리은행 측은 브로커 김 씨에 대해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못 박는다. 은행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정황상 2001년 김 씨가 우리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수고비만 가로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씨 관련 사건이 일파만파 커질 경우 은행 고위 관계자들의 이름이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은행 측도 잔뜩 경계하는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대출 브로커’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재록 씨는 우리금융의 최고위 인사는 물론 물론 DJ 정부 이후 경제부처 인맥의 핵심인사들과 두루 통하고 있다. 지난 1월 17일 우리금융그룹 자회사로 출범한 사모펀드 전문회사인 우리프라이빗에퀴티 출범식에서 그는 오호수 인베스투스 고문, 황영기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함께 나란히 테이프커팅 라인에 서기도 했다.
그가 처음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것은 1월 10일께다. 검찰의 수사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의 신변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 3월 10일.
인베스투스글로벌은 감사를 맡고 있던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하고 김재록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비상임고문으로 ‘회사 장기발전 전략 수립과 해외 투자가’들과의 전략적 제휴업무만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 회장이나 김재록 씨는 모두 DJ 정부에서 금감원장, 재경부 장관을 거쳐 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 전 부총리의 ‘사단’으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두 사람의 이름은 ‘이헌재 사단’이라는 뉴스마다 꼭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오 회장도 회장 취임 때 인터뷰에서 “인베스투스글로벌은 현대차 사업전략 수립 자문, 대우상용차 매각 등 기업인수합병 관련 업무 자문, 고합 쌍용차 등 워크아웃기업 구조조정 자문, 재정경제부 등 정부 부처 경영진단 등의 실적을 올렸고 현재 자회사인 인베스투스파트너스를 통해 우리금융지주 산하 우리프라이빗에퀴티와 함께 7000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 설립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재록 씨는 3월 23일 긴급체포됐다. 이어 3월 24일 김 씨는 부실기업 인수 및 대출 로비 명목으로 14억 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1월 중순부터 정·관·재계의 베일 뒤에서 벌어졌던 첩보전이 물밑 위로 올라온 것이다.
김 씨는 24일 오전에 있던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국민의 정부 시절) 금융감독원장에게 은행장 후보를 추천한 적이 있다”고 말하는 등 금융당국 전·현직 고위인사와의 친분관계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당국 고위인사 연루설에 대해서는 “그런 것 없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일각에선 그의 구속 타이밍을 놓고 말들이 많다.
1월에 벌어진 사건을 3월에야 본격 수사한 것은 그동안 검찰에서 윤상림 사건 등 대형 사건을 의식해 속도 조절을 하면서 이미 이번 사건의 본질을 상당 부분 파악하고 나서 터트린 것이 아니냐는 시각과 김 씨에게 현직 사퇴 등 두 달여의 ‘신변 정리’ 시간을 준 것은 이미 이 사건을 김재록 씨 ‘개인 범죄’로 방향을 정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그것.
검찰의 수사가 김 씨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국민의 정부 이후 빅딜과 기업인수합병전에 얽힌 뒷거래로 번질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이번 구속영장에서 대출 알선뿐만 아니라 기업인수합병 과정에서의 ‘청탁’까지 수사범위를 넓혔음을 공식화했다. 김재록 게이트가 지방선거와 향후 대선의 판도까지 바꿀 뇌관이 될지 정·관·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