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과 만난 최민식은 더할 나위 없이 후련해 보였다. 이번 종영 인터뷰가 ‘카지노’ 일정의 마지막이라고 말한 그는 만세를 부르며 “이제 나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소속사도, 매니저도 없이 활동 중인 그는 요즘이 휴식기나 다름없다며 ‘카지노’ 이후의 한가로운 일상을 만끽 중이라고 했다.
3월 22일 시즌 2로 막을 내린 ‘카지노’는 지난해부터 디즈니+의 기대작으로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 최민식의 25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라는 점도 그랬지만, 한 인간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그려낸 작품의 스케일도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지노’는 맨손으로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카지노의 제왕이 된 한 남자의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다. 최민식은 필리핀 뒷세계부터 정부까지 쥐락펴락하는 카지노의 제왕 차무식 역을 맡았다.
“무식이 단정적으로 그냥 나쁜 놈이기만 했다면 저는 안 했을 거예요. 설령 시나리오에 그렇게 묘사가 돼 있어도, 그렇게 표현되는 게 저는 싫어요. 100퍼센트 착한 놈, 나쁜 놈이 어딨어요? 다 양면과 다중적인 면모가 있죠. 제가 차무식에게 처음부터 주안점을 뒀던 건 ‘이건 평범한 놈이다’였어요. 아주 평범한 사람이 그렇게 모진 인생을 살고,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어찌어찌 살다 보니 흙탕물에 빠지기도 하는 것처럼 아주 평범한 한 사내의 족적을 보여주는 느낌으로 연기했죠.”

“아유, 이제 디에이징 그런 거 안 할래요. 과학 기술의 힘을 믿었다가 이렇게 됐잖아요(웃음). 얼굴은 어떻게 한다 쳐도 몸이 안 따라가는데 뭐 어떡해요. 안 돼요, 이젠(웃음). 사실은 30대 차무식 분량의 대부분을 (이)규형(20대 청년 차무식 역)이에게 센터링할까 했는데 강 감독이 ‘여기서부턴 형이 해야 해’ 그러더라고요. 그럼 어떡해요. 그냥 ‘모르겠다… 빨리 지나가라’ 이 마음으로 했지 뭐(웃음).”
사실 디에이징 기술의 어색함은 ‘카지노’를 보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기승전결이 전부 최민식으로 시작해 최민식으로 끝나는 이 작품의 특성상 그의 열연에만 집중한다면 문제될 건 아무 것도 없었던 덕이다. 다만 누구보다 용의주도하고 철두철미한 차무식이 시즌2에서부터는 조금씩 허술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너무나도 허무한 결말을 맞으면서 ‘캐릭터 붕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민식은 “차무식에게는 이 결말까지의 길이 가장 옳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결말에 아쉬움이 없어요. 초반에 저희 대사 중 ‘화무십일홍’,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게 차무식이란 인간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식이 마지막 만찬을 준비할 때 보면 테이블 위에 꽃을 장식하는데 그건 제가 미술팀에 부탁했던 거예요. 주변에 약간 시들시들한 꽃 없냐고 해서 하나 꺾어다가 장식한 거죠. 그게 (화무십일홍의) 그런 의미로 한 거였어요. 그래서 그런지 전 엔딩도 그냥 꽃잎이 떨어지듯 그렇게 느닷없이 가는 게 욕망으로 날뛰던 놈의 결말로 옳은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안 그래도 강윤성 감독한테 그걸 물어봤더니 나한테 오히려 반문하더라고요.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웃음). 제 생각엔 그거예요. 말 안 듣는 자식,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거. 차무식처럼 용의주도하고 거침없이 권력을 휘어잡는, 욕망을 위해 질주하는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빈틈이 양정팔이지 않았나 싶어요. 예쁜 짓은 하나도 안 하는 놈인데 내가 거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던 거죠. 살면서도 주는 것 하나 없는데 왠지 예쁜 놈 있고 괜히 싫은 놈 있고 그렇잖아요. 정팔이는 내가 본능적으로 챙겨주고 싶은, 좀 극단적일 수 있는데 강아지 같은 느낌이었던 거죠(웃음).”
그런가 하면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뽐내며 차무식과 끝까지 대적하는 고 회장 역할 이혜영과의 신경전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1999년 연극 ‘햄릿’에서 함께 공연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는 두 사람은 22년 만에 한 작품에서 재회하게 된 것이었다. 이 신기한 인연에 한 번,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본 이혜영의 연기에 다시 한 번 놀랐다는 최민식은 “꼭 이혜영과 중년 로맨스를 찍고 말 것”이라며 몇 번이고 강조했다.

“최민식이 코미디 영화를 하고 싶어 한다고 소문 좀 많이 내 달라”고 신신당부한 그는 자신의 최근 상태에 대해 ‘백수’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카지노’의 촬영을 마치고 바로 들어간 영화 ‘파묘’의 촬영도 최근 종료됐다며 당분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즐길 예정이라고 한다. 충분한 휴식을 하고 나면 또 다시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에너지가 충전될 것이란 게 그의 이야기다.
“차무식처럼 욕망이라기보단 작품에 대한 욕심은 늘 가지고 살죠. 제가 기대고 살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어디다 이력서를 낼 수도 없고(웃음). 자꾸만 좋은 작품을 하고 싶고, 다양한 작품,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욕망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바람이 있다면 이제는 자극적인 것보단 잔잔한 힐링을 하고 싶다는 것이죠. 가족끼리 이야기도 좋고 친구, 형제간 이야기, 굳이 무리하게 강요하거나 작위적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면서 겪는 따뜻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