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덕수 회장. 유장훈 기자 |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 기준으로 STX는 재계 13위(공기업 제외)에 올라 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소비재를 생산·판매하는 기업도 아니고 아파트 브랜드가 있기는 하지만 전국적인 유명세는 얻지 못하는 까닭에서다.
STX의 주력 사업인 조선·해운은 경기에 민감하다. STX는 2000년대 글로벌 경기와 조선·해운산업의 호황을 한껏 즐겼다. 2001년에 설립한 기업이 불과 10년 만에 재계 10위권까지 치고 올라간 것만 봐도 STX가 호황을 얼마나 만끽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 이후 찾아온 불황은 STX에 직격탄이 됐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지 못한 것이 독이 된 것. 이때부터 STX 주변에서는 수년간 유동성 위기설, 심지어 부도설까지 나돌았다. STX 측은 “그룹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부도설은 터무니없다”는 해명을 되풀이했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음으로써 강덕수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의 빛은 바랠 수밖에 없게 됐다. 샐러리맨 출신으로 인수·합병(M&A)을 통해 지금의 STX그룹으로 키운 강 회장은 재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했다. 법정관리 회사(옛 쌍용중공업)에 고작 20억 원을 털어 넣어 10년 만에 매출 30조 원 이상 그룹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M&A를 통한 가파른 성장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늘어나는 차입금과 금융비용이 감당하기 벅찬 수준이 된 것. 지난해 기준 그룹 전체 부채비율은 200%를 넘었다. 이제는 사들였던 것들을 재무구조개선약정에 따른 ‘자산 매각’이라는 이름으로 되팔아야 할 처지가 됐다.
▲ 서울 STX 남산타워. |
▲ 진해조선소 전경. |
재계 관계자는 “STX의 경우 그룹 내에 조선·해운·플랜트 사업을 전부 하고 있기에 정유업체를 인수했다면 시너지 효과도 상당했을 것”이라며 “국내에서 인지도도 높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STX도 정유사업 진출을 계속 시도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인천정유 인수전에서 SK에 고배를 마셨으며 2005년에는 ‘쌍용 프리미엄’이 기대됐던 S-Oil(옛 쌍용정유) 지분 인수전에서 한진에 덜미를 잡혔다.
잘나갈 때는 드러나지 않던 것들이 한 번 휘청거리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결과론일 수도 있지만 ‘무리한 확장에 따른 치명적인 후유증’이라는 강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도 그중 하나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이 사업을 펼쳐나가는 데 제약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바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마디로 채권단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보면 된다”며 “약정을 맺으면 더는 사업다각화나 M&A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귀띔했다. 이로 미뤄볼 때 STX가 애써왔던 사업구조 다변화는 힘들어질 전망이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STX가 계속 버티면서 사업구조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재무구조 안정에 더 무게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STX 관계자도 “사업 확장이나 변화보다 재무안정이 우선이라는 데 채권단 의견과 일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