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만 변호사 | ||
이는 후계자에 대한 사전 상속과정에서의 논란이 법정으로 번지자 삼성그룹이 법무실을 강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삼성공화국론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강화된 삼성 법무실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이후 법무실 책임론이 불거졌던 것처럼 현대차 법무실 역시 이번 파문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단 재계와 검찰가 안팎의 평가만 놓고 보면 현대차 법무실은 낙제점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현대차 법무실은 삼성에 비해 ‘질과 양에서 현격하게 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변호사 1~2명과 그룹 내 법대 출신 직원들로 구성돼 화려한 법조계 경력을 자랑하는 삼성 법무실에 비할 처지가 아니었다.
현대차가 법무실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지난해 6월부터다. 당시 현대차는 검사장 출신의 김재기 총괄상임 법률고문(사장급)겸 법무실장을 영입했다. 김 고문 영입시점부터 현대차는 그룹 경영지원본부 산하에 있던 법무팀을 법무실로 승격시켰다. 이후 인력을 보강해 국내변호사 5명, 국제변호사 3명, 그리고 기타 지원인력을 합쳐 30여 명의 진용을 꾸리게 됐다.
그러나 이 같은 법무실 강화는 결과적으로 검찰의 현대차 ‘급습’에 허를 찔리면서 빛이 바랬다. 검찰은 현대차 내부 제보자에 의해 이미 지난해 말부터 이번 사건을 준비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미 검찰 내 검사장급이나 차장급 간부들은 현대차 건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차 법무실은 검찰 수사인력이 현대차 사옥을 급습해 수색을 할 때까지도 이번 건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 내부에선 ‘현대차 법무실 고위인사가 현대차 사옥 수색 당일 골프를 치다가 뒤늦게야 일이 터진 것을 알았다’는 내용의 보고가 올라간 것으로 전해진다.
김재기 고문은 대검 공안과장과 공안기획담당관을 거친 ‘공안통’이다. 그의 경력상 대기업 비자금과 정치자금 수사를 전담하는 대검 중수부에 선을 대기 어려웠을 것이란 평이 뒤따른다.
현대차그룹은 법무실 조직 외에도 주요 계열사에 검찰 출신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 기아차는 서울지검 공안2부장과 서울고검 형사부장 출신인 신건수 변호사를, 글로비스는 이정수 전 대검 차장을, 현대제철(옛 현대INI스틸)은 법무부 장관 출신인 김&장의 최경원 변호사를 각각 사외이사로 두고 있지만 이들 역시 검찰의 이번 현대차 수사 라인과는 일정 부분 거리가 있는 경력의 인사들이다. 즉 정몽구-정의선 총수일가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현대차의 기존 법무라인은 큰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배경 탓인지 현대차는 내부 법무라인 대신 외부인력에 더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그동안 기존 법무실 외에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에 법률자문을 맡겨왔다. 김&장은 지난 2003~2004년 불법 대선자금 관련 재판 때도 변론을 맡은 적이 있다. 당초 검찰의 이번 수사와 관련해 재판이나 소송이 진행되면 법무실이 법적 대응을 맡고 김&장이 지원기능을 담당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후 법무실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김&장이 법률적 대응의 주체가 될 것이란 전망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의선 사장 구속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총수일가를 겨냥한 검찰의 칼날이 더욱 날카로워지자 현대차는 이 방면의 전문가를 찾아 나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선 이미 유재만 전 서울지검 특수부장이 현대차의 법률자문 역할을 맡을 것으로 소문이 난 상태다. 지난 3월 16일 개업한 유재만 변호사는 지난 1월 검찰 정기인사를 앞두고 검찰복을 벗은 인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사의 핵심을 맡았던 ‘특별수사통’으로 유명하다. 특히 지난 2003년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중수2과장을 맡아 현대차 부분을 수사했던 전력이 이채롭다.
지난 3월 16일 유 변호사 개업 당시 전현직 검찰 고위직 인사들이 대거 축하 방문을 해 법조계에서 그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법무실을 강화시키고도 사전 대응에 실패한 현대차가 과거에 현대차를 겨냥했던 ‘특별수사통’을 통해 검찰 내 기류에 재빠르게 반응하고 대처해나가겠다는 속내로 풀이된다.
특히 총수일가에 대한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현대차 법률대리인의 수사관계자 접촉과 물밑협상 등이 처벌수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현대차 저격수’ 유 변호사의 향후 역할에 법조계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유 변호사가 향후 현대차의 법률자문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현대차측은 “그룹의 공식입장은 없다”고만 밝혔다. 유 변호사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런 걸 왜 묻나. 말할 의무가 없다. 궁금하면 그냥 궁금하게 생각해라”며 전화를 끊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