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제로투세븐 브랜드 중 하나인 ‘포래즈’와 ‘아가방앤컴퍼니’, ‘하기스 라운지웨어’ 카탈로그 사진. |
현재 유아용품 시장은 27조 원 규모로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그중 유아복은 5300억 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기저귀와 함께 유아용품 중 가장 큰 시장으로 꼽힌다. 매출 하락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백화점조차도 유아용품만큼은 매년 10~30%씩 성장하고 있을 정도다.
덕분에 유아복 시장은 기존에 영유아용품을 대상으로 하던 기업들뿐만 아니라 전혀 연관성이 없던 회사들마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매일유업은 자회사 ‘제로투세븐’을 통해 ‘알로앤루’ ‘알퐁소’ ‘포래즈’라는 브랜드를 선보이며 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제로투세븐은 매일유업 김복용 창업주의 3남 김정민 대표가 앞장서 이끄는 사업이다.
또한 기저귀 명가로 불리는 유한킴벌리도 ‘하기스 라운지웨어’ 브랜드를 출시하며 유아복 진출을 선언했다. 여기에 지난해 8월 국내 최대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한세실업도 유아동복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드림스코’를 인수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중이다. 더욱이 해외 브랜드의 공습도 잇따르고 있어 시장규모는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이제는 하나의 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들 종합회사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우리 역시 종합유아용품회사로 발전하기 위해 ‘하기스 라운지웨어’ 브랜드를 출시했다”며 “기저귀나 물티슈 등 기존 사업과 소비자층이 유사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아복 시장이 주목받는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존재한다. 유아복 업계 관계자는 “출산율은 감소하고 있지만 그만큼 귀하게 키우는 이들이 늘면서 대물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한 ‘좋은 것’을 선호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라며 “예전에는 크게 옷을 사 오래 입히는 것을 당연시 여겼지만 이제는 아기의 성장에 맞춰 옷을 구입하는 추세다. 덕분에 옷을 구입하는 주기가 빨라졌고 소비도 그만큼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골드키즈(Gold Kids)’의 등장이 유아복 시장을 달아오르게 만든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골드키즈란 외동으로 태어나 공주나 왕자처럼 대접받는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적용되는데 덕분에 ‘식스 포켓 원 마우스(Six Pockets One Mouse)’라는 표현도 생겨났다. 이는 아이를 위해 부모를 비롯해 조부모와 외조부모까지 여섯 명이 지갑을 연다는 뜻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두 세대가 매진하는 현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경기불황과 금값 상승이 유아복 시장 활성화를 도왔다는 해석도 있다. 금값이 폭등하고 물가가 오르자 백일이나 돌잔치에 주고받던 금반지나 현금이 사라지고 대신 유아용품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경기침체에도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는 시장은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곳뿐이다. 본래 유아복은 성인의류보다 가격형성 폭도 좁고 마진도 그리 높지 않아 경쟁이 심하진 않았다”며 “하지만 골드키즈의 등장과 선물 수요를 흡수하면서 변화의 움직임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입 브랜드가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전반적으로 유아복 가격대가 높아져 마진율이 올라갔다”며 “덕분에 국내 브랜드도 가격형성 폭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금액대의 상품이 출시됐다. 기업들이 중저가부터 고급까지 수개의 브랜드를 보유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유아복 시장의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자존심 싸움도 한층 치열해졌다. 최근 아가방앤컴퍼니와 제로투세븐이 서로 업계 1위임을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제로투세븐은 2010년만 하더라도 유아용품 업계 3위일 뿐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 사이에 2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더니 지난해는 매출 2000억 원을 넘어서며 “업계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가방앤컴퍼니 측은 “제로투세븐의 업계 1위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발끈했다. 매출의 비교 근거가 다를뿐더러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여전히 매출 1위는 아가방앤컴퍼니라는 것. 아가방앤컴퍼니 관계자는 “2011년부터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 여부에 따라 매출액이 달라지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아 생긴 착오로 보인다”며 “만약 제로투세븐이 적용한 매출 산정 기준에 의해 비교해보면 아가방앤컴퍼니의 매출 합계는 2448억 원이 된다. 이는 제로투세븐보다 368억 원가량 높은 수치”라고 주장했다.
또한 아가방앤컴퍼니 측은 “아가방앤컴퍼니는 상장회사지만 제로투세븐은 그렇지 않다. 올 연말쯤 상장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업계에서는 이를 위한 준비 작업을 하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제로투세븐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는 “시장점유율을 산정하는 기준이 법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때문에 서로 자신들이 유리한 쪽을 기준을 삼아 이러한 혼란이 생기는 것”이라며 “기업회계 기준이 바뀌면서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더 발생할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소모적인 경쟁은 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1위 싸움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의 성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가방앤컴퍼니나 무리한 행보를 이어나가는 제로투세븐이나 오십보백보”라며 “아무리 오래 군림한 1인자라도 소비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 바로 쫓겨나가게 돼 있다. 조금만 더 지켜보면 확실한 순위가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