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작스레 출국했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8일 새벽에 귀국했다. 정 회장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현대차는 어떻게든 총수일가에 대한 사법처리는 막아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이 총수일가에 대한 강경조사 방침을 천명한 이상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 대목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수사 기간 중간에 오랜 외유를 하는 동안 수사당국이 공개적으로 귀국을 종용하지 않은 점이나 삼성이 ‘총수일가 무소환’ 신화를 지켜온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법도 하다.
이번 현대차 수사가 내부 제보자에 의해 확실한 물증을 토대로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이 이미 ‘처벌 수위를 정해 놓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로선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할 묘안을 찾아야 할 입장인 것이다.
지난 4월 6일 검찰이 현대차 총수일가에 대한 조사 의지를 천명하자 법조계와 재계에선 ‘정의선 사장이 경영권 편법 승계로 논란이 일고 있는 글로비스 등 계열사들의 주식을 처분해 사회헌납할 것’이란 이야기가 일부 언론을 통해 나돌기 시작했다. 정 사장은 현재 글로비스 지분 31.88%를 갖고 있으며 이를 4월 6일 현재 주가 4만 1950원으로 환산하면 약 4400억 원이다. 삼성의 8000억 원 사회헌납 발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사재출연 관련 보도 직후 현대차 측은 즉각 ‘그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현대차가 여론 무마용으로 내세울 수 있는 카드란 점에서 재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총수 일가의 사법처리를 막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펼칠 현대차 입장에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검찰은 ‘신속한 수사가 현대차그룹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란 입장을 유지해왔다. 이는 곧 검찰이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현대차가 순순히 각종 비자금 집행내역에 대한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란 추론을 가능케 한다. 이번 파문의 진원지인 김재록 씨로부터 비자금 관련 유력인사들에 대해 원하는 만큼의 정보 수집이 여의치 않을 경우 현대차의 목을 죄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 | ||
지난해 두산과 삼성 사태를 지켜본 재계인사들은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야 사태가 귀결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두산 박용성 전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이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재 출연과 같은 맥락에서 정 회장 역시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란 지적이다.
일각에선 정의선 사장 지분에 대한 사회헌납 외에 정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 가능성이 거론된다. 정 회장이 명예회장직으로 물러난 이후 총수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투명 경영을 표방해 사법당국과 정치권에 ‘선처를 호소’하고 그동안 실추된 이미지 회복을 도모할 것이란 관측이다.
정 회장이 명예회장직으로 후퇴한다 해도 실제 경영에 대한 영향력엔 변동이 없을 수도 있지만 상징성만큼은 삼성의 대국민 사과성명 이상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LG를 제치고 재계 2위로 막 올라선 상태에서 정 회장의 경영일선 후퇴는 재계에는 물론 법조계와 정치권에 충격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질 것이 분명하다.
일각엔 ‘현대차그룹이 정의선 사장 구속을 마지노선으로 정했다’는 이야기마저 등장했다. 하지만 정 사장이 신병처리될 경우 사재출연보다는 ‘사회공헌’이나 ‘투명경영’에 대한 고강도 수습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있다. 어정쩡한 ‘제살깎기’로는 ‘삼성 따라하기’란 비난여론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한편 총수일가 사재출연이나 정 회장의 2선 후퇴설에 대해 현대차 측은 “검토된 바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 밝히고 있다. 검찰 주변에 이런 저런 관계자들이 어우러져 있다 보니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일 뿐이라는 것.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나 최태원 SK 회장이 선보였던 수습책보다 한수위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차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