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윤 회장(왼쪽)과 이승철 전경련 전무가 6월 18일 국회 의원발의법률안에 대한 규제모니터링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있다. 이 전무는 규제학회 전신인 규제연구회 창립멤버이자 현재 학회 상임이사로 올라 있다. 사진제공=전경련 |
그동안 한국규제학회(회장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드러내놓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외부활동을 진행해오지는 않았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가 “그런 학회가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다. 따라서 전경련과 MOU를 체결하고 의원들의 발의 내용을 모니터링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일이다.
한국규제학회는 지난 1992년 ‘규제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출발, 10년간 학자들이 규제개혁방안을 연구해오다 지난 2002년 5월 16일 학회로 정식 출범했다. 규제학회 정관에 따르면 규제학회는 규제이론과 정책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규제개혁방안을 조사연구·제시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최병선 서울대 교수(현 명예회장)가 규제학회의 초대회장을 역임했으며 김종석 홍익대 교수, 이성우 한성대 교수, 좌승희 서울대 겸임교수, 최신융 숙명여대 교수가 회장을 지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법안을 비판해온 김진국 배재대 교수가 현재 규제학회의 상임이사이자 총무위원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김신 한국행정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역시 상임이사이자 편집위원장으로 올라 있다.
이밖에 권순만 서울대 교수, 심영섭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박형준 성균관대 교수, 양준석 가톨릭대 교수, 이수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김경환 서강대 교수 등 다수의 대학교수와 연구위원 등이 임원진에 배치돼 있다.
임원진 중 눈에 띄는 사람은 이승철 전경련 전무다. 규제학회의 전신인 규제연구회 창립멤버인 이 전무는 현재 임기 2년의 규제학회 상임이사로 올라 있다. 지난 18일 전경련과 규제학회의 대표로서 MOU를 체결한 이가 바로 이승철 전무와 김태윤 교수. 규제연구회 창립멤버이자 규제학회 상임이사인 이승철 전무가 전경련 대표로서 규제학회와 MOU를 체결한 것이다. 박지원 원대대표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내부자나 다름없는”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에 대해 “이승철 전무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규제학회는 1년에 두 번 정도 학술대회나 세미나를 개최해 규제이론 관련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토론하고 있다. 여기에 6월과 12월, 주로 연구자들의 논문을 게재한 <규제연구>라는 학술지를 발간한다. 규제학회는 국무총리실, 중소기업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기관은 물론 일반 기업에도 연구 용역을 받아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규제학회는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지난 5월 18일에도 함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한국경제연구원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점도 전경련과 이어지는 대목이다. 전경련의 싱크탱크로 통하는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4일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세미나에서 경제민주화 조항을 담은 헌법 제119조 2항을 삭제할 것을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며 한국경제연구원이나 규제학회보다 전경련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원내대표는 “전경련이 국회 입법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것이고 찬성하지만 사전에 모니터링을 해 검열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전경련의 행태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대선을 앞두고 재계가 정치권을 향해 던지는 오만한 메시지일 수 있다”며 “상임위를 통한 법안 상정, 의원 연구활동을 통한 대안 마련 등 전경련에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입법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것이지 국회 위에 군림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면서 “민주당과 박 원내대표가 오해하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전경련 측은 또한 “관련 업무와 연구는 모두 규제학회가 담당한다”며 공을 규제학회에 넘겼다.
‘공’을 받은 김태윤 한국규제학회장은 “전경련의 지원하에 MOU를 체결, 학계 전문가들이 조언을 하려는 것”이라며 “모니터링의 방법이나 의사 표출 방식에 대해서는 학회에서 계속 숙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학자들이 모인 학회기 때문에 크게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조만간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