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 | ||
현대자동차의 경우 글로비스를 세워 차량 운송 물량을 모두 몰아줌으로써 글로비스의 안정된 이익을 실현시키고, 이 회사의 비상장 주식을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게 넘겨 정 사장이 회사 이익을 편취할 수 있게 이사들이 방조했다는 것이다. 광주신세계의 경우도 글로비스와 흡사한 방식으로 정용진 부사장이 신세계의 지분을 늘렸다고 참여연대는 주장한다. 신세계가 검찰의 수사 대상은 아니었지만 참여연대의 이번 발표로 또 하나의 ‘편법상속’ 사건으로 주목받게 된 셈이다.
고발 다음날 신세계는 참여연대가 전후관계를 무시한 채 정 부사장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된다면 대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참여연대를 고소하는 최초의 기업이 되는 셈이다.
신세계는 각 지역의 백화점을 지점 형태로 운영해 왔지만 이례적으로 1995년 4월 10일 광주신세계를 별도법인(자본금 5억 원, 총 주식수 10만 주)으로 세운 뒤, 1998년 4월에 25억 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신세계가 불참하는 대신 정용진 부사장이 참여해 지분 83.3%(50만 주)를 가진 대주주가 되었다. 이후 몇 차례 증자를 통해 정 부사장의 주식은 83만 3330주로 늘어났고, 2002년 주당 3만 3000원에 상장해 현재 정 부사장의 주식가치는 1200억 원에 이른다.
참여연대는 신세계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신세계가 취할 지분차익을 오너가 가져간 것은 배임이므로 이를 방치한 당시 신세계와 광주신세계의 대표이사들을 고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신세계는 당시 광주지점 별도법인 설립은 지역 상공인들과 지자체의 요구사항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개업일자까지 정해놓고 지점 설립을 준비했으나 광주시가 허가를 내어주지 않아 별도법인으로 설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1998년 정권교체 이후 광주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향토기업으로 설립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정의선 기아차 사장 | ||
그러자 신세계 측은 “당시 신세계는 프라이스클럽(현 코스트코 코리아), 신세계 파이낸스, 신세계 카드부문, 신세계 종금 등 계열사를 정리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부실이 쌓인 광주신세계의 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4000원대이던 현대백화점 주식에 비해 비싼 가격인 주당 5000원에 유상증자가 결정돼 참여할 곳이 없어서 결국 신세계 오너 일가가 책임을 지기 위해 사재를 출연한 것이다. 정 부사장은 당시 정재은 명예회장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증자에 참여했고 이에 대한 증여세도 모두 납부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가 있었던 1998년 4월을 전후로 신세계가 6월 프라이스클럽 지분 86억 원어치를 신규 매입했고,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삼성전자 주식 41억 원어치를 사는 등 1998년 한 해 총 196억 원의 신규출자를 했다.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 참여에 필요한 25억 원이 없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광주신세계의 부실도 실제로는 영업이익이 계속 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립 초기 개업비 47억 원을 1995∼1997년에 걸쳐 상각했기 때문에 손실이 난 것이고, 자본잠식은 1995년 자산총액 657억 원에 비해 자본금을 5억 원으로 적게 잡았기 때문이라고 참여연대는 주장하고 있다.
1998년 유상증자 당시 주가가 5000원으로 동종업계보다 비싸서 참여자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광주신세계가 총주식수 10만 주로 주식수가 적다 보니 주당순이익(순이익을 총주식수로 나눈 것)이 신세계 857원, 현대백화점 876원보다 훨씬 많은 3만 3668원으로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헐값이라는 것이 참여연대의 해석이다.
신세계는 이에 대해 “신세계 경영권 승계가 목적이라면 정 부사장이 계열사 주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광주신세계를 살 이유가 없다. 1998년 당시 1만 4000원 대의 신세계 주식을 사는 것이 더 유리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고소를 결정한 것”이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의 에버랜드나 현대자동차의 글로비스와는 경우가 다르다는 얘기다.
참여연대는 “재벌들이 계열사를 통한 내부 주식거래를 통해 오너 일가의 재산을 증식시키는 과정에 쐐기를 박기 위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이미 사법적 판단을 충분히 구한 다음 고발을 한 것이기 때문에 사법부가 엄정히 판단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본 취지를 설명했다.
한편 신세계는 신속한 법적대응 발표와 달리 아직 고소장을 접수하지는 않은 상태다. 신세계가 고소에 나선다면 검찰 조사가 불가피하게 되어 스스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셈이다. 고소하지 않는다면 으름장을 놓고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꼴이다. 이래저래 신세계는 고민에 빠져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