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령 선발 기록…패배 안았지만 건재 알려 ‘절반의 성공’
오승환은 지난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키움과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5피안타(1피홈런) 6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2005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마운드에서' 경기 전 국민의례를 했고, 40세 9개월 18일의 나이로 그 경기의 첫 공을 던져 역대 최고령 첫 선발 등판 기록을 11년 만에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박찬호(당시 한화 이글스)가 2012년 4월 12일 청주 두산전에서 남긴 38세 9개월 13일이었다.
오승환은 이와 함께 개인 한 경기 최다 이닝과 투구 수(73개), 피안타, 탈삼진 기록을 모두 경신했다. 그의 종전 최다 이닝은 4이닝, 최다 투구 수는 59개였다. 모두 신인이던 2005년, 롱 릴리프로 활약하던 시절에 남긴 기록이다. 삼성이 이 경기에서 1-4로 패하면서 오승환은 데뷔 후 첫 선발패도 안았다.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오승환은 KBO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374개)와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47개) 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리빙 레전드'다. 포스트시즌 최다 세이브(13개)와 한국시리즈 최다 세이브(11개) 기록도 갖고 있다.
그는 이 경기 전까지 KBO리그 통산 620경기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구원 투수로만 출전했다. 올 시즌엔 역대 최초의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와 KBO리그 통산 400세이브 기록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다만 올 시즌엔 10경기에서 1승 1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4.50으로 눈에 띄게 흔들렸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31세이브를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지만, 올해는 눈에 띄게 출발이 좋지 않았다. 결국 최근 마무리 투수 자리를 왼손 투수 이승현에게 넘겨줬다.
박진만 감독과 정현욱 코치는 투수 오승환의 존재감과 상징성을 고려해 부진의 고리를 끊고 돌파구를 찾을 방법을 고심했다. 선발 등판은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찾아낸 고육지책이다. 오승환은 4월 26일 대구 두산전에 중간 계투로 나선 뒤 일주일 동안 선발 등판을 준비했다.
현역 시절 불펜에서 맹활약했던 정현욱 삼성 투수코치는 "오승환은 늘 승리 여부가 걸린 중요한 순간마다 등판해왔다. 선발로 등판하면 좀 더 편안한 상황에서 자기 공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며 "나 역시 선수 시절 부진할 때 썼던 방법이다. 많은 공을 던지면 투구 감각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이날 야구장엔 오승환의 첫 선발 등판 경기를 보기 위해 1만 3394명의 관중이 몰렸다. 평일 야간경기로는 많은 수다. 주인공인 오승환은 이날 데뷔 첫 '1회 등판'이 낯선 듯 첫 이닝에만 공 21개를 던지며 고전했다. 첫 타자 이정후를 투수 앞 땅볼로 잡았지만, 신인 박찬혁에게 좌중간 2루타를 맞았다. 이어 1사 2루에서 왼손 타자 김혜성에 컷패스트볼을 던지다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2점 홈런을 허용했다. 오승환은 다음 타자 애디슨 러셀에게도 우중간 2루타를 내줘 세 타자를 연속 장타로 내보냈다. 그러나 후속 타자 이원석과 이형종을 무사히 잡아내고 한숨을 돌렸다.
오승환은 2회에도 실점했다. 연속 삼진으로 투아웃을 잡은 뒤 이지영에게 우전 안타, 이정후에게 좌월 적시 2루타를 차례로 얻어 맞았다. 그러나 이 적시타가 마지막 위기이자 실점이었다. 오승환은 이후 3과 3분의 1이닝 동안 열 명의 타자를 삼진 4개 포함 연속 범타 처리하는 위력을 뽐냈다.
박진만 감독은 오승환이 이미 예정된 투구 수(50~60개)를 넘긴 점을 고려해 6회부터 투수를 최충연으로 교체했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9㎞까지 나왔다. 전성기처럼 150㎞대 강속구를 던지지는 못했지만, 건재를 알리기엔 충분했다. 오승환의 역사적인 첫 선발 등판은 그렇게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오승환은 경기 후 "팀이 이기는 것이 중요한데 1회부터 실점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매 이닝, 매 타자에게 집중하며 던졌고, 4회엔 투구 수가 많지 않아 정현욱 코치님과 이야기한 뒤 5회까지 나섰다"며 "9회 등판도 부담되지만, 1회부터 나가는 것도 부담이 된다는 걸 느꼈다. 9회엔 경기를 지켜야 하지만, 선발은 경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실마리는 찾았다. 오승환은 "한창 좋지 않았던 때와 비교하면 공에 힘이 실린 느낌을 받았다"며 "어려운 시간을 내서 응원 오신 팬들께 감사하다. 경기에서 승리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지금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오승환은 경기 다음날인 4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선발 등판이 일회성이었던 만큼 2군에서 다시 마무리 투수 복귀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삼성 관계자는 "오승환의 2군행은 예정했던 수순"이라며 "평소보다 많은 공을 던진 만큼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다. 2군에서 회복하다가 불펜 혹은 마무리로 다시 1~2경기를 소화한 뒤 1군으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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