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하이마트 본사 사옥. 일요신문 DB |
▲ 김병주 회장. |
M&A업계 관계자는 “인수 의향을 보이던 기업들이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하이마트 내부 구조가 복잡하고 시너지 대비 가격이 맞지 않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신세계의 경우 전자랜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무리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조건이 맞지 않아 하이마트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장에서 가장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은 롯데쇼핑의 탈락이다. 유통 경쟁업체들이 잇따라 인수를 포기하면서 하이마트는 자연스레 롯데가 가져갈 것으로 예상됐다.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하이마트의 예전 주인이 사모펀드(AEP)였다는 점도 롯데의 인수로 무게가 실린 이유였다. 시너지 효과와 신성장동력 마련이라는 점에서도 롯데의 우세를 점치는 전문가가 많았다. 결과는 정반대. 주당 8만 원대를 쓴 MBK와 달리 롯데는 주당 7만 원대 후반의 소심한 베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증권가에선 큰 실망감이 터져 나왔다. 롯데에 대해 “몇 푼 싸게 인수하려다 다 잡았던 신성장동력을 놓쳤다”라는 신랄한 비판까지 제기됐다. 박종렬 HMC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하이마트 투자자 입장에서 MBK에 인수된 건 ‘잘못된 만남’인 셈”이라고 평가했다.
주가도 즉각 반응했다. MBK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해진 25일 하이마트 주가는 기관들이 25만 2873주의 실망 매물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7.40% 급락한 채 마감했다. 인수에 실패한 롯데쇼핑 역시 3.97% 하락했다. 통상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M&A에서 물러나거나 실패했을 경우 주가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완전히 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하이마트의 성공적인 매각을 발판으로 제2의 도약을 꿈꾸던 유진그룹 역시 25일 주가(유진기업)가 8.97% 폭락했다. 발표 당시 14.4%나 빠졌지만 낙폭을 만회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M&A업계에서는 일반 기업이 사모펀드와 맞붙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마트 본입찰에 참여한 곳은 롯데쇼핑과 MBK, 칼라일 세 곳이다. M&A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는 인수를 성공시키기 위해 가격을 엄청 올려서 입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일반 기업으로서는 성장동력도 좋지만 너무 비싼 가격에 인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롯데가 하이마트를 인수하기 위해서 들인 공을 생각하면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하이마트 인수에 실패한 신동빈 롯데 회장은 공교롭게도 지난 6월 28일 사장단회의에서 ‘비상경영’을 주문했다. 신 회장은 “지금은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라며 “불확실성이 제거될 때까지 내실경영을 통한 체질 강화에 들어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롯데는 이미 웅진코웨이 인수전에도 발을 담근 상태다. 하이마트 인수 실패 후 오히려 웅진코웨이 인수에 ‘올인’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지만 신 회장이 비상경영을 주문한 터라 웅진코웨이 인수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원래 웅진코웨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며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하이마트 인수에 실패하자 신 회장이 차라리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기운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몇 년간 국내 M&A 시장의 강자였던 롯데마저 몸조심에 나서자 국내 M&A 시장에서 사모펀드 전성시대가 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또한 하이마트 인수전의 후폭풍이자 국내 딜의 추세 중 하나다. MBK는 지난해 5월 우리금융 인수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 또 동양생명 매각작업을 벌이고 있는 보고인베스트먼트도 우리금융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국내외 사모펀드들은 웅진코웨이, 쌍용건설 등 ‘대어’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이에 대한 부작용과 단점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인수-피인수 기업 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사모펀드가 단기성과에 집착하면서 기업 구조조정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마트만 해도 MBK가 현 주가보다 무려 45% 정도 비싼 가격을 써냈다. M&A 효과를 보려면 몇 년 후 최소 13만~14만 원에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경쟁이 심화될 것이 불을 보듯 빤한 상황에서 하이마트의 기업가치가 몇 년 후 과연 그 정도가 될지 의문이다.
롯데는 하이마트 인수에 실패하자마자 자체 가전매장인 ‘디지털파크’를 롯데마트 내뿐 아니라 로드숍 형태로까지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이미 디지털파크 매출을 2018년까지 10조 원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전자랜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신세계도 전자랜드 인수를 마무리한다면 이마트와 함께 가전유통시장의 강자로 떠오를 확률이 높다.
김민아 대우증권 연구원은 “롯데쇼핑에 이어 신세계까지 전자제품 유통시장 내에서 유통망을 적극 확대할 경우 하이마트와 경쟁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롯데가 하이마트를 인수했다면 롯데(하이마트)-신세계(전자랜드, 이마트)의 양자대결이 되겠지만 이제는 롯데-신세계-하이마트의 3파전으로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론스타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크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다. 앞서의 M&A업계 관계자는 “하이마트의 경영권 분쟁은 사모펀드로부터 인수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 있다”며 “재무적 투자자는 몇 년 후 이익을 남기고 매각하면 그뿐”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매각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사모펀드를 바라는 경향도 있다”며 “우선매수 조항 같은 것을 두어 훗날 다시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