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문석 수석무역 부회장. 한때 동아제약의 유력한 후계자였던 그가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되며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강문석 수석무역 부회장이 동아제약에 입사했던 1987년만 하더라도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던 덕분에 아버지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의 신임도 두터웠다. 또한 하버드대학교 경영학 석사와 스탠퍼드대학교 산업공학 석사 출신으로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았기에 누구도 그의 몰락을 예상하지 않았다.
업무능력 면에서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동아제약의 취약부분으로 꼽히던 신약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위장 치료제 ‘스틸렌’이나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 탄생에 일조하며 업계로부터 나름의 인정을 받은 것. 내부적으로도 말단사원부터 시작해 입사 10년 만에 대표이사 부사장 자리에 오르며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후 2003년 1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는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처럼 창창하던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 12월, 임기를 미처 채우지도 못한 채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으면서부터다. 표면적으로는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나 이는 명예직과 다름없었기에 업계에서는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해석했다. 이듬해 3월에는 이사직도 내놓으면서 자연스레 후계구도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강 회장의 넷째 아들인 강정석 동아제약 부사장(38, 당시 전무)이 영업본부장으로 전진 배치되며 강 부회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게다가 강 회장은 기대에 못 미치는 강 부회장의 경영실적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내실에 비중을 두는 경영을 펼친 강 부회장의 스타일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강 회장이 키워낸 ‘박카스’가 경쟁사인 광동제약의 ‘비타500’에 밀리는 지경에 이른 것도 못마땅한 터에 강 부회장이 회사를 이끌던 2003~2004년 동아제약의 영업이익은 예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도 강 부회장이 밀려난 원인으로 거론됐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강 부회장은 하루아침에 ‘강등’을 당한 꼴이다. 문제는 강 부회장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강 부회장은 사장 취임 직후부터 아버지 강 회장과 지분 경쟁을 벌였다. 강 부회장은 사장 취임 당시 1%대의 지분율을 2004년 7월에는 2.83%까지 높였으며 강 회장 역시 7월부터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해 지분율을 종전 3.85%에서 5.03%까지 올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강 회장이 일찌감치 강문석 부회장에서 강정석 부사장으로 후계구도 변경을 구상하고 있었으며 부자간의 대립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부자 사이가 멀어지면서 ‘집안싸움’이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2005년 5월 강 부회장의 친모이자 강 회장의 첫 번째 부인 박정재 씨(84)가 이혼소송을 낸 것. 아들이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고 둘째 부인의 소생인 강정석 부사장이 후계자로 떠오르면서 폭발한 셈이다. 또한 박 씨는 아들 강 부회장을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주류회사 수석무역 대표로 불러들이고 동아제약의 지분을 사들이며 칼을 갈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7년 강 부회장은 동아제약으로 돌아가기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해 2월 1일 동아제약 대주주 자격으로 정기주총에 10명의 이사를 추천하겠다고 ‘통보’한 것. 그 명단에는 자신을 포함해 2006년 3월 동아제약 대표이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진영에 합류한 유충식 전 부회장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복동생이자 이사직에 올라있던 강정석 전무는 빠져있어 반란의 목적이 그대로 드러냈다.
당시 강 회장 측의 지분은 6.94%인 반면에 강 부회장 측은 14.71%로 직계지분만 놓고 보면 강 부회장의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분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기관투자자들의 동향이 어떤 쪽으로 움직일지 몰라 양측은 우호세력 포섭을 위해 한치의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이상 정면충돌을 피해갈 방법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골육상잔’이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2007년 3월 29일 열린 주주총회는 조용히 마무리됐다. 강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동아제약에 다시 입성하며 화합을 선언한 것. 다만 강정석 전무도 형보다 높은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해 의아함을 남겼다. 이 때문이었을까. 다시 찾아온 평화의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그해 7월 동아제약이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통해 자사주 매각과 교환사채(EB)를 발행하자 강 부회장이 이를 문제 삼으며 즉각 반격에 나선 것이다.
강 부회장 측은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무리한 방식으로 자사주 매각을 추진하는 본뜻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는 올해 초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 아직 완전한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임을 감안할 때 특정 우호세력에게 자사주를 이전하는 방식으로 의결권을 부활시켜 경영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주주에게 피해를 입히고 회사의 신뢰에도 타격을 입혔다는 이유로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요구했다.
재발된 갈등 양상은 직전의 상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강 부회장은 동아제약이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매각한 자사주에 대해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에 이르렀고 서로에 대한 비방전도 서슴지 않았다.
동아제약 측은 강 부회장이 대표이사 재임 당시 회사자금을 횡령했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를 했다. 김원배 동아제약 대표(64)는 “강 부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직후인 지난 2004년 9월에 포장박스 업체를 운영하는 K 씨로부터 20억 원을 빌리면서 이자 대신 동아제약 등기이사로 선임해 주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하며 ‘약정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양측 모두 팽팽하게 맞서며 ‘결전의 날’을 준비했으나 임시주주총회를 5일 앞둔 2007년 10월 31일, 강 부회장은 갑작스럽게 백기를 들었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끼며 아버님께 사죄를 드린다”며 평범한 아들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형제간의 화합과 회사의 발전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며 사실상 경영권 다툼에서 패배했음을 인정했다.
강 부회장이 제기했던 ‘동아제약 자사주 의결권 행사 제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여기에 횡령·배임 등으로 고소를 당하면서 명분과 신의를 모두 잃어 승산 없는 승부임을 본인도 깨달았을 터. 결국 강 부회장은 두 차례의 경영권 분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8년 동아제약 지분을 전량 매각한 뒤 제약업계를 쓸쓸히 떠났다.
강 부회장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끊임없이 재기를 위해 발버둥 쳤지만 번번이 결과가 좋지 못했던 것. 동아제약을 떠난 강 부회장은 계열사 수석무역과 무선인터넷업체 디지털오션 경영에만 전념해왔다. 수석무역은 한때 ‘윈저’를 독점 수입, 위스키 시장 매출 1위에 오르며 성과를 내는 듯 보였으며 제약업계로의 복귀도 시도했다. 지난 2011년 강 부회장은 디지털오션을 통해 우리들제약 최대주주의 보유주식 1752만 3371주(지분율 30%)와 경영권을 178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하며 제약업계 컴백을 알렸다.
하지만 강 부회장의 복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돼버렸다. 몇 차례 우리들제약 인수 주체가 바뀌며 고비를 맞다 결국 매각대금 110억 원을 마련하지 못해 경영권을 놓친 것. 이 과정에서 디지털오션은 우리들제약 보유주식을 되팔면서 20억 원가량 손실을 입었고 결국 지난 2월 장남 강민구 씨(28)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줬다.
▲ 수석무역. 우태윤 기자 |
▲ 강문석 부회장 한남동 자택. 강 부회장 자택에는 여러 개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서울 용산구 한남동 74×-×에 위치한 강 부회장의 자택은 한 차례 강제경매 개시가 됐던 기록이 남아있으며 현재는 여러 개의 가압류 처분에 묶여있어 재산적 가치가 전혀 없는 상태다. 강 부회장의 자택은 대지 면적만 957.7㎡(약 290평)에 이르며 등기부에는 2층형 단독주택 두 채가 서 있는 것으로 기재돼 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자에 따르면 “한남동의 특성상 매매가 활발히 이뤄지진 않으나 통상 거래되는 기준을 적용해보면 100억 원의 가치를 지닌다”고 전했다.
그러나 강 부회장의 저택은 이미 집값보다 ‘빚’이 더 많은 상황. 지난 2011년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가압류 결정을 시작으로 총 5건의 가압류가 설정된 상태다. 채권자도 H 사를 비롯한 기업에서부터 개인까지 다양하며 청구금액은 총 115억 원에 이른다. 지난 5월 1일에는 동안양세무서로부터 압류까지 당한 상태다. 동안양세무서 관계자는 “재산세 미납으로 압류 설정을 한 상태로 양도, 증여, 상속에 관한 세금이 체납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여기에 약 75억 원에 달하는 근저당권 설정까지 돼있다. 채무자는 강 부회장과 수석무역이다. 또한 강 부회장의 자택 외에도 부산 기장군 정관면 예림리에 있는 대지 면적 4531㎡(약 1373평)의 수석밀레니엄 공장 부지와 건물 등 부동산도 공동담보 목록에 포함돼 있다.
이처럼 갖가지 ‘딱지’가 붙어있는 저택에서 도피하고 싶었는지 강 부회장은 지난 2월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으로 주소지를 이전했다. 확인 결과 이 주소지는 강 부회장의 장인 황 아무개 씨(81)의 소유. 황 씨 측은 “여기는 강 부회장의 장인이 사는 곳이다. 강 부회장은 주소지만 이쪽으로 이전했을 뿐 왕래가 거의 없다”며 “명절에만 가끔 전화가 올 뿐 집을 방문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부인 황 아무개 씨(51) 등 강 부회장 가족은 여전히 한남동 저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주소지 이전’에 대한 의문만 남겼다.
검찰에 따르면 강 부회장과 공범 박 아무개 씨(53)와 이 아무개 씨(38)는 지난해 3월 디지털오션이 자금 12억 원을 휴면업체인 B 사에 빌려준 것으로 가장해 횡령한 뒤 개인 빚을 갚거나 담보 명목으로 제공해 65억 원에 달하는 공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강 부회장은 2009년 6월 디지털오션 공금 20억 원을 수석무역에 빌려주고 충분한 채권 회수조치를 강구하지 않았으며 약속어음을 발행하는 수법 등으로 48억 원의 피해를 디지털오션에 끼친 혐의(배임)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강 부회장이 56.29%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는 수석무역 측은 “강 부회장은 출근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우리 조직도에 포함돼 있지도 않다. 디지털오션과는 주식보유로 연관이 돼 있을 뿐 아무런 관련이 없는 회사다. 이번 일은 우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못 박으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디지털오션도 지난 6월 27일 공시를 통해 “강문석 전 대표이사가 113억 3000만 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했다”고 밝힐 뿐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고 있다. 이처럼 모두가 강 부회장에게 등을 돌린 상태지만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강 부회장이 동아제약으로 돌아가기 위해 과한 욕심을 부려 결국 화를 당했다”며 “인간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직 강 부회장에 대한 혐의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로 인해 그토록 원하던 동아제약 입성은 더욱 요원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강 부회장은 지난 2006년 12월 언론사 기고문을 통해 “세상이 뭐래도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다. 세월이 천년만년 흘러도 내 아버지가 바뀔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누가 뭐래도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르는 마음이 변함없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동아제약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강 회장님도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밝혔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