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날 560돌을 맞아 2006년 발행된 기념주화. |
세계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으로 알려진 기념주화는 기원전 479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위치했던 도시국가 시라쿠스가 발행한 ‘시라쿠스 전승 기념 은화’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총 31가지 기념주화가 발행됐다. 현재 세계자연보전 총회 기념주화가 나오면 발행된 기념주화수는 32개로 늘어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기념주화는 1970년 정부가 독일 주화제조업체를 통해 만든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주화’다. 이 기념주화는 금화 6종과 은화 6종으로 이뤄졌다. 금화에는 세종대왕(2만 5000원)과 신라금관(2만 원), 박정희 대통령 초상(1만 원), 거북선(5000원) 등이, 은화에는 한국동란 참전 16개국 용사상(1000원), 석굴암 보살입상(500원), 박정희 대통령 초상(250원), 고려청자(200원) 등이 새겨졌다. 이 기념주화는 해외 홍보용이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화폐 판매망을 갖고 있던 이탈리아 이탈캄비오사를 통해 외국인에게만 판매됐다.
▲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 |
이처럼 절차상 문제가 발생한 데는 비화가 있다. 1975년 작고한 양유찬 대사가 주미대사를 그만두고 순회대사로 유럽 각국을 다니던 중 우연히 ‘북한이 금, 은 주화를 만들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양 대사는 이 사실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박 대통령은 북한보다 먼저 금, 은 주화를 만들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기념주화 발행이 극비리에 이뤄지다보니 사전에 이뤄졌어야 할 정부 승인과 금통위 의결이 사후에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북한보다 빨리 만들려 애를 썼는데 정작 북한의 최초 기념주화는 이때부터 17년이나 지난 1987년 4월에서야 발행됐다. 금화와 은화 각 1종으로 구성된 ‘김일성 75회 생일 기념주화’가 그것이다.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주화 다음으로 발행된 것은 ‘광복 30주년 기념주화’다. 광복 30주년 기념주화는 정부 승인과 금통위 의결이라는 법적인 절차를 정상적으로 거친 첫 번째 기념주화다. 크기 30㎜, 무게 12g인 100원화 1종으로 한국조폐공사에서 500만 장을 제조했다. 앞면에는 독립문이, 뒷면에는 태극기를 든 여인이 새겨졌다.
기념주화는 그 이름답게 역사적인 날에 맞춰 발행되는 경우가 많다. 광복 50주년 기념주화(1995년),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주화(1998년), 광복 60년 기념주화(2005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기념주화(2006년) 등이 그 예다. 또 종묘와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축하하는 기념주화도 각각 2010년과 2011년에 발행됐다.
▲ 제 24회 올림픽 대회 기념주화. |
우리나라는 기념주화를 대개 은화로 발행해 왔다. 금화 발행은 대개 행사를 위한 수익용인 만큼 발행건수는 지금까지 총 6건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주화를 제외하면 제24회 서울올림픽 기념주화, 대전세계박람회 기념주화, 2002 FIFA 월드컵 축구대회 기념주화, 제14회 아시아경기대회 부산 2002 기념주화 등으로 대규모 행사를 앞두고 발행됐다. 지난 5월 발행된 여수 세계박람회 기념주화는 10년 만에 나온 금화로 2만 원과 1만 5000원 두 종류였다.
이러한 기념주화도 법화이기 때문에 일반 상거래에서 지급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통용을 목적으로 발행되는 일반 주화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정상적인 돈인 셈이다. 하지만 기념주화는 금이나 은, 백금 등 귀금속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발행량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실제로 일반 상거래에 사용되는 경우는 없다. 기념주화는 액면가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애호가들 사이에서 거래된다. 기념주화의 거래가격은 액면금액과는 상관없이 희소성과 도안의 특수성, 재질, 보관 상태 등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우리나라 발행 기념주화 중 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주화다. 외국인에게만 판매돼 국내에 공급된 물량이 없었던 탓에 거래 가격이 비싸다. 발행 물량도 금화는 총 18만 4500장, 은화는 총 105만 장으로 적은 편이다. 이 때문에 금화 6종, 은화 6종 풀세트의 경우 액면가는 6만 5600원에 불과하지만 거래되는 가격은 4000만 원에 달한다.
반면 제24회 서울올림픽 기념주화는 1048만 850장이나 발행된 탓에 희소가치가 적어 시장에서 거의 액면가 수준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가치가 높다고 해서 그 가격을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기념주화에 새겨진 액면가만을 인정해준다. 만약 기념주화를 한국은행에 가져가 통상적으로 쓰이는 돈으로 바꾸려 할 경우 한국은행에서 교환해주는 금액은 기념주화에 새겨진 액면금액과 같다는 뜻이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