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과 재계 사이 이슈는 단연 ‘경제민주화’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에 ‘올인’하고 있는 형국이다. 재벌개혁을 외치는 정치권에 재계는 경기 침체와 경쟁력 약화 우려로 맞서고 있다. 재계의 주장은 정치권이나 법조계, 시민단체 등이 재벌을 비판하고 단죄할 때 흔히 쓰는 ‘방어책’이다. 특히 재벌 총수들이 연루돼 있을 경우 재계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을 앞세워 한마음 한뜻으로 ‘총수 구하기’에 나선다. 이른바 ‘재벌 총수 구하기 비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재계에서 사용하는 총수 구하기 비법과 이를 깰 비책을 추적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삼고 있는 정치권이 재벌 총수들에게 유난히 솜방망이였던 법제도를 개선하자고 나섰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6월 19일 경제민주화실천모임(회장 남경필 의원) 3차 모임에서 “재벌의 횡령·배임 범죄에 대한 형량을 높여야 한다”며 효과적인 방법으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 강화”를 주장했다.
이와 함께 박 의원은 “재벌 총수 구하기 7대 비법(7대 비법)이란 게 있는데 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사 출신인 박 의원이 제기한 ‘7대 비법’은 △(시간) 끌면서 무마시켜라 △불구속 수사를 요구하라 △영장을 기각시켜라 △집행유예를 받아라 △법정구속만은 피하라 △구속집행정지 혹은 형집행정지를 노려라 △사면은 필수!(이도저도 아니면 사면을 노려라)다. 박 의원에 따르면 재계에서는 이 7대 비법을 성공할 때까지 순차적으로 활용한다는 것.
첫 번째 단계인 ‘시간 끌면서 무마시켜라’의 대표적인 예는 2007년 보복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김승연 한화 회장이다. 당시 김 회장과 한화는 보복폭행 사건의 내용을 감추고 축소시키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경찰이 수사를 하고 나서야 그 내막이 드러났다는 것. 이밖에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재벌 총수들이 일단 해외로 나가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끄는 것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두 번째 ‘불구속 수사를 요구하라’의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비자금 조성 혐의로 특검까지 벌였던 이건희 삼성 회장, 2005년 10년여 동안 분식회계 등의 방법으로 326억 원의 비자금을 챙긴 혐의로 수사를 받던 박용성 전 두산 회장, 2008년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현재현 동양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세 번째 ‘영장을 기각시켜라’는 2006년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유 대표에 대해 특경가법상 배임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2006년 영장이 기각될 때와는 다른 혐의지만 유 대표는 올 초 주가조작 등으로 징역 3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영장 기각 작전이 실패해 영장이 청구됐다면 ‘집행유예’ 단계로 넘어간다. 여기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해당한다. 특히 최 회장의 경우 2008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와 SK해운 부당지원으로 기소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박민식 의원은 “재벌 총수가 구속되면 약속이나 한 듯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학계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공식을 깨기 위해 특경가법을 강화하자고 나선 것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2007년 비자금 조성과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법정구속되지 않았다. ‘법정구속만은 피하라’ 비법의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재판부는 정몽구 회장과 관련된 혐의를 모두 인정, 실형을 선고했으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 법정구속을 면해줬다.
앞서 최태원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이들의 선처를 당부하는 재계의 역할도 한몫 단단히 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 국민이 유죄 판결 즉시 구속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재벌 총수들은 실형 선고에도 구속되지 않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온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전경련 등 재계에서 써먹는 수법이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원 역시 “그동안 경제를 볼모로 한 재계의 요구가 먹혀왔다”며 “특경가법의 형량을 높이는 것은 이 같은 관행을 없애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관행을 뿌리뽑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아직도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부의 단죄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재벌개혁론자들이 주장하는 ‘특경가법의 형량 강화’가 과연 이 같은 관행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까. 결론적으로 형량을 조금만 강화하면 횡령을 한 재벌 총수는 ‘감옥생활’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현행 특경가법상 5억~50억 원 횡령은 ‘3년 이상 징역’, 50억 원 이상은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박민식 의원 등은 이를 최소 ‘7년 이상 징역’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준을 7년에 두는 까닭은 재판부가 할 수 있는 정상참작 범위 50%를 적용해도 징역 3년이 넘어 집행유예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재벌 총수는 어쨌든 실형 선고에 이은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김 교수는 “형량을 높이자는 주장은 궁극적으로 형 집행의 질을 높여 범죄를 막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