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카가 사기혐의로 체포됐다가 이틀 만에 풀려나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전 씨의 비자금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지난 6월 25일 전 전 대통령 누나 전점학 씨의 아들인 조 아무개 씨(55)가 지인 두 명으로부터 5억여 원을 갚지 않아 사기혐의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됐다. 문제는 경찰이 조 씨를 이틀 만에 풀어주면서 발생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경찰이 사기혐의로 지명수배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카를 체포한지 이틀 만에 풀어줬다며 ‘봐주기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과거 ‘전재용 비자금’ 수사에서 ‘관리인’ 중의 한 명으로 언급됐던 조 씨였기에 논란은 증폭됐다.
지난 6월 25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세 남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빌려 준 돈을 받으려는 두 남자가 돈을 갚지 않고 도망갔던 한 남자를 붙잡고 ‘사기꾼’이라고 소리쳤다. 놀라운 사실은 사기꾼이라 불린 남자가 바로 전 전 대통령의 조카 조 씨였다는 점이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조 씨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과연 세 남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앞서 지난 2007년 7월 조 씨는 사업관계를 유지하던 오 아무개 씨와 정 아무개 씨에게 접근해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관련 얘기를 꺼냈다. 조 씨는 오 씨 일행에게 “홍콩·베트남 등지에 아버지 예금 1500억 원이 전두환 비자금 사건으로 묶여 있어 빼내려고 한다. 국내로 들여오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투자를 하면 돈이 들어온 뒤 갚아 주겠다”고 속여 5억 1000만 원을 건네받았다.
실체가 불분명한 비자금을 운운하는 상황에서 5억 원이 넘는 거액을 건넬 정도로 오 씨 일행이 조 씨를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 씨 일행에 따르면 조 씨가 투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자신이 전 전 대통령 누나(전점학 씨)의 아들이자 전 전 대통령의 조카라는 사실을 내세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투자금을 받은 뒤 조 씨가 잠적하면서 불거졌다. 뒤늦게 피해 사실을 깨달은 오 씨 일행은 지난 2010년 조 씨를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조 씨는 수차례 경찰 출석 요구에 불응했고, 지난해 초부터는 지명수배 선상에 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지난 6월 25일 1년여 넘게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왔던 조 씨를 오 씨와 정 씨가 붙잡아 경찰에 인계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에 체포된 조 씨가 이틀 만에 풀려나면서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6월 25일 오전 11시 50분에 경찰에 체포돼 사기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던 조 씨는 37시간 만인 지난 6월 27일 새벽 1시에 풀려났다.
고소인들은 “지명수배자를 구속영장 신청도 없이 풀어준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항의했다. 정치권에서도 민감한 반응이 쏟아졌다. 지난 7월 4일 민주통합당 김진욱 부대변인은 “경찰이 사기혐의로 지명수배까지 된 피의자를 체포하고도 그냥 풀어준 것은 피의자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카이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조 씨가 붙잡혀 왔을 때 조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찰 관계자는 “고소인들의 주장과 달리 본인이 아니라고 부인했기 때문에 단순한 대통령 친인척 사칭으로 생각했다. 또 당시 그 부분(조카 여부)은 시급한 것이 아니었다. 사기 혐의점을 찾는 게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은 뒤늦게 구청에 가족관계 사실을 확인했고, 실제로 조 씨가 전 전 대통령의 조카라는 걸 인지했다는 걸 시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조 씨의 불구속 수사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서로의 주장에 상반되는 부분이 많았다. 고소인들은 5억 원을 줬다고 하는데 조 씨는 6500만 원을 받았고, 이마저도 김 아무개 씨한테 (사기를 당해) 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혐의점을 찾을 수 없어 불구속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경찰은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고 혐의점이 발견되면 언제든지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 전재용 씨. |
그 돈이 ‘그 돈’ 아닐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카 조 씨가 5억 원대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난 사실과 함께 ‘전두환 비자금’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조 씨가 지난 2004년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 씨의 비자금(73억 원)에 관한 판결에서 비자금 세탁을 담당한 인물 중의 하나로 언급된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검찰은 전재용 씨 비자금 수사에서 160억 원대의 괴자금 중 73억 원이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재용 씨가 2000년 12월경 부친인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주택채권을 증여받고 자금세탁 등의 방법으로 증여세 55억 원을 포탈한 혐의를 포착했다.
이에 대해 당시 재용 씨는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고 이규동 씨(전 대한노인회장)한테서 결혼식 축의금 명목으로 받은 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재용 씨의 괴자금이 무기명채권 형태로 숨어 있다가 사채시장에서 ‘세탁’된 것으로 사실상 이 돈이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증여된 것으로 보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검찰이 전재용 씨의 비자금을 수사하면서 전 전 대통령 일가가 비자금 관리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당시 검찰 수사와 판결문을 분석한 재미 블로거 안치용 씨의 저서 <시크릿 오브 코리아>를 보면 전 전 대통령은 사채시장에서 ‘오공녀’ 또는 ‘공아줌마’로 불렸던 처남 이창석의 부인 홍정녀 씨를 통해 막대한 채권을 사들였고, 처가 쪽의 사돈까지 명단을 작성해 비자금을 관리하도록 시켰다고 돼있다. 심지어 청와대 경호실, 일해재단, 안기부 등도 전두환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나와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기 사건에서 조 씨가 지인들의 돈을 가로채는 과정에서 전두환 비자금 관련 사실을 털어놨다는 사실이 단순 사기가 아닌 실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언급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구체적인 금액과 아버지(전 전 대통령의 매제)의 자금이라는 얘기를 꺼냈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