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전 국회의장 통해 원로들 요청받아 출마…편향성, 횡령 등으로 얼룩진 광복회 수습 적임자라 당선”
#‘윤 대통령 멘토’ 이종찬 신임 광복회장
5월 25일 광복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제23대 광복회장 선거를 실시한 결과 이종찬 후보가 신임 광복회장으로 당선됐다고 밝혔다. 이 회장 임기는 6월 1일부터 2027년 5월 31일까지 4년이다. 부회장에는 백범 김구 선생 손자인 김진 대의원(전 주택공사 사장)이 선임됐다. 김진 부회장은 선거 기간 동안 이 후보를 지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찬 신임 회장은 당선 인사말에서 “광복회는 현재 설립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이다. 당장 시급한 발등의 불을 끄고 자구책을 마련해 특단의 각오로 운영 쇄신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외부 전문 업체의 경영진단·구조조정을 통한 집행부 몸집 줄이기 △대의원들의 각종 위원회 활동 △일상 감사제도 △독립운동가 후손 장학사업 △전국 1개 시·도마다 독립운동기념관 하나씩 설립 등을 추진·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종찬 신임 회장은 1936년생으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다. 경기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에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이후 서울 종로에서 4선(제11~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정무 제1장관으로 기용됐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초대 국정원장으로 일했다. 현재는 우당 이회영선생교육문화재단 이사장과 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멘토’로도 불린다. 윤 대통령은 사석에서 그를 ‘아버님’이라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광복회장 선거엔 이종찬 신임 회장을 포함해 6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조인래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조소앙 선생 동생 조용한 선생의 손자) △이동진 전 광복회 서울시지부장(이을성 선생 손자) △이형진 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장(이재현 선생 아들) △차창규 전 사무총장(차희식 선생 손자) △장호권 전 광복회장(장준하 선생 아들)이다. 그동안 입후보자가 4명 안팎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경쟁이 상당히 치열해진 셈이다.
이종찬 신임 회장은 2019년 광복회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4년 만에 재출마해 당선됐다. 이 회장은 5월 26일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낙선 이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에 몰두했다. 그러는 사이 광복회가 수난을 많이 겪었다”며 “원로들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통해 제게 출마를 요청해왔다. 회장으로 출마해 옛날의 광복회 위상을 되찾아달라는 것이다. 사실 여러 날을 고민했다. 김 전 의장한테 후배 세대의 동의를 구해달라고 했고, 김진 대의원이 흔쾌히 제게 나서달라고 했다고 한다. ‘누가 당선돼도 고소·고발하는 상황이 된다. 그걸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나를 지지해줬다. 그렇게 출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사실상 2파전으로 치러졌다. 이종찬 후보는 총 209표 가운데 98표로 최다 득표했다. 유력한 경쟁자였던 장호권 후보는 74표를 얻었다. 이어 이동진(23표) 조인래(5표) 이형진(5표) 차창규(4표) 후보 순이었다.
이종찬 회장은 “장호권 후보와 잘 아는 사이다. 적대감이나 경쟁심이 전혀 없다. 선거가 끝난 후 장 후보도 ‘이 시대에는 이런 분(이종찬 후보)이 맞는 것 같다’는 취지로 한 기자한테 말했다”며 “이번 선거에서 대의원 수가 107명 늘어났다. 지난 선거와 달리 약간의 세를 모은다고 당선되기 어려운 구조다. 큰 명분이 있어야 했다. 제가 광복회를 수습하고 국가 원로단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을 이행할 수 있는 적임자라 당선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호권 후보는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비자금 조성 논란으로 사퇴하며 치러진 2022년 5월 보궐선거에서 광복회장에 당선된 바 있다. 그러나 장 회장은 같은 해 10월 직무에서 정지됐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재판장 황정수)가 부정 선거 관련해 장 회장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다. 장 회장은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한 회원을 향해 모형 권총을 꺼내 협박한 혐의로도 재판을 받는 중이다. 재판부는 직무대행자로 김진 대의원을 선임했다. 하지만 회원들이 또다시 소송을 제기해 김진 직무대행자도 결국 올해 1월 교체됐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는 광복회장 직무대행으로 관선 변호사인 최광휴 씨를 지정했다.
국가보훈처는 그동안 광복회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밝혀왔지만, 광복회 내부 갈등이 심해지자 개입 방침을 시사했다. 1월 13일 박민식 보훈처장은 SNS(소셜미디어)에 “(광복회가) 개혁과 재건은커녕 내부 분란으로 소송에 소송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더 이상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광복회가 본연의 자리로 반드시 돌아올 수 있도록 국가보훈처장으로서 비상한 각오로 어떤 조치라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보훈처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종찬 회장은 “국가보훈처가 보훈부로 승격됐고, 박민식 처장은 장관 청문회에 임하면서 선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보훈처는 이번 광복회 선거에서 어떤 역할도 못했다”며 “보훈부가 되면 살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기회를 발판 삼아 국민이 신뢰하는 단체로서 일찍이 도달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자체 정비를 빠르게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만 논란은 현재진행형
1965년 창립된 광복회는 국가보훈처 산하 공법단체로서 독립운동 선열들의 정신을 보존·계승하는 사업과 민족정기 선양사업 등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2019년 5월 김원웅 21대 광복회장이 선출되면서 각종 구설에 휩싸였다. 광복회 정관에 따르면 광복회장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정치 편향성 구설에 자주 올랐다. 2022년 2월 김 전 회장은 광복회 수익사업을 악용한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가 불거지면서 자진 사퇴했다(관련기사 해임 투표 전 백기…‘횡령 의혹’ 김원웅 광복회장 논란 전말).
2019년 6월 김원웅 전 회장은 ‘약산 김원봉 서훈’을 추진하고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라 주장하면서 논란이 불거졌었다. 독립운동기념사업회들의 연합체인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 측과 예비역 군인단체인 재향군인회(향군) 측은 김원웅 전 회장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당시 국가보훈처 측도 “존경받는 보훈단체들이 서로를 비난하는 시위 형태로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많은 국민이 당황스러워 할 것 같다”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김원웅 전 회장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규정한 것을 놓고도 파장이 컸다. 김 전 회장은 2021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폭력적으로 해체시키고 친일파와 결탁했다”며 “이승만 내각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하나씩 제거됐고 친일파 내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김원웅 회장 광복절 축사 논란으로 돌아본 역대 광복회장 비사). 김 전 회장은 2022년 10월 30일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은 5월 22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거론됐다. 이날 강병원 민주당 의원은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사업이 전직 대통령 자격인가 독립유공자 자격인가”라고 물었다. 같은 당 윤영덕 의원은 “박 후보자가 이승만 기념관 건립 논란의 정쟁 한복판에 있다”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민식 후보자는 “제 개인적 소신은 확실하다”고 못 박았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개인 소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보훈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할 적절한 답변이 아니다”라고 했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기념관을 고려할 만한가”라고 질의했다. 박민식 후보자는 “전 전 대통령은 현행법상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지 못해 논할 가치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강 의원은 “전두환 씨와 이 전 대통령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강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을 향해 ‘내란죄의 수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이승만 대통령을 내란목적살인죄의 수괴로 생각하시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종찬 신임 회장은 정치 편향성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도 이바지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 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저는 여야 모두와 대화할 수 있다. 윤 대통령에게도 광복회 요구 사항을 전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다”며 “보훈부 승격에 여야가 모두 만장일치를 했는데, 여야가 격돌하는 시대에서 귀중한 일이다. 제가 오래전부터 여야 의원들에게 이야기한 덕분이다. 저와 광복회 입장을 여야 의원들이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원웅 전 회장은 사상적 편향성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많이 발생했지만, 저는 사상적 편향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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