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방송 내용 중 ‘경보 미수신 지역’ 해석 엇갈려…국무조정실 사실 확인 위해 본격 감사 착수
서울시 위급 재난문자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우선 발송 시점이 경계경보 발령보다 9분이나 늦었다. 경계경보 발령 이유, 대피 장소 등에 대한 정보가 문자에 전혀 담기지 않아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난문자는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나온 표준문안 그대로 작성됐다. 이 규정에는 표준문안을 활용하되 재난 상황에 맞는 문안으로 수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전혀 수정되지 않은 채 발송된 셈이다.
경기도 일부 시민들도 서울시 재난문자를 받으면서 혼란을 빚었다. 실제 5월 31일 오전 6시 41분부터 7시 10분까지 약 30분간 경기남부경찰청과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에 수백 건의 신고와 문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부실한 재난문자로 인해 시민들이 포털사이트로 몰리면서 접속마저 원활하지 않아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네이버 등에 따르면 오전 6시 43분부터 48분까지 네이버 모바일 버전 트래픽이 폭증하며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
서울시 재난문자는 일본 대응과도 비교된다. 같은 날 오전 6시 30분쯤 일본 정부는 전국 순시경보시스템(J-ALERT)을 발령하면서 오키나와현에 긴급 대피 명령을 내렸다. 서울시보다 약 11분 빨랐다. 그 내용도 ‘미사일 발사. 미사일 발사.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십시오’라고 구체적이었다.
정부는 재난문자 관련 규정을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6월 1일 행안부는 ‘재난문자 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 개선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계경보 발령 이유, 대피소 위치 등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정보를 재난문자 표준문안에 담는 것을 골자로 한다. 6월 1일 이동옥 행안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재난문자가 허술하다는 국민들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며 “전문가 의견과 외국 사례, 기술적 측면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재난문자 운영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예고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정부 부처와 지자체 간 대응 준비가 미흡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5월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오발령하고 행정안전부가 뒤늦게 바로잡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 기관끼리도 허둥지둥하면서 손발이 맞지 않아서야 되겠느냐”며 “이미 북한이 국제기구에 발사 사실을 통지했는데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새벽에 경계경보를 오발령하는 황당한 일이, 또 무책임한 무능한 일이 벌어졌다”고 꼬집었다.
앞서 5월 29일 북한은 일본 해상보안청에 ‘5월 31일 0시부터 6월 11일 0시’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통보한 바 있다. 낙하지점도 구체적으로 예고했다. △1단 로켓 낙하지점으로 ‘전북 군산 쪽에서 서해 멀리’ △페어링(위성 덮개) 낙하지점으로 ‘제주도에서 서쪽으로 먼 해상’ △2단 로켓 낙하지점으로 ‘필리핀 루손섬 동방 해상’을 각각 지목했다.
서울시 경계경보 발령을 두고 시와 행안부는 공방을 벌이고 있다.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이라는 행안부 지령 방송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다. 지령 방송은 행안부가 지자체와 정보를 공유하는 자체 내부망이다. 행안부 중앙통제소는 5월 31일 오전 6시 30분 ‘현재 시각, 백령면 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이라는 내용의 지령 방송을 보냈다.
서울시는 경보 미수신 지역에 서울이 포함됐다고 판단했다. 백령면과 대청면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모두 경계경보를 발령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서울시 측은 “서울시 민방위경보통제소에서 지령 방송 확인 차 행안부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며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기 전에는 우선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상황 확인 후 해제하는 것이 비상상황 시 당연한 절차”라고 주장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서울시 경계경보를 ‘오발령’이라고 정정한 행안부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5월 31일 오 시장은 서울시청 브리핑실에서 “행안부 지령 방송 수신으로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민방위정보통제소 담당자가 상황의 긴박성을 고려해 경계경보를 보냈다”며 “이번 긴급 문자는 현장 실무자의 과잉 대응일 수는 있지만 오발령은 아니다. 안전에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과잉이라고 싶을 정도로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입장을 발표했다.
행안부는 서울시가 지령 방송을 오독해 경계경보를 발령했다고 재반박했다. ‘경보 미수신 지역’은 백령·대청면 중 사이렌이 고장 나 경보를 받지 못한 지역이라는 것이 행안부 설명이다. 실제 지령 방송을 받은 17개 시도 중 서울시만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또 행안부는 오전 6시 42분부터 59분까지 총 5차례 걸쳐 서울시에 재난문자를 정정하라고 요구했지만, 조치가 늦어져서 오전 7시 3분 ‘오발령’이라는 문자를 직접 보냈다고 밝혔다.
6월 1일 이동옥 행안부 대변인은 “행안부가 17개 시도에 백령도 지역 경계경보 발령을 알렸고,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경계경보 발령) 조치했다”며 “재난문자 발송 체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서울시는 자체 판단해서 경계경보를 발령할 수 없다. 행안부 ‘민방위 경보 발령·전달 규정’에 따르면 민방공 경보 발령은 군에 요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지자체장은 지역 군부대장으로부터 일부 지역에 민방공 경보의 발령을 요청받거나 민방위 훈련을 위해 필요할 때에 민방공 경보를 발령할 수 있다.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발령하려면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요청이 있어야만 했다는 뜻이다. 행안부의 이번 지령 방송도 공군 지휘부 요청에 따른 조치였다.
당초 서울시가 수방사 요청으로 재난문자를 발송했다고 발표했다가 곧바로 행안부 중앙통제소 지령에 따른 조치였다고 정정한 것을 두고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6월 1일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서울시에 경계경보 발령을 요청한 주체가 누구냐. 수도방위사령부냐, 행정안전부 산하 중앙민방위경보통제센터냐”라고 질의했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수방사에서는 요청한 것이 없다”고 답했다. 이에 안 의원은 “장관의 말대로라면 서울시가 무턱대고 수방사를 언급한 꼴”이라고 질타했다.
국무조정실은 서울시와 행안부를 상대로 감찰에 착수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5월 31일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서울시 종합상황실과 재난상황팀 등을 상대로 밤샘 조사를 했다. 행안부 관련 부서에 대해서도 조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6월 1일 이동옥 대변인은 “국무조정실 중심으로 사실 확인과 조사를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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