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류 열풍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는 서울 명동 등 관광 명소에는 쏟아지는 관심 만큼이나 유명세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이제 그만 내버려뒀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명동 상인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도 때도 없이 들이미는 카메라에 몸서리를 쳤다. 처음에는 명동이 유명해지면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해 환영했지만 불과 5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치솟는 명동 땅값에 대한 소식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한류 열풍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그에 대한 후유증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유명세의 부작용으로 명동이 ‘동네북’이 됐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각종 행정단속이 시행될 때마다 늘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 지난 6월 11일부터 지식경제부가 시행 중인 ‘에너지사용의 제한에 관한 공고’에 따른 문 열고 냉방하는 영업행위에 대한 단속이 실시됐을 때도 명동과 강남 일대가 집중 포화를 맞았다. 지자체별로 주요 상권에 대한 단속을 벌이겠다고 했지만 명동은 ‘특히 낭비사례가 많은 지역’으로 거론, 계도·홍보기간부터 ‘특별 관리 대상’이 돼버린 것이다.
명동에서 의류업체를 운영 중인 김 아무개 씨는 “무슨 일만 있다하면 공무원들이 단체로 나와 단속한다. 냉방 단속을 한다는 소릴 듣고 또 한 번 시끄럽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며 “종로나 대학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냉방과 관련해 단속을 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 명동이 아무리 상징성을 가진다고는 하지만 형평성에 맞지 않은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지난 1일부터 서울 중구청이 직접 나서 실시하고 있는 명동 노점 ‘짝퉁’ 판매 단속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최창식 구청장은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명동에서 짝퉁을 판매하는 것은 명동은 물론이고 중구와 서울시 나아가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철저한 단속으로 짝퉁을 판매하지 않도록 하고 기업형 노점은 강력히 정비하는 등 명동에서 마음 놓고 쇼핑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명동 노점상들은 “주기적으로 나오던 이야기”라며 “언제는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다 알면서도 눈 감더니 이제와 난리”라는 반응을 보였다.
단속을 좋아할 사람이야 없겠지만 이처럼 명동 상인들이 단속에 대해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일부 상인들은 “정부기관에서 시범단속을 시행하겠다고 하면 미리 연락이 올 때도 있다. 그러면 다들 준비하고 있다가 몰랐던 척 연기한다”며 “협조를 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고 공무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으니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 서로가 짜증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명동의 유명세를 부담스러워 하는 이는 부동산업자들과 건물주들도 마찬가지다. 골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명동은 전반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경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다. 월세만도 1억 원이 훌쩍 넘는 곳이 수두룩하지만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현재 임대를 기다리는 기업들의 계약만 다 성사돼도 내가 재벌이 될 것”이라는 농담을 건넬 정도로 여전히 인기 만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매매계약이나 임대계약이 원활히 진행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명동에 들어오는 순간 내 재산이 다 까발려진다”는 말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명동에 입장하는 순간 대기업들에게도 예민한 임대료라든지 매출에 관심이 집중되고 공개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또한 세금 문제도 골머리를 앓게 만든다.
십 수년째 명동에서 부동산중개업에 종사해온 정 아무개 씨는 “명동과 청담동은 집중세무조사지역이라고 불린다. 매매가 이뤄지면 100% 세무조사가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특히 명동은 한때 사채업이 활발했던 곳이라 이러한 감시가 더욱 심하다”며 “억 단위의 거래에서 백만 원만 잘못 기재된 부분이 있어도 당장 국세청에서 연락이 와 실수에 대한 부담감이 다른 지역보다는 심한 편”이라고 털어놨다.
건물주들이 속을 끓이는 이유도 비슷하다. 명동이 뜨면서 공시지가도 올라가고 이는 곧바로 세금부담으로 이어져 부담스러운 것. “명동의 인기는 거품”이라는 80대의 한 건물주는 “나중에 거품이 꺼지고 월세가 떨어지면 어떻게 세금을 부담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건물주들은 상속 문제도 떠안고 있다.
명동은 고령의 건물주가 많아 상속도 비슷한 시기에 대거 이뤄진다. 현재 건물주는 1.5세대로 곧 2세대로 넘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개 자식들에게 재산을 넘길 때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으려 편법증여를 고려하는 경우가 많으나 명동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설령 실수로 누락된 부분이 발생하더라도 곧바로 날벼락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앞서의 건물주는 “사람 욕심이라는 게 불법인 줄 알면서도 세금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도 세금이 수천만에서 수억 원까지 되는 경우가 있어 관련 전문가에게 문의를 하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다들 건물이 명동에 있다고 하면 손사래를 친다. 명동은 어떻게 해도 걸리게 돼있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라고 전했다.
이동희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 역시 “지켜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세금을 회피하려 했다가는 폭탄을 맞는 수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식들에게 건물을 물려줄 때는 10원이라도 오차 없이 세금을 모두 내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고 말했다.
유명세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곳은 서울 한남동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남동 일대는 연예인들과 대기업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건희 삼성 회장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리움 관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모녀가 지난 2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300억 원대 빌딩을 공동명의로 구입했으며 앞서 배우 장동건도 맞은편에 빌딩을 구입한 것. 하지만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부동산 시장에 독이 됐다.
인근 부동산중개업 관계자는 “삼성 모녀나 장동건 씨의 건물 모두 현재는 매입가보다 떨어진 상태”라며 “유명 인사들이 빌딩을 구입하면서 ‘뜨는 동네’로 주목 받았으나 삼성까지 나섰다는 이야기가 퍼진 후 ‘이제 오를 대로 올랐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면서 매매 거래가 뜸해졌고 결국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