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횡령과 탈세 혐의로 검찰소환을 받은 선종구 전 회장. 일요신문 DB |
증여세는 수증자, 즉 받은 사람이 내야 한다. 선 전 회장 아들 선현석 씨가 채무자가 된 이유다. 검찰이 밝힌 체납액 760억 원에, 신고기간을 넘겨 가산세가 붙고, 여기에 근저당 설정 시 원리금의 120%인 채권최고액은 958억 원이나 된 듯하다.
근저당 내역엔 선 씨 주소지가 부친 선 전 회장 소유의 타워팰리스로 돼 있다. 하지만 선 씨가 대표이사로 올라있는 두 법인의 등기부상 주소지는 성수동의 G 아파트로 둘 중 하나는 잘못된 듯하다. 어쨌든 성수동 G 아파트도 선 씨의 소유는 아니었다. 전 주소지인 강원도 춘천의 아파트도 마찬가지. 이처럼 드러난 선 씨 소유 부동산이 없기 때문에 부친 명의 부동산들이 근저당 담보로 제공된 것으로 보인다.
보통 세금을 체납하면 세무서에서는 체납자의 재산을 압류하고 안 낸 세금을 내야 풀어준다. 그런데 선 씨의 경우 역삼세무서는 압류가 아니라 근저당을 설정했다. 게다가 958억 원이라는 채권최고액에 비해 담보는 턱없이 부족하다. 제아무리 타워팰리스라지만 공시가격 29억 4400만 원에 불과한 데다 이미 (주)엔바인을 채무자로 하는 채권최고액 30억 원의 근저당이 우선순위로 설정돼 있다. 공동담보인 서초동 빌라(4억 100만 원)와 합쳐도 33억 4500만 원, 두 담보의 최고 시세로 따진다고 해도 60억 원을 넘지 못한다.
부동산 경매 전문가도 고개를 갸웃할 일이지만 ‘처분청’인 역삼세무서 담당자는 “업무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법무법인 세종의 선 전 회장 변호인도 “우리가 담당한 분야가 아니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선현석 씨에게 직접 그 배경을 듣고자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고 직원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연락은 없었다.
세무 전문가들은 선 씨가 상속·증여세법상 연부연납(年賦延納) 제도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연부연납은 상속·증여세가 2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관할 세무서장의 허가를 받아 담보를 제공하고 일정 기간(보통 5년)에 걸쳐 분할 납부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터무니없이 적은 담보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국세청은 세금을 제대로 받아낼 수 있는 것일까. 이에 한 세무 전문가는 “아마 유가증권이나 현금 등 등기부에 표시되지 않은 다른 담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담보’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하이마트 주식이다. 선 전 회장 부자는 하이마트 주식 430만 1289주(지분율 18.22%)를 보유하고 있었다. 때마침 하이마트가 롯데쇼핑에 인수되며 그들이 확보하게 되는 현금은 주당 7만 원씩, 3011억 원에 이른다. 이 중 선현석 씨의 몫은 20만 주, 현금 140억 원으로 내야 할 세금의 5분의 1이 채 안 된다. 타워팰리스처럼 선 전 회장의 지분이 담보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선 전 회장이 대신 내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 전 회장 개인적으로도 자금 수요가 많은 데다 대신 낼 경우 또 다시 증여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 원 안은 아들 현석 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IAB홀딩스. |
앞서의 세무 전문가는 “국세청이 면밀하게 검토해서 담보설정을 했을 테고 약정대로 세금을 내지 않을 경우 곧바로 조치를 취해 세금을 못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현석 씨가 과연 ‘가업’을 지키며 8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낼 수 있을지, 또한 국세청은 세금을 다 받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