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수 총재가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해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요신문 DB |
한국금융투자협회가 지난 6월 27일부터 이달 2일까지 채권보유 및 운용관련 종사자 128개 기관 2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설문응답자의 93.0%는 한은이 7월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응답했었다.
심지어 세계적인 IB(투자은행)들도 대부분 7월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세계 경제 둔화세 지속과 한국 물가 상승 위험 완화 등을 이유로 8월 중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하될 것으로 전망했다. 노무라증권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에서 2.5%로 낮추면서 8월과 10월 2차례에 걸쳐 기준금리가 0.25%포인트씩 낮아질 것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4분기 중 0.50%포인트 인하를 예상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는 국내 채권 전문가는 물론 세계적 IB들의 전망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어서 상당한 파장을 남겼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전날 증권가에 퍼진 이유는 무엇일까. 10일 김중수 한은 총재가 청와대에서 열린 ‘서별관회의’에 참석해 가계부채 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때문이었다.
서별관회의란 청와대 서쪽에 위치한 별관에 기획재정부 장관, 한은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분야 책임자들이 모여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매주 화요일에 열린다. 한은 총재는 다른 참석자와 달리 필요에 따라 참석한다.
그런데 이날 서별관회의에 김중수 한은 총재가 참석했다. 서별관회의 시점도 미묘했다. 기재부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7%에서 3.3%로 크게 낮추는 등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태였다. 여기에 회의 주제가 가계부채 문제였다. 가계부채를 둘러싸고 기재부와 금융위, 한은 간 시각차를 보여 온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기재부와 금융위는 한은이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분위기였고, 한은은 기재부가 재정정책을 써서 소득과 일자리를 늘려주기를 바랐다. 서별관회의가 시장의 주목을 받은 것은 우리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가계부채 감소를 위해 경기 부양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었다.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이틀 앞둔 미묘한 시점에 한은 총재가 서별관회의에 참석한 뒤 기준금리가 변동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시장의 의구심을 강하게 했다. 지난 2004년 11월 금통위를 앞두고 박승 전 한은총재가 서별관회의에 참석한 뒤 동결될 것이라는 시장을 비웃듯이 당시 기준금리로 사용되던 콜금리를 전격적으로 인하했다.
2008년 10월에는 금통위 직전 이성태 전 한은총재가 서별관회의에 참석한 뒤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이를 의식한 듯 “(서별관회의에서) 경제성장이라든지, 금리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금통위에 매번 참석하던 신제윤 기재부 1차관이 불참한 것을 놓고 이미 기재부와 한은 사이에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사전 교감이 있었던 때문 아니냐는 해석이 적지 않다. 기재부 1차관은 지난 2010년 1월부터 금통위에 참석했으며 지난해 9월 1차관 자리가 공석이었을 때만 빠졌다. 공석도 아닌데 금통위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제윤 차관은 태국에서 열리는 ADB(아시아개발은행)과 IMF(국제통화기금) 주최 회의에 참석하느라 불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채권 전문가는 “김중수 한은 총재의 서별관회의 참석이나 신제윤 차관의 금통위 불참이 동시에 벌어진 것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김중수 총재 성향상 청와대나 기재부로부터 뭔가 사인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한은의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에는 다음 날 개최된 경제전망 발표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한은은 13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3.5%에서 3.0%로 대폭 낮췄다. 특히 경제의 하방 위험성이 더 크다고 밝혀 실제 성장률이 3.0%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내는 등 한국 경제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경제전망을 대폭 수정할 한은이 전날 발표하는 기준금리를 그대로 묶어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과거 한은은 금통위와 경제전망 발표 시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2008년까지만 해도 금통위 개최 일자를 고려하지 않고 경제전망 발표를 진행해왔다. 그때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시장이 금통위 개최 전에 발표되는 한은 경제전망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혼선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2008년 12월 ‘2009년 경제전망 발표’ 때부터 경제전망 발표시점을 금통위 회의 개최 이후에 하기로 전격 조정했다. 시장 반응을 고려해 경제전망 날짜를 조정한 점을 생각하면 이번 경제전망 이전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한은이 시장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는 분석도 있다. 기본적으로 시장의 금리는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단기보다 장기적으로 돈을 맡겼을 때 더 높은 금리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있어야만 돈이 제대로 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장기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단기 금리를 대표하는 기준금리를 밑도는 현상이 발생했다. 6월 말 3.30%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6일 3.23%로 기준금리(인하 전 3.25%)를 밑돌더니 9일 3.21%, 10일 3.19%로 계속 하락했다. 한은과 달리 시장은 향후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방향에 베팅을 하면서 기준 금리 인하 압박을 가해왔던 것이다.
한은 관계자도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라며 “시장이 한은의 결정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시장 전문가들이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을 전망했던 것은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이 항상 한발 늦어왔다는 ‘경험칙’ 때문이었다.
시장의 불신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인하한 12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하락하면서 2.97%를 기록, 다시 기준금리를 밑돈 것이다. 시장이 한은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하라고 사인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