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종은행론을 외치던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의 ‘근신’이 눈길을 끌고 있다. | ||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금융그룹이 조용해졌다. 우리금융그룹의 수장인 황영기 회장은 더욱 더 조용하다. 지난해 말부터 ‘토종은행론’을 들어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에 견제구를 날리던 공격적인 모습과는 완전히 바뀐 모습이다. LG카드 인수 의지를 밝히던 모습과는 달리 인수전 출발선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금융지주사의 내실을 챙길 때’라는 게 우리금융지주 쪽의 설명이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경영관이 바뀐 것일까? 황 회장은 최근 들어 인수전 아닌 다른 곳에서 심심찮게 이름이 들먹여지고 있다.
지난달 말 김재록 수사가 본격 시작되면서 우리은행의 불법대출 연루설이 제기되는가 하면 황 회장과 김 씨가 동문이라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류’로 시작된 현대자동차 수사가 ‘본류’가 되고 김재록 씨의 로비 수사보다 현대자동차가 더 큰 주목을 받으면서 한 달여가 지났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수사가 마무리되자 또다시 김재록 씨의 금융계 인맥이 화제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련 인사들이 최대한 몸 낮추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금융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LG카드 인수도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예보)가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이 역시 공적자금이 투입된 LG카드를 인수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포기했다.
여기에 3월 말 우리은행 노조가 경영진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고, 4월 초에는 증권산업노조가 황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내부 갈등까지 겹치면서 황 회장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증권산업노조는 “공적자금 사업장인 우리금융이 브로커와 결탁한 것은 국민에게 피해를 준 것이며, 김재록 게이트에 동참한 이헌재 사단의 황영기는 퇴진하라”는 성명서를 4월 6일 발표했다. 증권산업노조가 제기하는 황 회장과 김 씨의 관련성은 세 가지. 첫째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이 옛 우리증권을 유상감자하고 현행법에 충족되지 않음에도 금융감독위원회가 LG증권을 자회사로 승인한 것은 사실상 이헌재 전 부총리의 작품이며 ‘이헌재 사단’의 황영기 회장은 꼭두각시”라는 것이다. 이는 최근 예보가 LG카드 인수전에 우리금융그룹의 참여를 사실상 불허했다는 점에서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둘째 이헌재 전 부총리가 2004년 1월 펀드를 조성해 우리금융을 인수할 의사를 밝힌 바 있고 이에 김재록 씨가 개입된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황 회장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셋째 우리은행의 부천 튜나쇼핑몰 대출에 대한 김씨의 로비 의혹, 우리금융이 김 씨 회사인 인베스투스글로벌의 사모펀드에 투자하기로 했던 것 등이 황 회장과 김 씨가 연루된 근거라는 것이다.
당시 우리은행은 의혹이 제기되자 우리프라이빗에퀴티펀드와 인베스투스파트너스가 조성할 예정이었던 7000억 원 규모의 1호 펀드에서 손을 뗐다. 또 황 회장은 “튜나 쇼핑몰 325억 원 대출은 김 씨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이미 100억 원을 회수한 ‘잘 된 투자’”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증권산업노조가 황 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당시 통합되지 않고 있던 옛 LG투자증권 노조와 옛 우리증권 노조와의 통합에 따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경영진에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노조가 황 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전임 수석부위원장이 옛 우리증권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옛 우리증권의 유상감자시 한 달 이상 장기파업을 할 때 우리금융의 장기대처로 ‘실패한 투쟁’으로 끝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 아니냐는 것.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4월 말 두 노조가 통합되어 황 회장의 퇴진은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 노조가 3월 제기한 성과급 미지급 해결 요구도 본부장급 이상 70여 명의 성과급 50% 이상을 반납받아 이를 직원들의 성과급(160%)으로 지급해 해결했다. 당시 노조는 경영실적 호전에도 경영진이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자 경영진의 사퇴를 요구한 것이었다. 이에 은행 측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이라 판매관리비용 47% 제약 때문에 성과급을 줄 수 없다고 버텼었다.
한편 하나은행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기대됐던 LG카드 인수전을 우리금융이 포기한 것과 관련해 재경부와 청와대에서 황 회장에게 경계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외환은행 불법매각 의혹과 관련해 주목받고 있는 S-S(서울고-서울대) 인맥에 대한 경계령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것.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이미 구속된 전용준 전 외환은행 상무와 박순풍 엘리어트홀딩스 대표, 외환은행 매각 당시 주간사였던 모건스탠리코리아의 양호철 대표,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가 서울고 동기다.
우리금융 측은 “우리금융이 LG카드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이 공적자금이 투입된 다른 금융기관 인수전에 뛰어들어선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황 회장과 정부간 갈등설의 또 다른 근거로 이명박 서울시장과 황 회장이 친해서 현 정부 실세들과 껄끄러운 관계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서울시 주거래은행이 우리은행이므로 이 시장과 황 회장이 자연스레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데다, 올해 초 이 시장이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황 회장을 영입하려 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한나라당 단체장 후보로 정운찬 서울대 총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 어윤대 고려대 총장, 오세훈 전 의원, 정몽준 의원과 함께 황영기 회장이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었을 뿐이다. 삼성증권 출신인 황 회장이 기업체에 있을 때 이 시장과 만난 적이 있는지는 몰라도 후보 영입은 이 시장과 관련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