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전경. | ||
<일요신문>은 이미 725호(2006년 4월 9일자)를 통해 ‘검찰, 김재록 닮은꼴 브로커 K 씨(김 아무개 씨) 내사 확인’이란 내용을 보도했다. 그런데 내사단계에 있던 김 아무개 씨 사건이 확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검찰 주변의 스포트라이트가 온통 현대차 정몽구 회장 일가에 향하는 사이 김 씨가 수차례 검찰청사를 드나들며 조사를 받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정관계에선 이미 사건의 주연과 조연이 어느 정도 드러난 현대차 사건보다는 물밑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김 씨 사건에 더욱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현재 검찰청사 주변에선 ‘김 씨에 대한 사법처리 시점이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그 충격파는 한달음에 여의도까지 퍼져나가고 있는 상태다.
김 씨가 관련된 주 혐의는 기획부동산 사기 건이다. 김 씨 소유의 A 기업은 여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대부분 부동산 매매와 투자 자문을 주로 하는 업체들이다. 그런데 이 계열사들 중 몇몇 업체에 대해 154명이 지난해 말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방의 온천 일대 분양과 관련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 이 소송 내용의 골자다. 이 건에 대한 재판이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이 소송이 접수된 것은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검찰이 김 씨에 대한 내사를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말이라고 한다. 검찰의 김 씨 관련 내사가 위 소송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소송을 당한 A 기업 계열사들의 등기부등본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발견된다. 각 계열사 등기부에 등재된 이사 감사 명단이 대부분 일치하는 것이다. 여기엔 김 씨 친인척도 다수 포함돼 있다. A 기업 이름을 딴 여러 계열사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기획부동산 사업에 달려든 것으로 보인다. 이 계열사들은 모두 부동산 매매와 투자 자문을 주력으로 한다고 등기부상 기재돼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김 씨가 검찰청사에 2~3일에 한번 꼴로 모습을 드러내자 청사 내에선 ‘내사단계에서 사법처리로 가는 수순’이란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게 됐다. 이미 수사당국이 김 씨 혐의를 입증할만한 단서를 잡았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그렇다면 김 씨의 혐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기획부동산 사기 혐의로만 놓고 본다면 당대의 브로커 사건에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잡범’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씨의 인맥 때문에 대형 브로커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게 검찰청사 주변의 이야기다. 김 씨는 호남 지역의 한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지역의 유력 향우회 수석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호남 출신 정치인들과의 친분도 돈독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최측근이었으며 동교동계 핵심이었던 K 전 의원과의 관계가 가장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 씨는 한 청소년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했는데 K 전 의원은 이 단체의 고문직을 갖고 있다. 이 외에도 김 씨는 호남 출신 전현직 의원들은 물론 호남 출신 재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다져온 것으로 알려진다.
김 씨의 A 기업은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선후보 캠프에 영수증 없이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김 씨는 청소년문화재단 활동으로 인해 지역단체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으며 국민화합 공로를 인정받아 현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전력도 있다. 김 씨는 호남 출신 정·재계 인사들 사이에선 제법 알려진 인물이라고 한다. 만약 김 씨 혐의에 이들 정·재계 인사들 중 일부가 포함돼 있다면 윤상림 김재록씨 사건에 이은 또 하나의 대형 게이트로 발전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셈이다.
김 씨의 A 기업은 지난 2003년엔 전남 지역 한 도시의 관광개발단지 사업에 1200억원을 투자했으며 2004년엔 충남 당진 지역에서 부동산 분양에 관여했다는 소문도 있다. 이 때문에 전남 일대 개발사업인 J프로젝트나 당진군 소재인 행담도 개발 의혹에 A 기업이 관여했을 가능성도 검찰청사 주변에서 거론되고 있다. J프로젝트나 행담도 건은 유력인사 개입 의혹으로 한동안 정치권과 수사당국 주변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들이다.
김 씨가 최근 검찰청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법처리설까지 나돌고 있음에도 아직 이 사건이 공개되지 않는 배경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거론된다. 우선 김 씨의 정치권 인맥이 김 씨 혐의에 조금이나마 포함돼 있을 경우 발생할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김 씨 인맥은 호남지역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크든 작든 DJ측 인사들 이름이 거론되는 사건이 공개될 경우 이는 적지 않은 정치공세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검찰을 부담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공개는 시간문제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 씨 사건 수사 공개 문제를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간의 역학관계에서 보는 시각이다. 대검 중수부는 이번 현대차 수사로 인해 기세를 높인 상태며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이 빚어지는 가운데 ‘대검 중수부 역할론’을 크게 주장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듣는다. 현재 김 씨 사건 담당은 서울중앙지검이다. 최근 검찰청사 주변에선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에서 최근 굵직한 사건에 관여하고 있는 같은 기수의 두검사 간에 경쟁이 붙었다는 소문도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그동안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건 등을 다루면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둬왔지만 대검 중수부의 현대차 사건 ‘한방’에 묻혔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우연인지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한 몇몇 재벌총수와 관련 ‘봐주기’ 논란이 나왔었다는 점도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받게 만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도 ‘한건’해야 할 처지인 것이다. 김 씨 사건이 세인들의 예상대로 대형 사건으로 ‘확인’될지 단순한 기획부동산 브로커 사건으로 종결될지 주목받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