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생기기 전부터 사교육 계속 성장…경쟁 고통 줄이는 2028학년 대입제도 개편안 필요
#정부 “사교육 부담 줄이고 공정한 수능 만들겠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6월 15일 대통령실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개혁 추진 방향을 보고 받은 뒤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최근 사교육비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강력히 추진해달라”며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윤 대통령은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는 건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며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인가”라고 질책했다고도 한다.
또한 이주호 부총리는 21일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브리핑에서 “공교육의 혁신을 통해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 내에서 흡수함으로써 사교육을 줄여나가는 한편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겠다”며 “학생들이 학원으로 내몰리지 않고 학부모들이 사교육 부담에서 벗어나도록 공정한 수능을 꼭 만들겠다”고 밝혔다.
#“교육과정 범위 내 출제 당연…킬러문항 배제 지지”
교육·교원 단체 대부분은 킬러문항을 사교육 경쟁의 원인으로 생각하며 정부의 킬러문항 배제 지시에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측은 “수능 국어·수학 등에 출제되는 킬러문항은 오래전부터 학교 교육만으로 풀어내기 어렵다”며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학원을 찾고 학부모는 사교육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능은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했는지, 대학 수학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는 평가라는 점에서 학교 교육과정에 없는 킬러문항 배제는 당연하다”고 밝혔다.
이형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은 “수능을 학업이 가능한 정도를 판별하는 시험으로 복원해야 하는데, 변별력 자체만을 목적으로 킬러문항을 낸다”며 “특히 의대 지원 편중화가 심해지면서 킬러 문제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교육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의 신소영 정책팀장은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수능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기에 정부의 킬러문항 배제 지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학교 시험은 선행학습 규제법에 의해 교육 과정 내에서 출제되지만, 수능에는 적용되지 않기에 킬러 문제가 속출한다”며 “수능에도 똑같이 선행학습 규제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사걱세 “수능 절대평가·대학 평준화 필요”
교육 단체 및 전문가들은 사교육 근절을 위해서는 수능뿐 아니라 교육과정 및 대학입시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형민 전교조 대변인은 “수능 난이도만 조정한다고 해서 사교육 절감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다. 대학입시 제도 및 정책과 관련해 장기적인 논의와 보완이 필요하다”며 “대학 평준화, 절대평가 등을 공론화해 꾸준히 합의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소영 사걱세 정책팀장도 “대학 서열화가 극심하고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이 극소수인 입시 구조상 변별력에 대한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단순히 킬러문항을 몇 개 제외하는 것만으로 사교육 경감과 학교 정상화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쟁 교육으로 인한 학생들의 고통을 줄이는 차원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거나 학생들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하는 제도 등이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에서 나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초·중 사교육비,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사교육 조장도 문제”
일각에서는 고교 서열화와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자사고), 외국어고등학교(외고), 국제고등학교(국제고) 등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교총은 현 정부의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 결정에 찬성했지만 해당 교육 기관들이 본래 취지를 살려야 하며, 사교육을 조장하거나 입시 교육에 매몰되지 않도록 교육 당국이 지원‧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한국교총은 “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은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뽑고 국영수 위주의 입시 교육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교육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위권 학생들만 선발하지 않고, 국영수 위주가 아닌 모든 교육 과정을 골고루 운영하도록 교육 당국이 감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류수열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는 “킬러문항 논란이 생기기 전에도 사교육은 계속 성장해왔으며 사교육비도 꾸준히 증가했다. 특정 대학 및 전공 선호 현상과 맞물려 경쟁이 심해진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등학교만이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 단계에서 사교육비 지출이 증가하는데 특히 중학교 단계에서는 특목고 진학을 위한 사교육이 성행한다”며 “‘공정 수능’보다는 ‘공정 교육’을 더 지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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