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 답답, 드라마도 답답” vs “각색 안 돼 좋아”…프로듀서 “어느새 일본 원전 추진 나라 돼” 우려
드라마 ‘더 데이스’는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가 발생한 날부터 수일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포착한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회사 그리고 현장에서 대치하는 작업원들이 각각의 시각에서 미증유의 원전사고를 쫓는다. 후지TV 의학드라마 ‘코드블루’로 유명한 니시우라 마사키 감독과 공포영화 ‘링’으로 잘 알려진 나카타 히데오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주인공은 사고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이었던 고(故) 요시다 마사오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야쿠쇼 코지가 주인공으로 분해 열연을 펼친다. 각본 및 프로듀서를 담당한 마스모토 쥰은 “누군가의 영웅담으로 그리지 않기 위해 사실에 충실했으며 과장된 표현을 배제했다”고 밝혔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드라마로 제작한 이유를 묻자 “그날의 사고가 아직 수습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일본 내에서도 누군가에게는 ‘이제 끝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폐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마스모토 프로듀서는 “12년 전 일어났던 사고가 아니라,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드라마 타이틀을 더 데이스(THE DAYS)라고 붙인 것 역시 “(사고 발생) 그날이 서막일 뿐 아니라 ‘THE DAYS’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 2020년 3월 기준 후쿠시마현의 ‘귀환곤란 지역’은 나고야시의 면적과 맞먹는 337km²”라고 한다. 몇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의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스모토 프로듀서는 “원전을 부정하는 쪽도 찬성하는 쪽도 아니다”면서 “이데올로기를 작품에 그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일본에서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이라는 이름 아래, 원전의 수명 연장과 신규 건설 이야기가 활발하다는 점에는 우려를 표했다. 참고로 올해 2월 일본 정부는 “2050년 탈탄소 사회 실현을 위해 원전도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을 결정한 바 있다. 이로써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강화됐던 규제가 대폭 완화될 전망이다.
“어느새 ‘원전 추진의 나라’가 됐다. 우려되는 건 ‘어느새’라는 점이다. 아무도 거기에 관심이 없다고 할까. 깨닫고 보니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12년 전에는 모두 ‘낡은 원전 가동을 멈추자’고 했는데, 지금은 ‘오래된 것을 활용하자’가 됐다.” 마스모토 프로듀서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원전사고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제작 배경을 밝혔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더 데이스’는 총 8부작이다. 드라마적인 요소보다는 실제 현장감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시종일관 무겁고 느리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나치게 재현에 집착한 것이 평가의 갈림길이 된 듯하다.
미국의 작품비평사이트 ‘아이엠디비(IMDb)’에서는 10점 만점에 7.3점을 받았다. 낮은 점수를 준 관객들은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우며 극심한 지루함을 겪었다”고 혹평했다. 특히 “극 중 일본인들의 느린 의사결정이 답답하다”는 의견이 눈에 띈다. 한 관객은 “최악의 재난에 직면했을 때 일본인들은 이런 식으로 의사결정을 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원전사고를 다룬 또 다른 드라마, 미국 HBO의 ‘체르노빌’과 비교하는 평가도 많았다. 한 관객은 “체르노빌 시리즈에서 맛봤던 비극적인 분위기를 이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냉정히 말하면 방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실존 인물이나 조직에 가명을 사용한 점도 아쉽다”면서 “정면으로 거론했더라면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높은 점수를 준 관객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할 경우, 할리우드식 스릴러처럼 과도한 각색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고 평가했다.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이 잘 그려져 있다”는 의견이다.
해외 대형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에서도 관련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네티즌들은 “리얼을 너무 추구한 나머지 기분 나쁜 골짜기에 빠졌다”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무너졌다. 관료주의는 어디서나 ‘고질병’인 것 같다” “당시 사고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사고를 부각시키고 마지막에는 비통한 메시지로 끝맺는다” 등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 최대 리뷰사이트 필마크스(Filmarks)에서는 평점 4.2점(5점 만점)을 기록 중이다. 자국의 원전사고인 만큼 “일본인이라면 꼭 봐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 네티즌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전개 중이며 환경 파괴도 계속되고 있다”고 일침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수소폭발이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의 윗부분은 녹슨 철골이 처참한 모습이 드러나 있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원전 폐로 작업은 앞으로 수십 년의 시간과 수많은 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순탄하게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비용 또한 일본 정부의 추산으로는 21조 엔(약 191조 원)으로 알려졌으나 이를 뛰어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장 오염수 방출 문제만 해도 후쿠시마현 주민들과 이웃 국가들의 이해를 얻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쿄신문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될 때까지 성실한 정보 제공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3월 11일, 그날의 재해는 아직 수습되지 않았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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