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죽은 박 전 국장을 통해 얻으려 했던 것은 서울시와 현대차의 구체적 관계였을 것이며 이를 더 파고들면 결국 ‘정몽구 회장과 이명박 서울시장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박 전 국장 자살에 앞서 검찰은 현대차 양재동 사옥 관련 비리 혐의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을 구속했다. 이를 두고 검찰청사 주변에선 논란 끝에 정몽구 회장을 구치소로 보낸 수사당국이 이젠 서울시를 향해 화력을 쏟을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더욱이 한때 이 시장의 아킬레스건이라 불렸던 김경준 씨가 곧 국내로 소환될 것으로 알려져 이 시장에 대한 수사당국의 압박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 수사 초기 양재동 사옥 증축 허가 논란은 주요 쟁점 사안이었지만 이내 묻혀버렸다. 정몽구-정의선 총수 부자에 대한 구속 문제가 한참 동안 검찰청사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회장이 구속 수감되면서 양재동 사옥 문제는 비자금 출구와 맞물려 검찰 조사의 본류로 형성됐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서울시가 검찰의 현대차 수사과정에서 어떤 시점에 어떤 형태로 언급될지는 호사가들 사이에 늘 관심거리였다. 그들의 궁금증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검찰은 정 회장 구속 이후 양재동 사옥 증축 과정에서 현대차와 서울시 간에 어떤 교감이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현대차-서울시 관계 수사는 지난 5월 12일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의 구속 수감으로 사실상 재점화됐다. 정대근 회장은 2005년 11월 농협중앙회 소유의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 부지 285평을 66억 2000만 원을 받고 현대차에 팔면서 한 달 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객실에서 김동진 현대차 총괄부회장을 만나 3억 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정대근 회장 구속 당시 검찰은 “하나로마트 부지는 양재동 사옥을 쌍둥이 빌딩으로 증축하기 위한 서울시 인허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밝혀 호사가들의 이명박 시장에 대한 시선을 차단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3일 후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이 투신 자살하자 검찰청사 주변은 이 시장과 서울시에 대한 온갖 추측과 억측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박 전 국장은 지난 4월부터 3∼4차례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았으며 5월 15일 오전 검찰 출두를 앞두고 죽음을 택했다. 그의 유서 내용을 보면 검찰 수사가 궁극적으로 어느 선을 향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는 유서에는 ‘처음 김재록의 로비 사건에서 출발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돼 가는 과정에서 건물 증축과 관련된 종합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서울시의 책임을 무리하게 만들어 가고 있음’ ‘(검찰이) 본인을 괴롭혀서 항복을 받아낼 욕심으로 저와 돈 거래한 처남은 물론 처남과 돈거래한 사람까지 계속 확대하고 있음’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검찰조사를 받았던 인사들이 “일단 개인비리를 철저하게 캔 뒤 이를 무기 삼아 큰 진술을 얻어 낸다”고 입을 모아온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 이명박 서울시장 | ||
박 전 국장 자살 이후 검찰은 “강압 수사나 폭행 폭압은 절대 없었다”고 밝혔다. 유서 내용에 대해서도 검찰 측은 “(박 전 국장의) 주관적 생각일 뿐”이라 못 박았다. 박 전 국장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유서를 남겼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3~4차례 검찰조사를 받은 박 전 국장이 과연 자살을 택해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박 전 국장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자백이 필요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돌고 있다. 이런 정황 탓인지 검찰청사 주변을 맴도는 인사들 사이에선 ‘이번 수사의 종국이 이명박 시장을 향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도는 상황이다.
수사당국과 이 시장과의 관계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김경준 씨 송환 문제다.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이사였던 김경준 씨는 지난 2001년 이명박 서울시장의 친형이 대표이사로 있는 다스사의 자금 등 약 3000만 달러를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받자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현지에서 미국 수사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익명의 한 수사당국 관계자는 “김경준 씨의 송환 일자가 6월 중순으로 정해졌다”고 밝혔다. 당국은 아직 김 씨 송환문제에 대한 공식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은 이미 지난해 10월 ‘김 씨 송환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김 씨측 변호인의 구속적부심사 신청 등으로 송환 일정이 지체돼 왔다.
이 시장은 김 씨와 함께 사기혐의로 고소를 당한 전력이 있다. 김 씨의 미국 도피 이후 이 시장 측에 대한 고소는 취하됐지만 김 씨 문제는 이 시장의 주요 행보 때마다 등장해 구설수를 만들었다. 김 씨가 국내 송환 이후 자신의 구명을 위해 이 시장에 대한 ‘도발적인’ 언급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씨 송환 이후 추가 조사과정에서의 변수 등장도 관심거리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김대업 씨가 제기한 병풍 의혹 때문에 당시 유력 대권주자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지지율이 흔들렸던 바 있다. 결국 김대업 씨가 제기했던 의혹들은 이 전 총재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 전 총재는 두 번 연속 대선 패배의 쓴맛을 봐야했다. 김경준 씨 귀국 이후 그의 입에서 어떤 얘기들이 나오느냐에 따라 현재 대권 지지도 1~2위를 다투는 이명박 시장 또한 그 진위와 상관없이 곤란을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