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안팎 경제 ‘퍼펙트 스톰’ 주의보
지난 ‘5월 위기설’의 이유는 크게 프랑스 대통령 선거, 스페인의 은행 문제, 중국의 성장 둔화, 이렇게 세 가지였다. 프랑스 선거는 어쨌든 끝났으니 제외됐지만 9월 위기설에 스페인과 중국 문제는 여전하다. 그런데 여기에 미국과 그리스, 그리고 우리 국내 문제가 추가된다. 위기설에 대한 내성(耐性)이 강해지다 보니 그리 신선한 재료는 아닌 듯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그 심각성이 지난 5월을 넘어선다.
그리스 문제는 8월이 아닌 9월 위기설에 무게가 실리는 가장 큰 이유다. 현재 그리스에는 국제통화기금(IMF)·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 ‘트로이카 실사단’이 실사를 진행 중이다. 그리스에 돈을 더 대줄지 말지를 결정할 이들 세 기관의 실사결과는 9월에 나온다. 결과가 부정적이면 그리스는 다시 한 차례 폭풍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9월에는 또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가 스페인 신용등급 결정을 내린다. ‘Baa3’으로 간신히 투자등급에 턱걸이 하고 있는 스페인이 그 아래인 투기등급으로 떨어진다면 충격이 불가피하다.
9월 12일에는 독일 헌법재판소의 유로화안정기구(ESM) 위헌 여부 판결이 예정돼 있다. 재정위기 국가들에 돈을 대주는 역할을 하는 ESM에 독일이 돈을 내는 게 위헌이라고 판결이 난다면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물론 현재 단계에서는 위헌 판결 가능성이 낮지만, 최근 독일의 신용등급마저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아지며 강등 가능성이 높아진 마당에 독일이 어떤 판단을 할지 속단하기는 이르다.
허재환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스페인 구제금융안이 EU특별재무장관회의를 통과한 이후 9월까지는 유럽 문제해결을 위한 중요한 일정이 없다”며 “스페인 국채만기가 7월 이후 8~9월에는 3분의 1 미만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자금조달에 심각한 이상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이탈리아의 국채만기 규모가 만만치 않아 9월까지 불안감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9월 위기설이 5월과 다른 또 다른 점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경기까지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7월 미국의 제조업지수(PMI)는 6월(52.5)은 물론 예상치(52)에도 못 미치는 51.8로 지난 2010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추가로 돈을 더 푸는 세 번째 ‘양적완화’보다는 다소 약한 ‘우회적인 방법’으로 경기부양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역으로 해석하면 아직 경기가 양적완화라는 마지막 카드를 써야 할 만큼 최악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회적 방법은 8월 중 시행될 가능성이 높은데, 자연스레 9월에 나올 경기지표에 관심이 쏠린다. 또 9월이다.
최근 경기부양책 덕분에 회복세를 보이는 듯한 중국도 여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시장이 중국의 추가부양책을 목말라하는 이유다. 양경식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최대 수출국이 유럽이고 미국 역시 유럽이 굉장히 중요한 수출 파트너이며 중국의 경제가 미국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질적으로 세 나라가 연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유로존의 문제가 단기적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이 미국과 중국 경기의 침체를 막아내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해외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9월 위기설이 치명적일 수 있는 이유는 우리 국내 사정이다. 수출은 둔화되고, 내수는 침체되는데 가계부채 문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자산가격 하락이 지속되면서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부채질하는 셈이다.
유럽-미국-중국, 3대 수출시장의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최근 수출둔화세가 뚜렷해졌다. 이는 수출기업의 이익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상장사 이익감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2009~2011년 이익이 늘어나던 추세가 꺾이는 셈이다. 실제 최근 증권사들의 올 연말기준 상장사 이익전망치는 연초대비 15%가량 낮아졌다. 이익이 줄어들면 그만큼 주가하락의 빌미가 된다.
수출뿐 아니라 내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주식 부동산 등 주요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이 진행 중인데, 여기에 한국은행 금리인하와 이상기후에 따른 농작물 수급차질로 인한 물가상승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오죽하면 정부가 8조 원이 넘는 재정지출 확대를 결정하고, 지난 7월 21일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내수회복을 위한 ‘끝장토론’까지 열었을까.
올 하반기에 낮은 신용등급 회사채 만기가 대거 몰린 것도 변수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일수록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상환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 기업은 더욱 자금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KIS채권평가가 집계한 올 하반기 만기도래 ‘BBB+’ 등급 이하 회사채(공사채 포함)는 총 2조 2667억 원 규모로 전체 회사채 만기 15조 2304억 원의 14.8%나 된다. 상반기에는 이 비중이 8.8%였다. 특히 이 중 절반이 ‘BBB0’ 이하다. ‘정크본드’로 통하는 투기등급 회사채는 ‘BB+’ 이하지만 국내에서 기관투자가들은 ‘BBB0’부터는 거의 투자를 안 한다. 그만큼 발행하는 회사의 부담이 더 큰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운용책임자도 “스페인은 어찌됐건 한 번 제대로 터질 수밖에 없다. 그 후폭풍은 동유럽은 물론 중남미까지 강타할 수 있다. 여기에 국내 물가상승과 가계부채, 그리고 내수침체가 겹치면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는 전면적인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나타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해 증시가 1780선을 방어선으로 지탱했지만 현재로서는 이 방어선마저 무너진다면 1700선 초반으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오가고 있다. 그리고 대형 악재로 1700선마저 무너진다면 이후에는 지지선을 예측하기 어려운 패닉(Panic) 장세가 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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