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가의 ‘대권승계’ 작업이 가신들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상무. | ||
이에 발맞춰 재계엔 ‘삼성그룹 내 대규모 조직 개편이 일어날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올 2월 삼성은 ‘반 삼성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구조조정본부(구조본)를 전략기획실로 축소 개편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삼성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일정 부분 희석시키기도 했지만 이건희 회장 체제를 떠받쳐온 주요 인사들이 여전히 건재한 것에 대해 ‘구조만 바뀌고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나도는 삼성 내부 개편설은 올 초 구조본 축소 개편보다 훨씬 더 큰 범위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른바 ‘10년 주기설’로 불리기도 한다. 10년 단위로 삼성그룹 내 큰 틀을 바꿔온 이건희 회장이 다시 한번 대대적인 내부구조 개편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도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재계 인사들이 삼성의 대규모 조직 개편 가능성을 거론하는 주된 배경으로 검찰의 이건희 회장 소환 가능성을 들 수 있다. 검찰청사 안팎에선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조사과정에서 ‘총수일가와 관련이 있다면 이건희 회장도 소환 가능하다’는 말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속에 이은 ‘형평성 논란’도 이 회장 소환 가능성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이다.
6월 22일에 열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관련 항소심을 전후로 이 회장 소환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법조계 호사가들의 단골 메뉴가 될 전망이다. 지금껏 총수일가에 대한 ‘무소환 신화’를 자랑해온(?) 삼성 입장에선 만약 이 회장 검찰 소환이라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대대적인 내부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삼성 조직을 이끌고 있는 전략기획실(옛 구조본) 핵심 인사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내년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점 또한 삼성의 대규모 조직 개편설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무노조 신화’로 대변돼 온 삼성그룹 내에도 수많은 노동조합(노조) 설립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재계와 노동계 시민단체 인사들은 삼성이 지금까지 노조 설립을 잘 막아낸 일등공신으로 주저 없이 ‘유령 노조’를 꼽는다. 삼성 내 노동운동가들이 수차례 노조 설립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누군가(?) 나서 관할관청에 노조 설립 신고를 미리 했다는 것이다. 한 법인 안에 단일 노조만이 허용돼 온 점을 이용한 셈이다.
그러나 내년부터 관련 법규가 수정돼 복수노조가 허용되므로 삼성으로선 노동자들의 자체적인 노조 설립을 막을 수 있는 방편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 됐다. 한 재계 인사는 “복수노조 시대 개막에 앞서 삼성이 내부감사 기능을 강화하고 노조 설립 움직임을 보여온 직원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고 전한다. 특히 전략기획실 내 인사지원팀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는 소문과 함께 복수노조 시대에 대비한 전략 짜기에 몰두해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최근 삼성 전 계열사에서 주말 근무나 토요일 행사를 축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 역시 복수노조 시대를 염두에 둔 노동환경 개선책으로 풀이된다.
삼성 대규모 조직 개편설은 이른바 ‘10년 주기설’의 관점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지난 1987년 6·29 선언 직후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삼성 내에도 조직적인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끝내 무산됐다. 이후 삼성은 각 계열사별로 인사담당 부서의 권한과 기능을 확대해 조직 추스르기에 나선 바 있다. 인사팀 강화를 토대로 요주의 인물을 사전에 관리, ‘우환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의도였던 셈이다.
최근 삼성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이른바 ‘10년 주기설’은 1987년 당시 인사담당 부서의 강화를 시작점으로 삼는다. ‘노동자 대투쟁’의 여파를 잠재운 삼성그룹은 1987년 11월 이병철 창업회장의 사망 직후 이건희 현 회장을 새로운 총수로 옹립해 새 시대를 맞이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삼성은 또다시 변혁을 맞이한다. 1997년 외환위기와 맞물려 삼성자동차 사태가 찾아오자 당시까지 비서실 조직을 장악해온 기획팀 인사들이 자동차사업 진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재무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약진한다. 비서실 조직이 확장개편 돼 탄생한 구조본을 거쳐 현재 전략기획실에 이르기까지 이건희 체제의 핵심을 이뤄온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모두 재무팀 출신이다.
최근 검찰청사 주변에 퍼져있는 삼성 총수일가 소환 가능성과 복수노조 허용 시대에 맞춘 삼성그룹 내 대규모 조직 개편 가능성이 ‘10년 주기설’과 맞물려 재계인사들 사이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삼성의 매년 초 정기인사를 겨냥해 1987년-1997년-2007년 식의 10년을 주기로 한 대대적인 변화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재계 인사들의 관심은 삼성 내 세력분포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쏠린다. 복수노조 시대가 개막함에 따라 인사지원팀 출신 인사들이 재무팀 인맥 대신 주도권을 쥐게 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몇몇 재계 인사들은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정몽구-정의선 부자 승계의 장애물 제거 차원에서 MK 1세대에 대한 수시인사를 단행했던 것과 같은 변화가 삼성에서도 일어날 수도 있다”고 관측한다. 간간이 건강 이상설이 나돌고 있는 이건희 회장이 지난 1987년 회장직에 취임한 지 20년 만에 아들인 이재용 상무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을 진행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 시대의 가신들의 거취 문제는 단연 관심사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