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를 바라보고 있는 리영호 총참모장, 최룡해 총정치국장,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왼쪽부터). AP/연합뉴스 |
그런데 최근 한 대북단체가 리 전 총참모장의 해임과 관련한 정보를 입수해 공개했다. 북에서 전해져 내려온 리 전 총참모장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난 7월 30일, 북한 내부와 접촉하고 있는 대북단체 NK지식인연대는 최근 해임된 군 실세 리영호 전 총참모장의 해임 사유와 그 과정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 외부에 공개했다.
이번에 단체에 의해 공개된 리 전 참모장의 해임소식과 관련한 전체적인 골자는 그가 김정은이 주관한 공식회의에서 경제개혁안을 반대하며 비토권을 행사하다 그 자리에서 해임됐다는 것이다.
기자와 통화한 NK지식인연대 최강혁 사무국장은 “북한 내부소식통에 의해 알려진 정보다. 아직까지는 확인된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북한 내부에서 감지되고 있는 분위기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권좌등극 이후 신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장성택, 김경희, 최룡해와 달리 선친 김정일의 남자인 군 실세 리영호 총참모장의 세력과 역할은 현저히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일이 벌어진 것은 지난 7월 1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상무위원회 자리였다. 당시는 김정은이 직접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으며 상무위원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최룡해 총정치국장, 리 전 총참모장과 정치국위원 자격으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장 부위원장이 주도로 기획한 신경제개건정책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서를 채택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신경제개건정책에 대해서 아직까지 정확한 내용이 외부에 공개된 적은 없지만 북한 내 각종 사업소의 개인투자허용과 같은 개혁적 경제조치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8월부터 시행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개혁개방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북한 당국의 가시적인 개혁안이라 볼 수 있다.
김정은의 주관 아래 당시 현장에서 회의를 주도적으로 이끈 것은 신경제개건정책 기획을 주도한 장 부위원장이었다. 그는 회의장에서 개혁안을 두고 김정은의 구상과 의도를 반영했다고 전제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보고하고 토론을 이끌었다고 한다.
김영남 위원장과 최영림 총리는 각기 개혁안에 대해 “신경제개건정책은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마지막 돌파구”라고 치켜세우며 적극 지지했으며 최룡해 총정치국장 역시 “김정일의 선군정치노선을 경제적 성과로 더 받들고 군대의 물질적 보장을 더 잘할 수 있는 정책”으로 평가하며 찬양했다고 한다.
하지만 발언권이 리 전 총참모장에게 넘어가자 훈훈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회의장은 그야말로 사단이 나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남자로서 폐쇄적인 선군정치를 구축해온 군내 보수 세력가 리 전 총참모장에게는 이러한 개혁안이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발언권을 건네받은 리 전 총참모장은 오랫동안 작심한 듯 “신경제개건정책은 선대 수령들이 평생을 다해 지킨 사회주의 원칙을 버리고 자본주의를 끌어들이려는 잘못된 생각이며 특히 제국주의자들의 개혁개방에 굴복해 당과 군대를 팔아먹는 행위”라고 쏘아붙였다. 김정은을 면전에 두고 감히 비토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때부터 리 전 총참모장과 장 부위원장의 정면 충돌이 시작됐다. 리 전 총참모장의 주장에 맞서 장 부위원장은 곧바로 “이번 정책은 조국보위에 더 많은 것을 돌리자는 취지다. 지난 과거 국가는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해 인민생활 향상에 이바지했지만 이제는 인민의 요구대로 자체로 살아나갈 수 있는 자립 환경을 꾸려주고 식량문제도 남의 손을 빌리지 말고 자립하자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국방 예산도 돌릴 수 있는데 왜 반대하나”라며 반격에 나섰다.
이에 대해 리 전 총참모장은 규정상 회의에서 발언권이 없는 장 부위원장의 위치를 들먹이며 김정은을 향해 “우리는 선대께서 개척하신 주체 혁명위업을 한 치도 어겨서는 안 된다”고 직접 항변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성택은 얼마 전에도 국가재정을 집중한다는 이유로 알짜배기 무역회사를 내각에 넘겨주는 문제를 검토했다. 이는 결국 장성택이 자기 손에 넣기 위한 것이다. 김정은 동지를 정직하게 받드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더 드라마틱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이를 지켜 본 김정은은 리 전 총참모장에게 “나의 영도에 따르지 않은 이와는 혁명할 수 없다. 방해만 될 뿐이다”라고 쏘아붙이며 그의 모든 공식적 직위와 직급을 그 자리에서 즉시 해임했다.
호위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장 부위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호위국 요원에게 리 전 총참모장의 체포를 명령했고 그는 현장에서 계급장과 휘장을 뜯기고 쓸쓸이 퇴장했다. 한때는 최고지도자의 오른팔로서 촉망받던 권력가가 맞이한 비참한 최후였다. 현재 그는 북한에서도 악명 높은 요덕수용소에 가족과 함께 수감된 것으로 전해진다.
리 전 총참모장의 숙청을 두고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사건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이미 권력 내 암투에서 그의 제거는 시간문제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정은을 필두로 한 장성택, 김경희, 최룡해 등 신세력에 있어서 구세력가인 리 전 총참모장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역시 리 전 총참모장 해임 직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리 전 총참모장의 숙청은 장성택, 김경희, 최룡해의 작품일 것이다. 북한 내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군부 내 거물 리 전 총참모장의 숙청으로 김정은이 더욱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일본 후지TV에 방영된 눈 덮인 요덕수용소의 모습. |
3만~5만명 생존투쟁 ‘조선의 아우슈비츠’
북한 요덕수용소는 ‘조선의 아우슈비츠’라는 별명답게 북한 내 다섯 곳(14호 개천, 15호 요덕, 16호 화성, 22호 회령, 25호 수성)의 정치범 수용소 중 가장 악명 높은 곳으로 꼽힌다. 함경북도 영흥군 일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수용소의 정식명칭은 ‘15호 수용소’. 수용소 내부는 평생 석방이 불가한 1급 정치범을 수용하는 ‘완전통제구역’과 그 밖의 정치범을 수용하는 ‘혁명화구역’으로 나뉜다. 정확한 수감인원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략 3만~5만 명 정도로 추측된다.
국가인원위원회의 2010년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감 사유 대부분은 체제에 반하는 정치적 발언, 탈북과 한국행, 반정부행위, 그리고 연좌제에 따른 것이었다. 현재 소문이 나돌고 있는 리 전 총참모장처럼 수뇌부에서 최고지도자나 체제에 반하는 행동을 빌미로 끌려 간 지도층 인사도 존재하지만 상당수는 최고지도자의 뒷말을 하거나 초상화 관리를 부실하게 한 자, 탈북시도자, 영화·음악 등 한국 콘텐츠를 향유한 자, 기독교도 등 일반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정확한 죄목도 모르고 집이나 직장에서 갑작스레 끌려간 것으로 전해진다.
요덕수용소를 직접 경험한 탈북자 중 가장 잘 알려진 이는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다. 요덕수용소 중에서도 ‘혁명화 구역’에 있었던 강 기자의 묘사에 따르면 수용소는 4m 남짓한 담장과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기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으며 24시간 철통 경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옥수수 몇 줌에 불과한 부실한 식량공급과 살인적인 중노동, 가혹행위 등으로 연간 수감자 중 4~10%가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포상개념으로 간혹 결혼이 허가되는 것 외에 원칙적으로 결혼과 성관계가 금지되어 있으며 임신할 경우 강제 낙태 처리된다.
수용소 수감 경험이 있는 한 탈북자는 “수용소 안에 노인들, 특히 사회 밖에서 윤택한 생활을 했던 이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어린 아이들은 체면 같은 거 생각하지 않고 땅에 떨어진 곡식 몇 톨이라도 주워먹지만 이러한 약자들은 생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수용소 안의 삶은 말 그대로 살기 위한 투쟁이다”라고 묘사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