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지사로 나섰던 진대제 후보(왼쪽)와 제주도지사에 도전했던 현명관 후보. | ||
일단 삼성 출신 인사들의 저조한 성적표가 눈에 띈다.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은 한나라당에서 제주도지사직에 출마했지만 현 전 회장 영입에 반발해 탈당한 무소속 김태환 현 지사에 석패했다.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은 여당 지도부의 삼고초려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지만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 대패했다. 삼성전자 CEO 시절에 이룬 ‘반도체 신화’와 최장수 정통부 장관 등으로 꾸며진 화려한 이력서에 오점을 남긴 셈이다. 그밖에 28년간 삼성맨으로 잔뼈가 굵은 신주식 전 CJ그룹 부사장(현 대구가톨릭대 교수)은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경쟁에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들 삼성 출신 인사들은 하나같이 ‘지역경제 혁신을 위한 출마’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상당수 지자체들이 재정악화에 놓이자 행정가 출신보다 CEO 출신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할 수 있고 새 시대에 합당하다는 논리였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반 삼성 정서’로 인한 피해는 없었지만 결국 이들은 전문 정치인들의 선거 노하우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 전 회장은 당초 김태환 현 지사와 큰 차이를 보이며 고전하다 선거 막판 대분전으로 초박빙 접전을 펼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 여권 정서’의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진 전 장관에 대해선 강금실 전 장관과 더불어 향후 열린우리당 내 세력 재편이나 정계 개편 과정에서 대선정국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삼성 출신들에 비해 역대 정치권 진출이 활발했던 ‘현대맨’들은 이번 선거전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는 부진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은 당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강금실 전 장관에게 패했다. 현대자동차 사장과 현대캐피탈 회장을 역임한 이 의원은 경선전에서 “오세훈을 이기려면 나를 전략적으로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가 패했지만 당내 위상은 올랐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밖에 김준영 전 현대시멘트 사장이 경북 영천 시장에 출마하려다 도중에 뜻을 접는 등 현대 계열사 CEO 출신 인사들은 지방선거 본선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중소기업 CEO들도 대거 이번 지방선거에 나섰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이상용 경인해운항공주식회사 대표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인천 중구청장 선거에 나섰다가 한나라당 박승숙 후보에 패했다. 조문관 현대기계공업주식회사 회장은 경남 양산시장직에 도전하려다 한 단계 낮춰 경남도의원직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한나라당의 강남구청장 후보로 나서려했던 이정기 필립정보통신 회장과 경남 창녕군수직 후보에 도전했던 하종근 한국타워크레인 회장은 당내 경쟁에서 밀려 본선에 출마도 하지 못했다. 경남 진해시장직에 당선한 이재복 금화개발 대표 정도가 눈에 띈다.
이렇듯 CEO 출신 인사들이 전문 정치인들에 밀려 대부분 죽을 쒔지만 (주)LG스포츠 사장을 지낸 어윤태 현 LG 고문은 부산 영도구청장 선거에 나서 승리했다. 부산 동래구청장직에 당선된 최찬기 후보는 중견 화장품업체인 아마란스화장품 대표이사다. 두 사람 다 한나라당 후보로 이번 선거에 나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