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주의 주가상황은 그야말로 참담하다. 가장 먼저 은행을 보자. 한화증권이 7월 말 기준으로 상장 금융지주사 및 은행의 주가 및 시장가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시장이 은행을 잠재적인 부실덩어리로 보고 있음이 확인된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란 당장 회사를 청산했을 때의 가치 대비 시장가치가 얼마나 되느냐를 구한 숫자로, 금융주의 가격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대표적인 잣대다. 1배 미만이면 청산가치보다 시장가치가 낮은 것이며, 1배 이상이면 청산가치보다 시장가치가 더 높다는 뜻이다.
국내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의 PBR은 0.5~0.7배 사이에 불과하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담보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이미 반영된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지주와 은행주들은 그래도 0.7 이상의 PBR은 인정받았는데 최근 이처럼 악화된 이유는 부동산 시장 침체 외에 7월 불거진 CD금리 담합 의혹과 감사원의 감사결과의 영향이 컸다. CD금리 담합 의혹은 은행들이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CD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담합했다는 게 핵심이다.
감사원도 2008년 말 이후 은행들이 CD 91일물 금리 대비 가산금리를 높여 부당이득을 취해 왔으나 이러한 가산금리 인상에 대한 명료하고 일관적인 설명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이러한 부당이득이 2008년 10월~2011년 12월 이자수익의 4~10% 수준이라는 추산까지 내놨다. 이 같은 정부의 압박은 결국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내려 서민들의 가계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게 정설이다. 이는 곧 은행들의 수익악화로 이어지고, 수익악화는 주가하락을 부채질한 셈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유독 금융주를 좋아하는 외국계 투자자조차도 이제는 은행을 외면하겠다며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가계들과 은행들이 처한 대조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은행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으며 은행권의 수익에 악영향을 주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요구가 정치권의 지지를 얻어 반복되는 이슈가 됨으로써 은행권의 점진적인 수익성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익명의 은행담당 애널리스트는 “대선을 앞두고 양극화 해소와 중산층 지원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진 마당에 정부로서는 어떻게 하든 금리를 낮게 유지, 금융권에 돌아갈 이익을 가계에 나눠주려 할 것”이라며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내 금융지주와 은행권 상황을 감안할 때 당분간 금융지주나 은행주에는 관심을 끄는 게 상책”이라고 귀띔했다.
비은행권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보험의 경우 금리하락에 따른 피해가 불어나고 있다. 보통 보험사들은 만기까지 채권을 보유하게 돼 채권금리가 높아질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사업구조를 갖는다. 그런데 금리가 낮아지면 운용수익률이 떨어져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증시에서 보험업종지수는 2010년 이후 횡보 추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완만하나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0~2011년보다 올해 금리가 더 낮은 수준이란 점에서 앞으로도 비관적이다. 삼성화재를 제외한 손해보험주 대부분 최근 1년 새 최고 주가 대비 20% 이상 급락한 것은 이를 반영한 결과다. 최근에는 정부가 자동차보험료 인하까지 유도하면서 수익성 악화는 하반기 더해질 전망이다.
또 삼성생명 등 일부 생명보험사들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 확정고금리를 지급하기로 한 상품이 적잖이 남아있는데, 금리가 떨어질수록 이들 상품과 관련된 역마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3대 상장 생명보험사 가운데 삼성생명과 동양생명의 PBR이 겨우 1배를 넘고, 대한생명의 경우 0.9배에도 못 미치는 현상에도 이 같은 우려가 작용했다. 생보사는 특히 최근 감사원 감사의 타격도 적지 않았는데, 각종 비용을 빼돌리거나 고객에 전가시키는 보험료 부풀리기가 적발됐다.
증권사들도 사면초가다. 2011년 초 대비 증권주 지수는 반 토막이 났고, 금융위기 전 최고치 대비로는 3분의 1도 안 된다. 삼성증권과 키움증권을 제외하면 증권주 대부분이 PBR 1배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현 주가는 지난해 8월 미국 신용등급 하락 당시 충격 때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유럽발 악재로 시장 분위기가 어수선한 마당에 내수위축과 각종 금융 관련 수수료 인하 압박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벌써부터 올해 적자를 걱정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가 돈을 벌려면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하든지,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늘어야 하는데 지금은 거래는 줄어들고 자금조달은 되레 뜸해지고 있다”면서 “올해에는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정치권에서 주식매매차익과 파생상품 거래에 세금을 붙이는 방안이 거의 확정되면서 증시 어려움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70여 증권사와 60여 자산운용사 가운데 문을 닫는 곳이 나올 것이란 소문마저 돌고 있다. 실제 일부 중소형사들 가운데 자본잠식에 들어간 곳도 있다. 자기자본 요건을 반드시 지켜야 할 금융회사에서 자본잠식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퇴출’을 뜻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로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주식이나 펀드를 거래할 증시의 대상고객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면서 “지금의 어려움은 시장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문을 닫는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모 증권사 최고경영자는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 양극화일 때는 물가라도 잡겠다고 내수기업을 압박하더니, 이제는 재벌이 대부분인 수출기업은 그대로 놔두고 관치(官治)가 용이한 금융기관만 잡고 있다”며 “대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지 못하면 결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