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2년 한화에 매각된 대한생명. | ||
한화의 대생 인수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한화의 대생 인수 문제가 거론됐으며 한화가 대생 인수를 위해 맥쿼리생명과 맺은 이면계약은 법정공방으로까지 비화된 바 있다. 사법부가 이면계약 사실에 대해 형사책임이 없다는 1·2심 판결을 내려 일단락되는 듯했던 한화의 대생 인수 논란은 이제 예보에 의해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될 전망이다.
예보는 지난 6월 1일 한화의 대생 인수 무효를 요구하는 중재를 국제상사중재위원회에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화가 대생 인수를 위해 호주계 맥쿼리생명과 이면계약을 맺은 점이 부당하는 것이 예보가 국제중재를 주장하는 주된 이유다. 한화가 맥쿼리의 컨소시엄 참여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모두 부담해주는 대신 대생 인수 이후 맥쿼리의 대생 지분을 모두 한화건설에 매도하기로 약정을 맺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보는 한화의 이면계약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화는 즉각 ‘발끈’하고 나섰다. 당시 계약체결자였던 한화 측 임원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이면계약 부분에 대해 1·2심 법원으로부터 형사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화 측은 ‘예보가 공적자금 회수율이 떨어지는 점에 대한 책임 회피를 위해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는 한화의 이면계약을 국제분쟁으로 비화시켰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예보 측 인사는 “형사 판결이 무죄라고 해서 반드시 민사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한다. 당시 매각 주체였던 예보 입장에선 한화의 이면계약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중재 신청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왜 3년 6개월 만에 중재신청을 했는가’에 대해 예보 측은 1·2심 결과를 보고 대법원 판결 결과도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판단돼 국제상사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힌다.
한화 측은 현재 예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예보의 국제중재 신청 선언 이후 (주)한화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5월 31일 (주)한화 주가는 2만 5500원이었는데 예보의 발표가 있던 6월 1일 2만 1700원으로 떨어졌고 6월 8일 현재 2만 650원까지 추락했다. (주)한화 주주들이 예보 측의 국제중재 신청에 따른 손해를 봤기 때문에 주주들을 대표해 민사소송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화는 예보에 대해 “국제중재 신청에 대한 사전 상의도 없었다”며 ‘다른 의도’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예보 측은 “대생 매각 당시 한화는 예보에 이면계약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피장파장이라 주장한다.
한화는 대생 지분에 대한 계약상 권리인 콜옵션을 행사할 계획이다. 한화는 계약에 따라 예보가 보유하고 있는 대생 지분 16%를 주당 2275원에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내년 12월까지 행사할 수 있다. 대생에 대한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함이다. 예보 측은 한화의 콜옵션 행사를 저지할 계획이며 이에 대해 한화는 민사소송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일이 커질 경우 한화가 예보를 상대로 두 건의 소송을 동시에 진행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올 초부터 금융당국 주도 하에 생보사 상장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대생이 상장될 경우 대생 주가는 지난 2002년 12월 예보가 한화에 넘긴 주식 가치(2275원)보다 훨씬 더 높게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예보가 주장하고 나선 ‘한화의 대생 인수 무효’ 선언의 진짜 목적은 ‘인수 무효’가 아닌 ‘더 많은 공적자금 회수’일 것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는 지난 1999년 10월과 11월, 2001년 9월 등 세 번에 걸쳐 국공채를 발행해 모두 3조 5500억 원의 공적자금을 대생에 투입했다. 반면 한화가 대생 인수를 위해 투자한 금액은 8236억 원이다. 그동안 헐값 매각 논란의 한축으로 지목돼 온 예보 입장에선 상장 이후 대생 주가가 매각 시점보다 몇 배 이상 오를 경우를 상정할 때 한화로부터 ‘좀 더 받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보 관계자는 “최종 결과는 중재단에서 판단할 몫”이라며 “우리 패를 처음부터 다 보여줄 필요는 없을 것”이라 밝힌다. 중재 과정에서 한화가 콜옵션 행사 가격을 높여준다거나 혹은 다른 형식으로의 금전적 보상을 할 경우 예보-한화 갈등이 쉽게 봉합될 가능성도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화 측은 ‘보상을 통해 예보와 화해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다.
오는 가을에 열릴 정기 국정감사에서도 한화의 대생 인수 문제가 거론될 전망이다. 지난 2003년 국감 때부터 한나라당은 이종구 의원을 중심으로 한화의 대생 인수가 헐값으로 이뤄진 점 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왔다. 한나라당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 실적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될 것이며 그 중심엔 한화의 대생 인수 문제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비판론에 대한 ‘명분 쌓기’용으로 예보가 이번에 국제중재 신청에 나섰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설사 중재결과가 신통치 않더라도 예보 입장에선 ‘할 만큼 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예보 관계자는 펄쩍 뛴다. 예보 관계자는 “예보 같은 공공기관이 큰 결정을 내리려면 정부나 관련 부처와의 오랜 협의가 필요하다. 지난 2월부터 이 국제중재 문제를 공자위와 논의해왔다”고 밝힌다. 이 관계자는 “정치역학 때문에 졸속행정을 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오히려 한화가 정치문제와 엮어 ‘물타기’를 시도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한화는 예보에 대한 소송 불사 방침을 밝히면서도 정부기대한항공 승무원 새 유니폼관인 예보에 대해 공격 수위 조절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예보와 같은 정부기관과 오랜 기간 동안 분쟁을 겪어야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