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김 아무개 씨(여)는 지난해 8월 1억 2000만 원 상당의 사망보험에 가입하면서 직업을 ‘주부’라고 기재했다. 겸업으로 하는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답했다. 가입 3개월 후 김 씨는 노래방에서 만난 손님과 속칭 ‘2차’를 나가 성매매를 하던 중 살해당했다. 김 씨의 부모는 H 화재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으나, H 사는 “직업을 속여 적었으므로 ‘고지의무’ 위반으로 계약을 해지시키고,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자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에 재판부는 “김 씨는 보험계약 체결 시 중요한 사항인 직업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보험계약자가 이행해야 하는 고지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보험금 청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노래방도우미라는 직업 자체가 생명을 담보로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김 씨가 노래방도우미로 근무하며 손님과 성매매를 하기도 했던 사실 등을 종합하면 직업을 알리지 않은 것과 이 사건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다른 대법원 판례도 있다. 유흥업소 ‘접대부’란 직업을 속이고 보험에 가입한 후 일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하다 유흥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건에 대해 직업이 사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보험금 부지급을 인정한 바 있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이 약간씩 다르지만 직업이나 직종에 따라 위험등급을 나눈다. 한 생명보험사의 예를 들면, 비위험 A등급에서 위험직 E등급까지 5등급으로 나눈다. 가령 A등급은 일반사망보험금을 20억 원까지 가입할 수 있지만, B등급은 15억, C등급 8억, D등급 2억, E등급 1억 원까지만 가입할 수 있다. 가정주부인 경우 A등급으로 20억 원까지 가입 가능하지만, 노래방도우미는 유흥업 종사자로 C등급에 해당되어 8억 원까지만 가능하다.
이번 판례에서 중요한 것은 사망과 직업과의 인과관계다. 만일 직업과 사망사고의 인과관계가 없다면 노래방도우미가 가입할 수 있었던 8억 원까지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즉, 쇼핑 후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생명보험사에 가입했다면 해당 직업이 가입할 수 있는 한도까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손해보험인 경우는 가입금액 전액을 받을 수 있다.
법원에서는 ‘노래방도우미’와 ‘성매매 중 타살’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논란의 소지는 충분하다. 노래방도우미라는 직업은 당연히 성매매를 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래방 마이크에 감전돼서 사망했다고 하면 당연히 직업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는 사안이 좀 달라 보인다.
또한 가정주부가 노래방도우미 일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보느냐 부업으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직업으로 보면 청약 시 ‘중요한 사항’으로 청약거절, 가입금액제한, 보장제외, 보험금삭감, 보험료 할증 등의 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부업으로 보면 단지 가입을 거절할 수만 있다. 만일 가입 후 2년이 경과했다면 약관상 고지의무 위반이 적용되지 않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가입 후 직업이 바뀌면 보험사에 통지한 후 보험료를 정산해 납입해야 제대로 보장받는다. 생명보험의 경우는 실손보험을 제외하고는 직업변경 고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사건에서 보험사가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러한 빌미를 제공한 것 역시 소비자다. 보험가입 시 고지의무의 이행의 중요성은 보험사고가 발생해야만 절실히 실감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고지의무의 이행은 철저히 해야 분쟁의 소지가 없다. 보험은 보험금 수령이 목적이다. 사소한 불찰로 낭패 보기가 쉬운 것이 고지의무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 www.kfc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