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모임’ 멤버들. 대표 격인 남경필 의원과 김세연 의원, 구상찬 전 의원(왼쪽부터). |
경제민주화모임은 박근혜 후보의 경제공약을 뒷받침하는 성격의 새누리당 내 모임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들어 박 후보와는 ‘엇박자’를 내는 의원들도 있어 모임의 실체와 성격에 대한 당내 평가도 엇갈리는 양상이다. 정·재계 핫 이슈로 떠오른 경제민주화모임의 정체를 파헤쳤다.
#민주당보다 더 왼쪽?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모임의 출발은 지난 4·11 총선 직후 즈음이었다. 당내에서 쇄신파로 분류되던 남경필 의원과 김세연 의원, 친박근혜(친박)계 이혜훈·구상찬 전 의원을 필두로 경제 관련 정책을 논의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임은 이후 친박 의원들의 가세로 애초의 예상보다 규모가 커졌다. 남경필 의원실 관계자는 “애초 15명 내외의 연구 모임 성격으로 하자는 취지였다”면서 “아무래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다 보니 의원들의 참여가 늘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의원 수는 현직 40명과 전직 8명으로 총 48명. 이 중 35명 가까운 의원들이 친박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다. 모임의 대표 격인 남경필 의원 외에 구상찬 전 의원과 김세연 의원이 공동간사를 맡고 있으며 김성태 박민식 강석훈 김기현 진영 안종범 이종훈 의원 등이 소속되어 있다. 공식 발족은 6월 초였으나 7월과 8월 들어 의원들이 대거 동참한 상태.
경제민주화모임이 시쳇말로 ‘뜨게’ 된 것은 박근혜 후보와 무관치 않다. 박 후보가 대선 제1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와 모임의 명칭이 흡사한 것만 봐도 그렇다. 정식 명칭인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줄여 ‘경제민주화’ 모임으로 부르기 때문에 언뜻 박근혜 대선 캠프 내 조직 이름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임은 당내 공식 조직도, 박근혜 캠프의 조직도 아닌 의원들의 비공식적 연구모임에 불과하다.
그런데 연구와 토론을 목표로 시작된 모임에서 내놓는 법안을 살펴보면 대선 공약에 버금갈 정도여서, 모임이 대선정국에서 세력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부 내용의 경우 “민주당 정책보다 더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을 정도.
가장 최근 내놓은 ‘경제민주화 3호 법안’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의 경우가 대표적.
이 개정안은 대기업의 신규 상호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로 인해 생기는 가공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기존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하도록 하는 민주통합당 안에 비해서는 약해 보이지만, 유예기간 없이 즉시 기존 출자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도록 해 재벌들에게 가해지는 타격이 더 클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박근혜 후보의 입장보다도 더 나아가 있다. 박 후보는 신규 순환 출자만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분의 의결권 제한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지난 7월 24일 대선 경선 토론에서도 박 후보는 “과거 것(순환출자분)까지 바로잡으려고 하면 기업에 따라서 고리를 끊기 위해 10조 원 이상 들어가는 곳이 있다. 차라리 일자리 창출이나 미래 성장 동력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앞서 발의한 1호(횡령·배임죄의 재벌총수는 반드시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와 2호 법안(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막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역시 재벌개혁을 기본 취지로 하는 민감한 법안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제민주화모임이 대선정국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적 법안 발의라는 비판을 듣고 있기도 하다.
민주통합당의 한 재선의원은 “새누리당이 언제부터 재벌개혁에 그리 적극적이었나. 민주통합당 법안보다 더 튀어 보이려고 급진적인 법안을 만드는 것 같다”며 “모임에 소속돼 있지 않은 새누리당 의원들 중 유보적 의견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법안 통과나 될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재계 반발 “야당보다 더하다”
이 모임은 3호에 이어 앞으로 7호 법안까지 발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공식 모임은 매주 화요일 아침에 정기적으로 열고 있지만, 수시로 모임 소속 의원들끼리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모임에 소속된 이종훈 의원실 보좌관은 “단지 논의만이 아닌 ‘실천’을 하기 위해 모인 것인 만큼 법안을 내놓고 추진하는 데에도 노력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종훈 의원 역시 “반드시 대선 전까지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이 의원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2호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앞으로 내놓을 법안들은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집단소송제, 금산분리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재계는 더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3호 법안이 발의된 바로 다음날인 지난 6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순환출자규제에 대한 전경련 입장’이라는 공식 논평을 내고 강하게 항의한 바 있다.
전경련 측은 “최근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정치권에서 대기업의 출자구조에 대해 규제하게 되면 해당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경제계는 이를 우려하고 있다”며 관련법 도입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배상근 전경련 상무는 이 보도자료를 들고 남경필 김세연 의원 및 이혜훈 최고위원 등 경제민주화모임 소속 의원실을 직접 찾아가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모임 소속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재벌개혁 법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보니 대기업 측 인사들의 만남 요청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법안의 수위가 다르고 새누리당 내에서도 박근혜 후보 측과 경제민주화모임에서 발의한 법안의 온도차가 있다 보니, 재계에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민주화모임에서 발의한 법안들 모두 기업 입장에선 예민한 사안들이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 측은 ‘당론과 다르다’고 밝히고 있어 당내 모임과 박 후보 캠프 공약에 대해 동시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가의 재벌개혁 분위기에 반발하는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보수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정치권에서 잇달아 쏟아지고 있는 재벌 규제 법안에 대해 항의하며 지난 9일과 10일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단체 김영훈 경제사회실장은 “법안을 살펴보면 대기업과 재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기본 전제하에 징벌적 수단으로 입법권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대선정국에서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포퓰리즘적 법안들이라는 점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름만 올려둔 의원도…
경제민주화모임이 대선정국에서 가장 주목받은 ‘세력’으로 급부상했으나, 일각에서는 부정적 견해도 나오고 있다. 대선정국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급진적 법안을 남발한다는 지적과 함께 친박계 내에선 “박근혜 후보 측과 조율되지 않은 의견으로 오히려 박 후보에게 해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
또한 취재 결과 일부 의원들은 이름만 걸어둔 채 실제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임 소속의 한 친박계 의원은 “경제민주화가 박근혜 후보의 제1공약인 데다 경제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의원들이 많아 공부를 같이 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모임이라고 해 참여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한두 번 회의에 참석한 이후로는 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친박계로, 7월 들어 모임에 합류한 안종범 의원 역시 “이름이 걸려있긴 하지만 박근혜 후보의 경선 일정 등 캠프 일정이 바빠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임 차원에서 발의한 법안 내용 중 일부의 경우 박근혜 후보의 공약과 다소 ‘엇박자’가 생기는 등 생각보다 영향력이 커지자 일부 친박 의원들은 다소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한 친박계 의원은 “토론회를 열고 세미나를 하는 정도로 알았는데 모임 차원에서 법안 발의까지 하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말을 아끼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친박 의원들 중 일부는 법안 발의에 적극 동참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친박계로 박근혜 후보 캠프의 핵심멤버인 강석훈 안종범 이상일 의원의 경우 그동안 내놓은 1~3호 법안 발의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 ‘남경필 사조직’ 논란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 남 의원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차기 대권 등 당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뒷말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남경필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근혜 후보를 중심으로만 당내 분위기가 흘러가는 것과 별개로 모임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법안을 계속 발의해 갈 것”이라며 이와 같은 지적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모임에 동참한 친박계 의원들 내에선 우려감도 커지고 있어 경제민주화모임이 계속 강력한 동력을 이어갈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
“스포트라이트? 욕 먹고 있어요”
경제민주화모임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친박계 핵심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 그는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며 3선 도전에 실패했지만,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에 공을 세웠고 지난 5월 15일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며 여전한 친박 실세로 활동하고 있다. 남경필 의원 등과 함께 경제민주화모임에서 법안 발의와 논의를 이끌며 새누리당 내에서 가장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이혜훈 최고위원과 지난 9일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제민주화가 대선정국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되면서 경제민주화모임 또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것 같다(웃음).
▲ 모임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오른쪽)은 친박계 실세로 알려져 있지만 법안 발의 때 박 캠프를 의식하지 않았다고 한다. |
▲매주 화요일 기본회의가 있지만 실무회의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이상 수시로 가지고 있다. 순환출자논의는 내일(10일) 시작하게 될 것 같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확대하는 부분과 집단소송제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지금 준비하고 있다. 금산분리 부분 역시 논의 예정인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모임에서 내놓는 법안들이 매우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순환출자분의 의결권 제한 문제의 경우에도 새누리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예비후보의 정책보다 더 나아간 것인데.
▲(박 후보의 것보다) 한 발 더 나갔다고 봐야 한다. 신규순환출자 금지는 박 후보께서도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은 3호 법안 안에 담기고,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으로 기존 순환출자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것이 추가된 것이니까 분명히 더 급진적인 것은 맞다고 본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 총선 때부터 고민과 관심이 많았던 것이기 때문에 박 후보의 공약보다 더 급진적으로 해야겠다는 목적을 두고 만든 것은 아니다.
―박근혜 후보 캠프와 법안 발의와 내용에 대해 의견 교류를 나누고 있나.
▲전혀 그런 것은 없다. 캠프는 캠프대로 하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하는 것이다. 하다 보면 의견이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그것이 더 자연스런 일 아닌가 싶다.
―박근혜 후보와 사전 논의는 전혀 없었나.
▲모임은 캠프와는 별개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없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차단하는 2호 법안을 두고 심재철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필요한 (대기업) 규제는 하겠지만 잘못하면 경제를 다시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비판해 설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심 최고위원께서 오해가 있었던 것이고 현장에서 다 풀렸다. 아마 법안을 안 보시고 재벌 측 얘기를 담은 언론보도만 보고 이야기하신 것 같다. 2호 법안은 재벌이 일감 몰아주기를 불법으로 했을 경우 공정거래위가 재발방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일 뿐, (심 최고위원이 언급한) 기업을 분할하는 제재조치 사항은 담겨있지 않다.
―전경련에서도 입장 발표를 하는 등 재계에서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예상했던 바이고, 어떻게 보면 그런 반응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벌 자신들에게 그런 항의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법대로 하고 원칙대로 한다면 재벌들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