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신 조인성 ‘연기인생 끝나는 거 아냐’ 걱정…후속작 찍는다면? 나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할리우드에서 ‘초능력자’ 소재의 작품은 대중들에게 익숙하지만, 한국에서 직접 만든 작품은 흥행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무빙’의 연출에 욕심이 났던 이유는.
“‘무빙’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가 제 늦둥이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렇게 가족이 생기고 난 뒤에 시나리오를 읽어 보니 이게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거다. 사실 저도 제 영화 인생에서 사람이 하늘을 나는, 그런 꿈을 보여주는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웃음). 그런 작품이면서도 아이와 부모 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대한민국 배우 올스타전’이란 말이 붙을 정도로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했다. ‘여기서 이 배우가 나온다고?’라며 깜짝 놀랄 만한 출연진도 있었는데 캐스팅에 강풀 작가의 도움이 컸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저야 (강풀 작가가 도와줘서) ‘땡큐’였다(웃음). 너무 대단하신 배우들이 모이지 않았나. 사실 프랭크(류승범 분)란 캐릭터는 원래 외국인이 맡아야 했다. 그런데 프랭크가 암살자니까 숙련된 액션도 해야 하고, 어설픈 한국말이란 복잡한 연기를 해야 하다 보니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너무 어려웠던 거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가 제가 강풀 작가에게 넌지시 털어놨더니 류승완 감독님을 통해서 캐스팅 해주더라(웃음).”
—캐스팅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역시 원작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인가.
“최대한 캐릭터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배우들을 찾으려고 했다. 오디션에선 연기로 판단하는 것보단 항상 제가 배우들에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거다. 작품 관련한 것도 물어보고 ‘요즘 좋아하는 건 뭐니?’, ‘앞으론 뭐 할 거니?’ 하고 사적인 질문을 하면서 나의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했다(웃음). 사실 저는 ‘무빙’이란 시나리오로 강풀 작가님과 체화돼 있으니까 캐릭터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한 상태에서 판단하게 되지 않나. 머릿속으로 캐스팅을 생각한 뒤 디테일한 요구를 나중에 하는 식이었다. 봉석이(이정하 분) 같은 경우는 촬영 전까지 30kg를 찌워야 하는데 처음부터 ‘너 30kg 찌울 수 있어?’ 해놓고 배우가 진짜 찌워서 왔는데 ‘넌 아닌 것 같다, 집으로 가’ 할 순 없지 않나(웃음). 그래서 먼저 이야기를 통해 파악하고 괜찮겠다 싶으면 ‘시작해 보자’, 해서 진행하게 된 거다.”
—장주원(류승룡 분)의 에피소드에서는 아무리 그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라지만 다소 잔인한 장면이 많았던 것 같다.
“다분히 제 연출 취향이라 생각한다(웃음). 주원은 상처를 입어도 재생하는 캐릭터다 보니 상처를 입고 찢어져야 재생을 보여줄 수 있지 않나. 날것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고, 그걸 어느 정도 표현하느냐는 수위의 문제지만 그건 아마 제 연출 취향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사실 처음부터 10부에선 액션을 너무 보여주지 말자, 시청자들이 다 상상할 수 있게 만들자고 생각했다. 주원이 싸움판에 들어가면서 타이틀이 나오고, 다시 화면이 전환되면 사람들이 다 쓰러져 있을 뿐 싸우는 장면은 직접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직접적인 액션을 배제한 이유는 11부 엔딩에 이십 몇 분 동안 액션이 쭉 가기 때문이었다. 뒷부분에 액션이 몰려있는데 그 전까지의 이야기가 길다 보니 대중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걱정이 사실 있긴 했다. 다행히 재미있게 보신 것 같더라(웃음).”
—앞선 ‘무빙’ 대담에서 초능력 액션 동작을 연출할 때 영화적으로 허용되는 드라마틱한 액션과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동작 가운데서 균형을 맞추려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저희에게 있어 많이 어려웠던 지점이기도 했다. 대중들이 다들 ‘마블’ ‘엑스맨’ 등에 익숙해져 있는데 그걸 따라할 만한 자본력이나 능력이 저희에겐 없으니까. 그래서 반대로 저희만이 영리하게 할 수 있는 방법,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려 했다. 그게 어떤 건지를 찾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던 것 같다. 저도 아직 많이 미숙한 감독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저 역시 ‘무빙’을 준비하면서 마블 스튜디오의 작품처럼 초능력자가 나오는 작품들을 봤는데 액션 동작을 보며 ‘왜 저렇게 하지? 왜 착지할 땐 저렇게 하지?’하고 궁금해 했다. 제가 해보니 다 이유가 있더라(웃음).”
—‘무빙’의 초능력 장면을 찍을 때 촬영 현장 에피소드도 궁금한데.
“비행 능력자인 김두식 역을 맡은 조인성 씨는 진짜 멋있다. 처음 김두식이 하늘을 나는 시퀀스를 찍은 게, 김두식 부부가 국정원을 피해 도망쳐 가난하게 살고 있는 과수원에서였다. 초라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조인성이 너무 멋있는 거다. 문제가 있지 않나. 감독 입장에선 너무 곤란했다. 시골에 조인성처럼 생긴 사람이 살았다면 여기서 열 정거장 넘게 떨어져 사는 할머니도 ‘과수원에 잘생긴 사람 산다’고 알아볼 게 아닌가. 그래서 첫 컷을 찍을 때 너무 잘생긴 걸 좀 망가뜨려 보려고 했는데 한계가 있더라. 그런데 하늘을 날고 착지하는 동작을 찍을 땐 사실 현장에서 촬영 중인 저희도 너무 웃겨서 서로 막 웃었다. 조인성 씨가 ‘내 연기 인생 끝나는 거 아니냐’고 그러더라. 현장에선 CG가 안 돼 있어 착지 장면만 보게 되는데 그게 정말 웃겼었다(웃음).”
—앞으로 등장할 북한 초능력자들의 면면을 보면 남한 초능력자들과 능력이 겹치면서도 미묘한 차이점을 보인다. 그런 세심한 부분은 어떻게 연출했는지.
“예를 들어 두 비행 능력자, 조인성 배우와 양동근 배우를 보면 조인성 씨는 사실 코를 파도 멋있으니까 그냥 날아도 멋있다. 반면 양동근 배우는 그가 가진 힙합적인 이미지가 또 있지 않나(웃음). 배우가 가진 아우라에 따라 그 능력의 연출이 달라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저희가 일부러 와이어 당길 때 조인성 씨는 세 명 쓰고 양동근 씨는 10명 쓰고 그러지 않았다(웃음). 그리고 또 다른 비행 능력자 봉석이는 앞으로 성장해야 하는 캐릭터다. 항상 성장 드라마엔 각성이 있고, 그를 위해선 초반엔 엉망진창이어야 한다. 그래서 봉석이는 처음엔 나는 것이 서툴지만 나중엔 정말 잘하게 된다. 그런 차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공개까지 정말 긴 시간이 걸린 작품이었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또 그 작품에 쏟아지는 환호와 호응을 보며 많은 감정이 들 것 같은데, ‘무빙’은 박인제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지.
“저는 ‘아직 한국에 없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 사실 ‘무빙’에서도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이 할리우드엔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지 않나. 그런 걸 해보고 싶었다.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들이 아직 우리나라엔 굉장히 많다. 이번에 ‘무빙’을 찍으며 새롭게 느낀 것이 또 그 지점이었다. 이 작품을 제작하며 그 안에 다양한 장르도 접해보고, 다양한 신을 연출해 보며 너무 많은 것을 해봤다. 그런 면에서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여기서 이걸 해 봤으니 저기선 저것도 되겠구나’하는 것들도 많아진 셈이다. 미숙한 제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준 정말 고마운 작품이었던 것 같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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