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한화 회장이 배임 등의 혐의에 대해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죄질이 가볍지 않은데도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다. 사진공동취재단 |
이번 사건이 재판으로 오게 된 계기는 2010년 8월 한화증권 퇴직자의 김승연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제보와 장남(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에 대한 편법승계 의혹에 기반해 경제개혁연대가 김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 소송 등이다. 검찰은 이 같은 사실과 국세청 세무조사 자료 등을 단서로 수사를 시작했다.
2010년 9월 16일 검찰이 서울 장교동에 있는 한화그룹 본사 빌딩과 여의도 한화증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는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이 과정에서 한화빌딩 경비업체와 검찰 수사팀 간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승연 회장을 비롯해 한화그룹 임원들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모두 기각했다. 이에 오기가 발동한 검찰이 곧바로 개별 범죄 사실 30개를 포함해 공소사실만 100쪽이 넘는 공소장을 다시 기재했고,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교체되는 등 1심 선고공판이 연기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수사 개시 후 무려 2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1심 판결이 이뤄진 것이다.
김승연 회장을 비롯해 16명의 피고인에 대해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은 크게 ▲차명계좌·차명소유회사 등 관련 범행 ▲한화그룹 계열사를 동원한 위장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 등 부당지원 ▲차명소유회사 부평판지, 동일석유 관련 업무상배임 ▲위장계열사 한유통, 웰롭 관련 업무상배임 ▲(주)한화S&C 주식의 저가매각으로 인한 업무상배임 ▲대한생명 콜옵션 관련 범행 ▲기타 범행 ▲공무집행방해 및 증거인멸 등 범행, 이상 8가지다.
▲ 지난해 1월 김승연 회장을 수사하던 남기춘 서부지검장은 “살아있는 권력보다 살아있는 재벌이 더 무섭다”는 말을 남겼다. |
첫 번째 차명계좌·차명소유회사 등과 관련된 범행에 대해 재판부는 김 회장을 비롯한 주요 피고인들에게 대부분 유죄를 판결했다.
먼저, 차명계좌를 이용해 김승연 회장의 주식을 관리하면서 양도차익이 발생했음에도 이를 신고하기는커녕 이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당시 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장이던 홍동옥 현 여천NCC 대표는 회계2파트 소속이던 이 아무개 씨와 함께 여러 명의 한화 임직원 명의를 차용해 김승연 회장의 주식을 관리하면서 2004년 1월 1일부터 그해 말까지 (주)한화, 한화증권, 한익스프레스, 한화석화 등의 주식을 매도해 29억 원가량의 양도차익이 발생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이런 방법으로 김승연 회장은 69억 원가량의 양도차익을 챙겼다.
양도차익이 발생했으면 양도소득세를 납부하는 것이 의무다. 그러나 홍 대표 등은 이 씨 등과 공모해 차명계좌를 여러 개 사용하면서 자금 추적이 어려운 현금입출금 방법으로 차명재산이 김 회장의 소유인 것을 알기 어렵게 했고 양도소득 역시 신고하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2004~2007년 4년간 26억 원가량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했다는 것이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양도소득세 산정에 관한 대법원 판례에 따라 포탈세액 15억 상당 부분만 유죄로 인정하는 ‘일부유죄’를 판결했다.
차명소유회사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신고하지 않은 점도 유죄로 인정됐다. 김 회장과 홍 대표는 2007년과 2008년께 김 회장의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던 4개 회사 즉 태경화성, 에스앤에스에이스, 씨스페이시스, 한익스프레스가 공정거래법상 한화그룹 계열사임에도 공정위에 자료 제출을 누락시켰다는 것.
4개 회사에 대해 법원은 주주 및 임원 현황, 임직원 인사교류, 김승연 회장의 지배력 등으로 볼 때 사실상 한화그룹 계열사로 봐야 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2008년 2월 공정위의 ‘2008년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 지정을 위한 자료제출 요구’에 이들 회사를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이듬해인 2009년에도 김 회장과 홍 대표는 이들 회사를 누락한 채 자료를 제출했다. 지난 4월 공정위 자료에는 태경화성, 에스앤에스에이스, 씨스페이시스는 한화그룹 계열사로 명시돼 있지만 한익스프레스만은 여전히 빠져 있다.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 중 세 번째 항목인 ‘차명소유회사 부평판지, 동일석유 관련 업무상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법원은 대부분 유죄를 판결했다.
‘부평판지’와 ‘동일석유’는 둘 다 김승연 회장의 어머니인 강태영 여사 소유 회사로 밝혀졌다. 골판지 생산·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부평판지는 강 여사가 본인과 차명 명의로 100% 지분을 소유한 ‘강태영 회사’다. 빙그레의 박스포장 사업을 도맡아 하던 부평판지는 그러나 2003년 말 기준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계속기업’으로서 존속능력마저 의문이 드는 회사로 전락해버렸다. 당시 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장이던 홍 대표는 망하기 직전에 놓여 있는 부평판지를 살릴 방안을 마련해 김 회장에게 보고했고 김 회장은 이를 승인했다.
홍 팀장의 방안은 한화그룹 계열사를 이용해 부평판지를 노골적으로 지원해주자는 것이었다. 즉 한화기계로 하여금 부평판지를 인수토록 한 후 유상증자 등을 통해 부평판지의 부실을 단숨에 해소하자는 것. 결국 김 회장의 승인 아래 홍 팀장의 방안대로 일이 추진됐다. 그러나 부평판지의 부실을 부당하게 해소해주는 만큼 한화기계에 손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명백히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행위에 해당돼 ‘일부유죄’ 판결을 받았다.
‘강태영 회사’는 또 있었다. 동일석유라는 회사로서 200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장부가만 600억 원가량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고 순자산이 511억 원에 달하는 알짜 회사였다. 2005년 초 강 여사는 장남 김승연 회장에게 동일석유를 김 회장의 누나인 김영혜 전 제일화재 이사장에게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이 작업을 진행한 사람도 역시 홍 대표였다. 한화기계, 한화국토개발, 한양상사, 북일학원 등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동일석유 지분을 한익스프레스의 자회사 경일중공업으로 하여금 저가로 매입하게 한 후, 경일중공업을 김 전 이사장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동일석유를 김 전 이사장에게 넘겨줬다.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일이었다. 이 같은 방법으로 김 회장과 홍 팀장은 게열사들에 모두 142억 원의 손해를 끼쳤고 법원은 업무상배임으로 유죄를 판결했다.
김 회장 외에 이날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재판부는 사안에 따라 부분적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가령 2008년 2월 국세청이 한화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던 대한생명 주식 콜옵션을 양도한 것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이자 당시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 유 아무개 상무는 대한생명 주식 인수에 참여한 컨소시엄 회사들 사이에 작성된 계약서 상의 콜옵션 가액 계산식을 삭제, 국세청에 변조한 컨소시엄 계약서를 제출했다. 유 상무는 ‘사문서 변조 및 행사’로 유죄를 받았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던 2010년 9월 검찰 수사를 방해하고 증거를 인멸한 한화그룹 직원들은 하나같이 모두 유죄를 받았다.
한화그룹의 보안을 담당하고 있던 경영기획실 김 아무개 운영팀 부장과 경비업체 에스앤에스에이스 금 아무개 부장은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한 탓에 징역형을 받았다. 김 부장은 2010년 9월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한화그룹 본사 빌딩 압수수색이 예상되자 CCTV를 녹화하지 말 것을 지시했으며 이미 녹화된 CCTV 하드디스크는 직접 버려 증거를 인멸했다. 뿐만 아니다. 김 부장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대비해 금 부장에게 ‘검찰에서 압수수색이 나올 경우 대상과 장소를 확인할 때까지 들여보내지 말라’고 공무집행 방해를 교사했다. 이에 금 부장은 경비업체 직원들을 동원, 검찰의 압수수색을 방해했다.
또 검찰 수사에 대비해 관련 서류를 파기한 김 아무개 한화S&C 재경팀장, 최 아무개 재경팀 과장도 유죄를 받았으며 불리한 진술을 우려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범인을 자금까지 제공하면서 도피시킨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김 아무개 전략팀 상무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사안도 꽤 있었다. 김 회장이 차명소유회사인 태경화성을 통해 한익스프레스의 주식을 가장매매(매매를 가장하는 행위)했으며 이를 통해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검찰 공소사실에 대해 법원은 가장매매와 시세차익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판결했다. 위장계열사인 한유통(편의점사업 영위)과 웰롭(물류사업 영위)에 부당지원해 계열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업무상배임 혐의로 검찰이 공소한 것에 대해서도 법원은 ‘실질적 손해가 없고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도 없다’며 무죄를 내렸다.
한화그룹내 IT회사인 한화S&C 주식을 김 회장이 후계승계를 위해 장남 김동관 실장에게 저가로 매각, 업무상배임 혐의가 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김 실장에게 매각할 당시 주가가 쌌다는 점, 한화S&C가 성장한 것은 이후 유상증자와 ‘일감 몰아주기’ 덕분이었다는 점을 들어 관련없다고 판결했다.
1심에서 사안별로 유죄와 무죄가 가려지긴 했지만 어쨌든 김승연 회장을 비롯해 주요 피고인들은 실형은 물론 법정구속까지 되는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김승연 회장 측은 혐의를 모두 부인한 채 홍동옥 대표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상명하복 질서가 잡혀 있는 한화그룹 내에서 김승연 회장의 위치와 존재감을 따져 김 회장 측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김승연 회장의 2007년 폭력 사건 등 피고인들의 ‘전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 2010년 8월 : 한화증권 퇴직자, 김승연 회장 차명계좌 제보. 경제개혁연대, 장남 김동관 실장에 대한 편법승계와 관련해 김승연 회장 상대로 주주대표소송 제기. 검찰, 국세청 세무조사 자료 등을 단서로 수사 개시.
- 2010년 9월 16일 : 검찰(서울서부지검),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빌딩과 여의도 한화증권 사무실 압수수색. 당일 검찰 수사팀과 한화 본사 빌딩 경비업체 직원 간 충돌.
- 2010년 12월 1일~30일 : 검찰, 김승연 회장 3차례 소환 조 사. 김 회장 1차 소환 때 “제가 팔자가 세서 그런 것 아니냐”고 말함. 2차 소환 때 “이건 (검찰이) 좀 심한 것 아닌가요?”라고 말함.
- 2010년 10월 1일~2011년 1월 20일 : 검찰, 주요 가담 임원 8명에 대해 구속영장청구. 서울서부지법 영장 모두 기각. 당시 홍동옥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장에 대한 재청구도 기각.
- 2011년 1월 28일 :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 “살아 있는 권력보다 살아 있는 재벌이 더 무섭다”는 글 남기고 사표 제출.
- 2011년 1월 29일 : 검찰, 김승연 회장과 그룹 임원 배임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 개별 범죄사실 30개를 포함해 공소장 기재 공소사실만 100쪽이 넘음.
- 2012년 2월 2일 : 검찰, 김승연 회장에 징역 9년, 벌금 1500억 원 구형.
- 2012년 2월 23일 : 서울서부지법, 1심 선고 연기.
- 2012년 3월 22일 : 인사이동으로 재판부 교체.
- 2012년 8월 16일 : 서울서부지법, 김승연 회장에 징역 4년 벌금 51억 원 선고. 법정구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