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결지로 유명한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지난 7월경, 경기도 광주시 직동에서는 방글라데시 출신 불법체류자인 러만 씨(가명)가 한 일당에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만 씨를 납치한 일당은 다름 아닌 같은 방글라데시 출신의 폭력조직이었다. 러만 씨는 4일간 이들에게 감금당하면서 폭행과 협박 속에 500만원 상당의 채권 포기는 물론 현금 50만원을 그 자리서 갈취당했다. 이들 폭력조직은 러만 씨 외에도 또 다른 불법체류자들을 수회에 걸쳐 폭행·협박해 77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갈취했다.
이들 일당이 이렇게 수차례에 걸쳐 조직적인 폭력과 협박을 일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러만 씨 를 비롯한 피해자들 신분이 모두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이었다. 러만 씨는 결국 피해 사실과 상관없이 불법체류 혐의를 적용받아 귀국길에 올랐다.
▲ 외국인 노동자를 소재로 한 영화 <방가방가>의 한 장면. |
불법체류자들 중에서 상대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여성들의 경우 이러한 강력범죄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경북 구미시 인위동에서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사건 당시 중국 출신 불법체류 남성 3명은 같은 중국 출신 불법체류 여성 자취방에 침입했다. 이들 일당은 여성의 손발을 테이프로 결박하고 준비한 식칼을 들이댔다. 그들이 노린 것은 여성이 소지하고 있던 1500만 원 상당의 통장이었다. 그들은 여성의 금쪽같은 ‘통장’을 갈취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남성 3명은 이 여성을 끔찍하게 성폭행하기도 했다. 불법체류자였던 피해 여성은 말 그대로 항거불능상태였다.
경찰관계자는 “불법체류 여성들은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막말로 성폭행을 당해도 신고하게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특히 유흥업소에 발을 들인 외국인 여성들의 경우, 체류기간이 만료돼 불법체류신분이 되면 제대로 돈도 못 받고 성착취를 당할 수밖에 없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기자는 국내 외국인노동자들의 집결지로 유명한 안산 원곡동 현장을 찾아가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은 17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곳 안산에 거주하는 6만여 명의 외국인들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1만 5000명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라고 한다.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단호하게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현행제도에서 어떤 이유에서든지 경찰이 불법체류자를 인지하면 그 사람이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이유 불문하고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 추방한다. 불법체류자들은 현행법상 활동의 폭도 좁고 범죄 피해에 대한 권리행사도 할 수 없다. 당연히 피해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심지어 불법체류자가 가해자가 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안산 공단에서 한 몽골인 노동자가 한국인 동료와 시비가 붙어 폭력을 행사한 일이 있었다. 피해자였던 한국인은 가해자였던 몽골인 노동자의 불법체류자 신분을 약점 삼아 터무니없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그 몽골인은 차라리 자진 신고하고 싶다고 내게 토로했지만 본인 신분상 불가능했다. 2차 피해까지 양산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과 현장 일선 경찰들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은 불법체류자들의 양산 자체를 줄이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올해와 내년사이, 이러한 불법체류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올해로 외국인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8년째다. 초창기 3년+3년(최장 고용계약 3년에 추가로 3년 계약을 할 수 있는 과거 제도. 올해 7월부터는 4년 10개월 최초 계약에 성실근로자에 한 해 추가로 4년 10개월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계약을 맺어 올해와 내년에 계약이 만료되는 외국인들이 최소 6만 명 이상이다. 이들 상당수는 한국 잔류를 희망하기 때문에 내년 불법체류자의 증가가 불가피하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내년에는 특별한 개선점이 없다면 음지에서 강력범죄를 당하고도 말 못하는 불법체류 피해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얘기가 된다. 김 국장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외국인고용허가제는 절대적으로 고용주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외국인들에게는 사업장을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폭이 무척 좁았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계속 불법체류자들이 양산됐던 것이다. 현행법 개선과 함께 이들의 기본권에 대한 자구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