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광 이호진 회장(왼쪽), 경방 김각중 회장 | ||
태광이 포문을 열자 경방도 즉각 대응에 들어가 이달 3일 추가로 주식을 매입했다. 전방으로부터 8만 주(88억 원), 동원산업으로부터 10만 주(110억 원)를 사들인 것. 지분은 각각 1%, 1.25%였다. 두 회사가 보유하던 주식은 우호지분으로 여겨지던 것임에도 태광이 공격적으로 주식을 사들이자 안심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태광의 매입가격은 주당 9만 3400원 꼴이지만 경방은 주당 11만 원이다. 태광의 주식 매입으로 긴장한 경방이 얼마나 급히 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4년 12월 시작된 태광과 경방의 지분 경쟁은 올해 1월 경방이 우리홈쇼핑 지분 2.45%를 가진 (주)시큐리티진돗개를 인수, 지분이 50%를 넘어서면서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태광이 포기하지 않고 장외에서 소액 주주들의 주식을 사 모으면서 우리홈쇼핑의 경영권에 대한 미련을 분명히 드러냈다.
현재 우리홈쇼핑은 경방 측 지분이 54%, 태광 측이 46%로 집계하고 있다. 우리홈쇼핑은 “8%의 확고한 차이가 나는 만큼 태광이 이제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경영권 장악보다는 태광의 SO와 우리홈쇼핑이 제휴해 시너지효과를 내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태광을 회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태광 측은 “지분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고 답변한다. 지난달 말 추가로 지분을 매입한 것은 우리홈쇼핑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음을 뜻한다는 얘기다.
태광은 전국 119개 케이블방송국 중 27개를 가진 국내 최대 케이블방송 사업자다. 케이블방송의 채널배분권을 갖고 있다 보니 홈쇼핑 사업과 궁합이 딱 맞는다. 공중파 방송이 있는 5∼11번 채널 사이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홈쇼핑 매출이 3분의 1에서 2분의 1까지 차이가 날 정도라 국내 최대 케이블방송망을 가진 태광으로서는 홈쇼핑 사업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경방도 우리홈쇼핑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양산업인 섬유업종 대신 신성장동력을 유통으로 가닥을 잡은 경방은 현재 영등포에 있는 경방필백화점과 우리홈쇼핑을 주력 업종으로 바꾸고 있다. 최근 영등포 사옥 부지에 대한 개발 허가가 나면서 이 일대에 대형 쇼핑타운 건설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섬유업종에서 신사업분야를 개척하지 못한 한일합섬과 코오롱이 망하거나 어려움을 겪은 반면 태광, 효성 등 일찍부터 새로운 사업을 개척한 업체는 생존하는 상황이라 경방도 신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현금동원력을 앞세운 태광의 공세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005년 말 기준으로 재계 45위인 태광그룹은 자산규모 3조 6000억 원, 경방은 5000억 원대로 차이가 크다. 태광이 언제 돈을 무기로 경방의 우호지분을 사들일지 모르는 상황이다.
올해 2월 주주총회에서 태광은 1, 2대 주주인 경방과 태광을 제외한 소액주주에게만 배당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한 경방이 표결에서 승리한 바 있다. 태광은 “SO들이 송출료를 2배 이상 올릴 경우 내부 유보금 없이 어떻게 대처하겠냐”라는 명목으로 배당을 반대했었다.
두 주주의 지분이 비슷해 배당금에 큰 차이는 없었지만 태광은 자금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배당을 같이 받지 않는 편이 경방과의 경쟁에서 유리할 수 있다. 지난해 우리홈쇼핑은 2463억 원의 매출에 481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고, 순이익 대부분인 400억 원을 배당금으로 책정했다.
한편 올해 초 쌍용화재를 인수하는 등 왕성한 인수합병 행보를 보이고 있는 태광은 올 10월 금융계열사의 이름을 통일하고 새로운 CI(로고)를 발표하는 등 이호진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주도했던 금융-미디어 그룹으로의 변신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때 진로소주 인수에 나섰다 실패한 태광그룹은 금융쪽 사업을 더욱 강화해 기존의 흥국생명, 태광투자신탁운용, 부산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 외에 피데스증권, 쌍용화재를 잇달아 계열사로 인수했다.
그 결과 태광은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 생명보험, 손해보험을 가진 종합금융사업군과 티브로드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사업군, 기존의 화섬분야 등을 갖춘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우리홈쇼핑 인수는 티브로드로 대표되는 태광의 방송유통망에 날개를 다는 작업이다.
태광의 공격과 경방의 수성 중 어느쪽이 이길지 주목된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