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디스는 8개 비금융 공기업에 대해 정부의 손실 보전 의무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신용등급 상향 대상서 제외시켰다. |
공기업의 신용등급은 보통 국가 신용등급과 같이 조정된다. 공기업은 국가가 보증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신용등급이 올라간 우리나라와 반대로 떨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의 국가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됐을 당시 이들 국가의 공기업 신용등급도 함께 떨어졌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이 올랐지만 일부 공기업들의 경우 신용등급이 제자리걸음을 했다.
무디스는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한 당일 한국수출입은행과 중소기업은행, 한국정책금융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산업은행, 한국장학재단, 정부 관련 6개 금융공기업의 신용등급을 국가 신용등급과 같이 A1에서 Aa3로 한 단계씩 높였다. 향후 신용등급에 대한 전망도 국가 신용등급 전망과 같은 ‘안정적’으로 조정했다. 이들 금융회사가 정부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공기업인 만큼 정부와 같은 수준으로 신용등급을 조정한 것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도 ‘정부의 업무대행을 하는 공기업’이라며 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올렸다.
그런데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제외한 8개 비금융 공기업에 대해서는 신용등급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한국철도공사와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가 이전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수준인 A1에 그대로 묶인 것이다.
국가 신용등급 상향조정에도 공기업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제자리에 머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무디스는 신용등급 조정 하루 뒤 ‘한국 공기업-자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제목의 특별 보고서를 통해서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조정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의 신용등급이 올라가지 않은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국가 신용등급이 ‘Aa’ 수준일 때 공기업이 국가 신용등급과 동일한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 가능성이 매우 확실하거나 △독자적인 신용도가 우수해야 하는데 제자리걸음을 한 공기업들은 대부분 이 두 가지 요건 중 한 가지도 충족을 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무디스도 이들 공기업에 대해 정부가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다만 암묵적인 지원 가능성과 명시적 지급보증과 같은 확실한 지원 가능성은 다르다고 못 박았다. 이에 반해 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된 금융공기업들은 손실 준비금이 모자랄 경우 정부가 이를 보전하도록 하는 의무 규정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무디스는 한국토지주택공사나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도로공사 등이 정치적 요인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거나 요금을 충분히 인상하기 어려워 현재 취약한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될 우려가 크다는 점도 신용등급을 그대로 둔 이유로 들었다. 실제 이들 8개 공기업 중 7개가 공기업 부채규모 순위 10위안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지난해 총 부채가 130조 5712억 원으로 전체 공기업 중 부채액수가 가장 많았다. 이어 한국전력공사(82조 6639억 원), 한국가스공사(27조 9666억 원), 한국도로공사(24조 5910억 원), 한국석유공사(20조 8000억 원), 한국철도공사(13조 4562억 원), 한국수자원공사(12조 5809억 원) 순이었다.
이들 공사들은 그동안 부채를 줄이기 위해 투자 규모를 축소하거나 요금을 인상하려했지만 정부에 의해 가로막혀왔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과 보금자리 주택정책, 물가안정책 때문에 해당 공기업의 부채가 크게 불어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이들 공기업 입장에서는 국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 소식이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
“이젠 칭찬받고 싶어요”
30여 명의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이는 회의에는 발언순서 등 암묵적인 룰이 있다. 항상 1번 발언권을 갖는 사람은 미국 중앙은행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벤 버냉키 의장이다. 두 번째 발언은 ECB(유럽중앙은행) 총재가 한다. 그 다음은 일본이나 중국 중앙은행 총재가 발언권을 갖고, 이후로 브라질과 인도 중앙은행 총재가 이야기를 한다. 해당 국가의 경제력 순인 셈이다. 30명 중 발언자는 10명 안팎에 불과하고 그간 한국은 대부분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중수 총재가 처음으로 발언했을 때 분위기가 어색했었지만 지금은 다른 국가 중앙은행 총재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소통을 잘하는 김중수 총재지만 국내에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12개월이나 동결하면서 김중수 총재가 시장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동결 중수’라는 별명이 이를 웅변한다. 이런 김중수 총재가 최근 시장과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변화를 준 것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 공개시기를 ‘회의 6주 후’에서 ‘회의 2주 후’로 바꾼 것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금통위원들이 현재 경제상황에 대해 주고받은 이야기를 회의 6주 후에 공개하다보니 시장에서 한은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셈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한은이 발표하는 경제전망의 횟수를 3번에서 4번으로 늘린 것이다. 그동안 한은은 경제전망을 4월과 7월 12월, 1년에 3차례 해왔다. 이 때문에 그동안 세계 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을 한은의 경제전망이 반영하지 못해 현실감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정책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한은의 경제전망이 정책의지를 나타내는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전망과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해 올 10월에 ‘하반기 경제전망 수정’을 최초로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김중수 총재의 움직임에 대해 시장은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김중수 총재는 지난 8월 24일 투자은행 전문가 간담회에서 “지난 금통위 끝나고 의사록 공개를 2주 후로 앞당겨 좋게 평가할 줄 알았는데 대개 좋은 것에 대해서는 가만히 계시는 것 같다”며 약간의 서운함을 내비쳤다.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