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회장 | ||
지난 14일 한화증권은 보유하고 있던 (주)한화 주식 370만 주 중 200만 주를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에게 매각했다. 장남인 동관 씨(22)에게 100만 주, 차남 동원 씨(20)와 막내 동선 씨(17)에게 각각 50만 주씩을 넘긴 것. 주당 가격은 2만 3700원으로 매각대금은 모두 합쳐 476억 원에 이른다.
이로써 장남 동관 씨의 (주)한화 지분은 3.11%에서 4.41%로 늘어나 김 회장과 GMO펀드에 이은 3대 주주가 되었다. 동원, 동선 씨의 지분도 1%에서 1.65%로 늘어났다.
2003년 동관 씨가 김 회장으로부터 (주)한화 지분 2%를 인수한 데 이어 2004년에는 삼형제가 (주)한화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 승계가 한화그룹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해 주었다. 그동안 3세로의 지분 매각은 김 회장-(주)한화 자사주-한화증권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수관계인 중 1%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주는 김 회장, (주)한화, 한화증권이다. 주식을 그룹 의도대로 매각할 수 있는 곳이 이 세 곳이다 보니 이번 한화증권의 지분 매각으로 승계 구도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지 않았냐고 보는 것이다.
한화의 3세 승계 과정은 다른 재벌가와는 달리 자금 여유가 있을 때 증여세 등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조금씩 주식 보유량을 늘려나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 재벌의 편법승계가 결국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보았을 때 한화는 3세 승계만큼은 논란 없이 떳떳이 헤쳐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공시 내용을 보면 이번 주식 매입 자금 476억 원은 주식 배당금 60억 원, 증여 110억 원, 주식담보 대출 306억 원으로 조달되었다. 증여의 비중이 크지 않고 기존 주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 재벌그룹 9위에 해당하는 한화그룹의 덩치 때문인지 아킬레스건을 하나 남겨두고 있다. 김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전산시스템 관리업체인 한화S&C가 바로 그것.
지난해 전체 매출 1222억 원 중 대한생명 140억 원을 비롯한 관계사 매출이 711억 원으로 매출의 58%를 차지하고 있다. 당기순이익은 39억 원이다. 오너 개인 회사를 그룹 계열사가 물량 몰아주기로 키워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글로비스, 이노션, SK그룹의 SKC&C, 신세계의 광주신세계 등과 비슷한 경우다.
한화 3세들이 한화S&C 지분을 소유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4월부터. 세 아들은 김승연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20만 주를 증여받았고, 5월 유상증자에 참여해 60만 주(30억 원)를 매입했으며, 이어 6월 (주)한화 소유 40만 주를 사들였다. 현재 장남 동관 씨가 80만 주, 동원 동선 씨가 각각 20만 주를 가지고 있어 세 형제 지분을 합치면 100%에 이른다.
한화S&C의 소유권 이전 작업이 마무리된 뒤 한화그룹의 광고대행사인 한컴의 지분이 속속 한화S&C로 옮겨가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지난해 8월 한화개발이 소유한 한컴 지분 8만 주를 한화S&C가 매입했고, 10월 한화국토개발 소유의 3만 6300주와 한화폴리드리머 소유분 2만 3700주에 대한 감자가 실시돼 한화S&C 지분이 100%가 되었다. 3세들이 모기업 한화S&C 지분 전체를 가지고 있으니 자회사인 한컴 또한 이들 소유의 기업이 되는 셈.
지난해 한화S&C와 한컴의 지분변동을 보면 계열사의 지원 역량에 따라 매출이 좌우되는 전산관리업체와 광고대행업체를 승계 과정에 이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한컴 매출액은 355억 원, 당기순이익은 11억 원이다. 관계사 매출은 한화건설 57억 원을 비롯, 215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60%다.
한화S&C와 한컴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을 합하면 50억 원이다. (주)한화 지분에 대한 배당금까지 합하면 한화그룹 3세들이 받을 수 있는 배당금은 수십억 원대다. 이번 (주)한화 지분 매입에 사용한 자금 중 60억 원이 배당금이다.
김 회장의 장남 동관 씨가 22세로 이들 삼형제가 입사를 하고 경영수업을 거치려면 앞으로 5∼10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주)한화의 삼형제 지분이 3년에 걸쳐 7.71% 늘어났으니 향후 김 회장의 지분 22.84%와 한화증권 2.25%, (주)한화 자사주 7.79%가 삼형제에게 이전될 시간적 여유는 충분한 셈이다.
한편 최근 한화그룹은 6년 전 없어진 경제연구소를 다시 만든다고 밝혔다. 거시경제와 경영환경 변화에 대처하고 연구를 통한 경영 방향과 정책 결정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부활시키는 이유를 밝혔다.
2000년까지는 한화증권 내에 경제연구소를 운영해 왔지만 IMF 위기로 폐지해 한화증권 내 연구인력 일부만이 남았다. 이후 2003년 대한생명경제연구소가 만들어져 금융 분야에 한해 연구를 계속해 왔는데 이번에 석·박사급 인원을 충원해 기업경영 전반에 걸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최근 활발한 지분변동 등 경영권 승계 작업과 맞물린 시기에 이루어지다 보니 아직 나이가 어린 3세들의 현업 진출시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