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준모와 승호를 두 캐릭터로 나눠 해석하지 않았어요. 그저 ‘박준모’란 경찰이 ‘권승호’의 상황에 놓여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죠. 그 상황 안에서 어떻게 하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더 효과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을지 그런 걸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준모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궁지에 몰려 있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그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웃음). 내가 어느 정도까지 감정을 숨기고, 긴장해야 할지 그 흐름과 템포를 감독님과 논의하면서 만들어나갔죠.”
지창욱이 연기한 준모는 강남연합의 보스 정기철(위하준 분)을 잡기 위해 그의 쿠데타에 휘말렸다가 목숨을 잃은 절친 권태호(정재광 분)의 가짜 사촌동생, 권승호를 가장한다. 태호의 죽음에 깊은 죄책감을 가진 기철은 준모의 정체를 의심하고 불신하면서도 그에게 이끌리고, 준모를 위시한 경찰들이 계획한 잇따른 위기 속에서 준모의 도움을 받으며 결국 그를 온전히 신뢰하게 된다. 악인이라면 악인이지만 가슴 아픈 과거로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샀던 기철을 이용하는 준모가 오히려 또 다른 악인이 아니냐는 지적에 지창욱은 “준모는 그저 주인공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온전한 정의로움이 없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두 남성 주연이 나오는 작품엔 감독의 안배든, 시청자들의 자의적인 해석이든 ‘브로맨스’의 기류가 느껴지곤 했다. ‘최악의 악’ 역시 기철이 준모를 대하는 태도나 감정의 변화에서 이런 해석을 할 수 있지 않겠냔 감상이 더러 있었다. 다만 준모의 눈으로 ‘최악의 악’ 세계를 살펴 본 지창욱의 입장에선 그런 감정은 당연히 없었고, 있어서도 안 됐다고.
“연출 의도는 정확히 모르지만 저 개인적으로 준모 입장에서 본다면 브로맨스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기철이의 마음을 얻게 돼도 준모가 기철이에게서 브로맨스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를 아예 처음부터 배제했죠. 이 둘 사이에 브로맨스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전 없다고 봐요. 개인적으론 준모가 기철이에게 가진 감정은 브로맨스보단 인간으로서의 약간의 연민이었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시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어느 정도 브로맨스를 기대하실 수도 있겠죠(웃음).”

“해련과 의정이 중 준모는 당연히 의정이를 좋아했을 거예요. 의정이를 지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의정이 때문에 더 틀어지게 됐고, 의정이에 대한 집착으로 모든 관계가 다 어긋나게 된 거죠. 반면 해련에 대한 감정은 선을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찰나의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고 생각해요. 일을 위해 그를 이용하려 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여자를 증오하고 싫어하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요. 그런 미묘한 선 안에 있는 관계성이었던 거죠. 아마 준모는 의정과 해련 둘이 물에 빠지면 무조건 의정이를 구할걸요(웃음)?”
의정이에 대한 준모의 마음이 진심이란 걸 알았기에 지창욱 역시 기철과 의정의 키스신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후일담도 들려줬다. “아마 그때 시청자들이 느끼는 감정과 제 감정이 똑같았을 것”이라는 그는 해련과 준모의 키스신과는 차원이 달랐다며 분노와 웃음을 동시에 터뜨렸다.

이런 4인 4색의 동상이몽 키스신부터 ‘원 테이크’로 이뤄낸 강렬한 액션신까지 지창욱은 첫 누아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했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뤘다. 특히 어리바리하고 순박해 보이는 시골 형사에서 야차로 보일 만큼 잔인한 조직원으로의 극명한 변화를 선보이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다듬지 않은 것에서 볼 수 있는 완벽함이 있다는 걸 ‘최악의 악’을 통해 알게 됐다는 지창욱이 앞으로 보여줄, 또 다른 날것 그대로의 새 얼굴엔 당연한 기대감이 모인다.
“처음부터 그렇게 콘셉트를 잡기도 했는데 작품 안에서 저를 잘 보시면 제가 최대한 이상하게 찍혀 나오는 걸 알 수 있으실 거예요(웃음). 최대한 날것처럼, 더 거칠어 보이게 얼굴 각도와 조명이 의도적으로 조절돼 있거든요. 저는 그런 장치들이 이 작품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생김새보다 연기력이 좀 더 도드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 아니라 많은 배우들의 목표이자 숙제니까요. 매체에서 만든 제 이미지나 제 선택으로 인해 대중들이 알게 된 이미지를 계속 깨 나가고 싶어요.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러려고 정말 부단히 노력 중이고요(웃음). 그런 면에서 ‘최악의 악’은 정말 제게 큰 도움이 된, 제가 앞으로 변해가는 과정들 중 하나가 된 작품인 거죠.”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