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꼽히는 ‘로마네콩티’는 병당 가격이 1300만~2000만 원이지만 해마다 29병만 수입돼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와인으로 유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와인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최근 경매에서 1300만 원에 낙찰돼 화제가 됐던 와인 로마네콩티(Romanee conti)를 두고 일각에서 농담 삼아 나온 말이다.
‘로마네콩티’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비싸고 희귀한 와인으로 국내에는 해마다 오직 29병만 소량 수입되기 때문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또한 이 와인을 구입할 수 있는 VVIP 명단이 이미 정해져 있어 수억 원을 갖다 준다고 해도 원칙상 구할 수도 없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그간 국내에서 벌어진 굵직한 ‘정재계 로비’ 현장에서 이 와인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마네콩티에 얽힌 정재계 인사들의 비 스토리를 알아본다.
▲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꼽히는 ‘로마네콩티’는 병당 가격이 1300만~2000만 원이지만 해마다 29병만 수입돼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와인으로 유명하다. |
쟁쟁한 정재계 수장들도 세무조사 등 면피를 위해서 김 원장에게 수억 원은 건넸지만 그보다 훨씬 가격이 덜 나가는 2000만 원 상당의 이 와인만큼은 공수해주지 못했다. 그만큼 구하기 어렵다는 소리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로마네콩티를 실제로 본 사람은 1000명도 안 될 것이다. 맛본 사람은 더 적다.” 국내 유명 소믈리에 서주완 씨의 증언이다. 국내외 유명 소믈리에들 중에서도 이 와인을 맛봤다는 이가 극히 드물다고 한다. 때문에 로마네콩티를 곁에 두고 아꼈던 거물급 인사들의 일화들은 소믈리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로마네콩티는 ‘이건희 와인’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와인 애호가로도 유명한 이건희 삼성 회장이 로마네콩티를 아낀다는 것은 이미 와인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얘기다. 현재 로마네콩티를 독점으로 수입하고 있는 신동와인 측에 확인한 결과 이 와인을 구입할 수 있는 VVIP 고객 명단에 이 회장의 이름이 올라가 있진 않지만 대신 삼성계열사인 신라호텔이 포함돼 있다. 이 회장이 원하면 언제든지 공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카지노의 대부(大父)’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 전낙원 전 파라다이스 회장은 ‘로마네콩티와 함께 살다 갔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라고 한다.
‘발렌타인 30년산에 밥 말아 먹는다’는 일화를 탄생시켰던 전 회장이 가장 아꼈던 와인 역시 ‘로마네콩티’였다. 일례로 전 회장이 별세한 2004년 11월, 그와 평소 절친했던 C 일보 ㅂ 회장과 S 그룹 ㅊ 회장이 전 회장의 관 안에 80년대 산 로마네콩티를 넣어준 일은 아직 세간엔 알려지지 않은 비화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도 대통령 당선 당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벌어진 축하연에서 들어 올린 술도 로마네콩티였다. 현장에 동석했던 소믈리에 이 아무개 씨는 “이 대통령이 로마네콩티를 선택했다는 건 극히 소수만 아는 얘기”라면서 “당시 이 대통령은 로마네콩티를 두 잔이나 마셨다. 아마도 ‘1등 와인’으로 알려진 로마네콩티의 의미를 마음에 들어 한 것 같다. 승리의 순간에 가장 어울리는 와인이 아니었던가 싶다”고 회상했다.
사정기관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와 전윤철 전 감사원장 등이 유명한 와인 전도사다. 김 위원장의 경우 기자들에게 유명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을 건넬 정도로 와인 사랑이 각별하다. 이 만화 책에서 예찬하는 주요 와인 중 하나가 바로 로마네콩티다.
이렇게 로마네콩티의 명성이 올라가면서 정재계에선 이 와인을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한때 정재계에 미국인 미술가 ‘앤디 워홀’ 바람이 불었던 것처럼 이제는 로마네콩티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열풍’과도 같은 추세에 의해 수요는 많고 돈이 있어도 구하기가 어려운 로마네콩티는 로비 물품 1순위로도 자주 지명 받고 있다.
‘100억 원을 줘도 기존 명단 내에 있는 VVIP고객만이 (로마네콩티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신동와인 측의 답변이다. 신동와인 측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이 와인을 정식으로 구입할 수 있는 인원은 30명 정도, 구체적인 명단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취재 결과 앞서 말한 신라호텔을 비롯해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같은 대형 호텔은 이 명단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명단 내에 거물급 인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와인 애호가로 오래전부터 신동와인 측과 인연을 맺어온 몇몇 중소기업 대표이사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마네콩티의 경우 원칙상 낱개 구입은 안 되고 억대의 컬렉션을 세트로 함께 구입해야 한다. 해마다 구입하지 않으면 리스트에서 바로 제외되기 때문에 명단 고객 중 재벌급이 아닌 중소기업 대표들의 경우 ‘콩티 계’를 만들어 시음회를 열기도 한다. 명단에서 제외되는 것보단 7~8명의 타사 대표들을 모아 1인당 1000만~1500만 원의 회비를 받고 로마네콩티 라인을 꾸준히 구입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H 중소기업 대표 이 아무개 씨(49)는 “최고경영자 모임에서 로마네콩티를 맛본 경험만 읊어도 주목을 받는데 고객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것은 재계에서는 굉장히 명예로운 일이다. 때문에 매년마다 ‘계’를 들어서라도 로마네콩티 시음회에 참석한다”고 말했다.
정치인들도 로마네콩티 사랑에 푹 빠졌다. 김 아무개 의원은 “로마네콩티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수도승들이 만든 와인이라도 한다. 존경받는 종교인들이 만든 것인 만큼 정치인들이 마실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와인으로 이 바닥에서 통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