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공동취재단 |
미국 법원이 코오롱에 아라미드를 20년간 전 세계에서 생산·판매를 금지시킨 것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판결 후 공장 가동이 중단됐으나 코오롱 측이 즉각 집행정지를 신청, 하루 만에 공장은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 법원이 코오롱 측이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심리하는 동안만이다. 만일 가처분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아라미드 생산 공장은 다시 멈춰야 한다. 코오롱 측은 배상금과 생산·판매금지에 대해 항소의 뜻을 밝혔지만 순탄치 않은 일정이다. ‘황금실’로 알려진 방탄용 특수섬유 아라미드의 현재 매출은 미미하지만 미래 먹을거리 중 하나로 여겨왔던 터라 이웅열 회장으로서는 다급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웅열 회장에게는 국내 사정도 좋지 않다. 지난 7월 2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상득 전 의원의 각종 비리와 불법행위에 코오롱 출신 관계자가 차명계좌를 이용해 돈세탁한 정황이 발견되고 있다”며 이웅열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업무상 배임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상진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위원장은 “수백 명의 직원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로 길거리로 쫓아낸 코오롱이 이 전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성토했다.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기소된 이명박 대통령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은 2007년 7월~2011년 12월 매달 250만~300만 원씩 1억 5750만 원가량을 코오롱에서 고문료 명목으로 받은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이상득 전 의원과 이웅열 회장 부친인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고향(경북 포항) 선후배 사이로 친밀한 데다 이 전 의원이 코오롱 사장 출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상황에 따라 이웅열 회장까지 사법처리될 수 있다.
여기에다 이 회장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친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친분설, 지난해 삼화저축은행 로비설이 불거질 당시 정치권에서 ‘신삼길 전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웅열 회장 커넥션’이 제기될 정도로 이 회장은 현 정권과 여권이 문제가 될 때마다 의혹의 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실제로 현 정권 들어 코오롱 출신 인사들이 정부 요직 곳곳에 배치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김주성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코오롱그룹 회장 비서실장, 구조조정본부 사장, 부회장 등을 역임한 김 실장은 지난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으로부터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발탁됐다. 김 실장은 2008년부터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8년에는 이웅열 회장이 직접 미래기획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수영 코오롱 상무는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상득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지난 8월 17일 각종 비리 혐의를 받아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은 박배수 씨도 코오롱 출신이다. 이처럼 코오롱 출신 인사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거나 현 정권 비리와 연루돼 있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에서도 정권 초부터 코오롱이 주목받은 것은 사실이나 사업적으로 혜택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며 “가깝다는 인식이 겉으로 너무 드러난 탓일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이웅열 회장이 더 비판받는 까닭은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했음에도 뒤쪽으로는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005년 그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구미공장 노동자 78명을 정리해고 한 것을 비롯해 희망퇴직 등의 형식으로 노동자들을 몰아냈다는 것이 민주노총과 코오롱정리해고투쟁위원회 등의 주장이다.
최일배 코오롱정리해고투쟁위원장은 “드러난 것만 고문료 형식의 1억 5700만 원일 뿐 그 이상 제공됐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며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들을 몰아낸 사람이 어떻게 불법 정치자금을 댈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지난해 초 이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매출 10조클럽 가입’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공기업을 제외한 재계순위 30위인 코오롱의 2011년 매출액은 8조 2000억 원에 그쳤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신성장동력과 관련해 물 사업과 태양광 사업에 주력할 뜻을 밝히며 필요하면 “M&A(인수·합병)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초기부터 녹색산업 지원을 외친 현 정권과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1979년부터 연구개발을 시작, 30년이 넘는 연구 끝에 독자기술을 확보했다던 아라미드 섬유는 미 법원의 철퇴를 맞았다. 물론 코오롱의 항소 등 최종 판결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코오롱의 영업비밀 침해가 끝내 인정될 경우 코오롱이 볼 피해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는 소송전에 쓰일 비용도 만만치 않아 ‘소송리스크’도 안고 가야 할 판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지난 2분기 매출은 1조 3522억 원, 영업이익 858억 원, 순이익 564억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2% 감소했다. 문제는 이익 감소다. 영업이익이 확 줄었고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줄었다. 소송비용 40억 원에 충당금 90억 원, 합계 130억 원이 빠져나간 것이 큰 이유다. 이미 ‘소송리스크’가 작용하고 있는 것.
현재 코오롱 구미공장에는 듀폰과 소송전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박동문 사장이 직접 구미공장으로 내려가 전 직원에게 그렇게 지시했다는 것. 공장 직원들 사이에서는 소송전 때문에 동요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 구미공장 주변 반응이다.
한 코오롱 퇴직 직원은 “이웅열 회장은 쇼맨십과 이벤트가 강하다”고 말했다. 밸런타인데이에 전 직원에게 초콜릿을 돌린 적도 있고, 물건을 실은 트럭을 직접 몰고 구미공장에 배달을 간 적도 있다고 한다. 경영능력보다 현 정권과 친밀감, 이벤트 등으로 주목받는 이웅열 회장의 국내외적 상황이 꽤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올해 28세인 장남 규호 씨가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회장이 지금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기자의 여러 문의에 대해 코오롱 홍보실은 “답변할 말 없다”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