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맹희 씨 | ||
부산지방법원 가사부(재판장 홍광식 부장판사)는 지난 7월 25일 이 아무개 씨(44)가 이맹희 씨를 상대로 낸 ‘친자인지’ 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고 승소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 때문에 조만간 이맹희 씨의 호적에 이 씨의 이름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의 어머니 박 씨의 증언과 유전자 감정 결과 등을 종합하면 이맹희 씨와 박 씨가 지난 63년 동거하면서 원고를 출산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과정을 통해 드러난 사실을 정리하면 이 씨의 모친인 박 씨는 24세 때인 지난 60년 이맹희 씨를 만나 함께 살게됐다. 맹희 씨는 박 씨에게 서울 필동에 집을 얻어줬고 그 집에서 이 씨를 63년에 출산했다. 이후 이 씨가 돌이 지날 무렵 맹희 씨가 혼외 자식을 얻었다는 사실이 부친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귀에 들어가면서 맹희 씨의 처지가 어려워지자 맹희 씨의 친구이자 매제인 구자학 씨(현 아워홈 회장)가 나서서 뒷수습을 하고 헤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후 맹희 씨와 박 씨, 이 씨의 관계는 잊혀지는 듯 했지만 이 씨가 고등학교 졸업반 무렵 박 씨가 아들의 앞날을 생각해 이민을 추진하면서 이민 전 ‘마지막’으로 부자간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때 이 씨도 생부인 맹희 씨를 처음 만났고 당시 맹희 씨는 이 씨에게 자신의 이름을 새긴 버클과 지갑을 주면서 “이제 어디가더라도 아버지가 이맹희라고 말하고 다녀라”, “호적에 올려주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84년 10월 이 씨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전화로 간간이 연락하던 부자는 86년 이후 연락이 끊겼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인테리어 전문가가 된 이 씨는 92년 귀국해 삼성이나 CJ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중견 인테리어 업체를 경영하는 사업가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04년 6월 자신의 호적을 바로잡겠다며 소송에 나선 것.
그리고 그의 주장은 2005년 9월 실시했던 유전자 감정에서 이씨와 이맹희 씨의 둘째 아들 재환 씨가 동일부계, 즉 아버지가 같을 확률이 99.91%로 나와 사실임이 입증됐다(<일요신문> 638호, 703호 보도).
당시 피고 측인 이맹희 씨 쪽(직계자손인 이재현 회장 형제들)에선 이맹희 씨의 행방을 모른다고 주장해 둘째 아들인 재환 씨가 유전자 감정에 응했다. 그 결과 이복형제일 가능성이 99.91%가 나온 것. 하지만 피고인 이재현 회장 형제 쪽에서 ‘이 씨와 이맹희 씨 간에 직접적인 유전자 감정이 이뤄지지 않아 친자임을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Y 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변하지 않고 유전되고 그 유전자 형이 같게 되는데 유전자 감정 결과 이 씨와 재환 씨는 이복 형제간으로 판단돼 이 씨가 이맹희 씨의 친아들임을 인정함에 아무런 모순도 발견되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2004년 6월 이씨가 서울가정지방법원에 접수한 친자확인 소송은 피고인 이맹희 씨의 ‘행방불명’으로 그해 12월 이맹희 씨의 활동 근거지였던 부산지방법원 가정지원으로 이송됐고 유전자 감정 등을 통해 2005년 11월 1심 선고가 내려졌다. 1심 결과도 이 씨가 이맹희 씨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 이맹희 씨 혼외 아들의 친자인지 소송을 최초 보도한 <일요신문> 638호(왼쪽)와 1심 결과를 보도한 703호 지면. | ||
아버지를 되찾은 이 씨가 향후 어떻게 움직일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이 씨가 친자인지 소송을 낸 이래로 일관되게 “아버지를 찾고 싶다”, “내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를 만나보게 하고 싶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 우선 이맹희 씨의 행방을 공개적으로 찾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친자로 확인되기 이전에는 그가 이맹희 씨를 찾고 싶어도 경찰 등 관련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친자로 확인된 이상 그가 부친의 실종 신고를 낼 경우 경찰 등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아 출입국 기록 확인 등 이맹희 씨의 행방을 쫓는 작업이 활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선 그간 이맹희의 근황에 대해 ‘와병설’이 나돌기는 했지만 CJ그룹 쪽에선 “우리도 행방을 모른다”는 게 공식적인 답변이었고 친자인지 소송에서도 법원에 “우리도 부친의 행방을 모른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그간 이 씨 쪽에선 부친의 행방을 찾기 위해 이 씨의 생모인 박 씨 등이 전국을 돌며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맹희 씨가 병치료를 위해 중국과 몽골을 오가며 신병 치료를 하고 있고 둘째 아들인 재환 씨가 중국을 오가며 부친을 돌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지만 CJ 측에선 이를 부인하고 있다.
또 한 가지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호적을 정정하는데 성공한 이 씨 쪽에서 이맹희 씨의 친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지 여부다.
이맹희 씨의 장남인 재현 씨는 부친이 60년대 중반 삼성그룹 경영에서 배제된 이후 부친의 몫을 대신 상속받아 현재 CJ그룹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인 맹희 씨 대신 삼남인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상속됐다. 이런 형제간 재산 분할은 지난 87년 이병철 회장 사망 뒤 2세들이 미국 LA에서 모인 가족회의를 통해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내막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족간 합의 형태는 이병철 회장이 말년에 머물던 승지원이 그의 사후에 ‘삼성가족모임’이라는 명의로 등기부에 오르는 바람에 일부 외부에 노출되기도 했다.
어쨌든 CJ그룹이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씨 몫으로 분할된 재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 씨가 이맹희 씨의 친아들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경우 다른 형제가 가져간 만큼의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그런 송사가 벌어질 경우 재판 과정에서 맹희 씨의 재산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와 이병철 회장 2세들 간의 재산 분할 내역 합의에 대한 내용 공개가 이뤄질 것으로 보여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병철 회장 2세들 간의 재산 분할 내역과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이 공개된 적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 이 씨는 “일단 아버지를 찾는 일에 집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재산 분할 얘기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을 뿐더러 그간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이재현가의 태도를 보건대 부친 면담을 요청해도 그냥 형식적으로 처리될 것 같기에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데 집중할 것이란 얘기다. ‘당장’은 말이다.
이맹희가의 친자 확인 소송이 불러올 후폭풍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