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형제의 상속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2월 고 이병철 회장의 맏아들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삼남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주식인도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소송전은 지난 8월 28일 4차 공판이 진행된 데 이어 오는 9월 26일 5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소송은 법정 밖 삼성과 CJ 간 ‘장외전’이 더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지난 2월에 있었던 삼성물산 직원의 이재현 CJ그룹 회장 미행사건은 양측의 팽팽한 신경전을 보여주는 단적인 일화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선 양 그룹에 불리한 일이 벌어지면 서로 대놓고 상대방을 의심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삼성가 상속분쟁의 치열한 장외전을 따라가 봤다.
지난 2월 시작된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 사이의 재산 소송이 오는 9월 26일 5차 공판을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4차 공판에서 공개되지 못했던 삼성특검 자료가 5차 공판에서 공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재판부와 양측 변호인단은 특검자료를 넘겨받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맹희 전 회장 측 법무법인 화우 정진수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양측 변호인들이 특검자료 공개목록에 합의했다. 하지만 검토 뒤 더 필요하고 포기할 수 없는 기록이라는 판단이 설 경우 다음 공판 과정에서 추가로 자료 요청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소송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법정 밖에서는 또 다른 기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그룹 회장이 피고인인 삼성과 이재현 회장의 부친이 원고인 CJ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 대표적인 사례는 삼성비자금 특검을 총괄했던 조준웅 변호사 아들의 삼성 특혜 입사 의혹이다.
조준웅 변호사의 아들 조 아무개 씨(38)가 중국 삼성전자에 들어간 시점은 2010년 1월 15일로 삼성 특검의 판결이 종료(2009년 5월)된 지 7개월 후, 이건희 회장이 비자금 사건에 대해 특별사면을 받은(2009년 12월 31일) 지 보름 만의 일이었다. 조 씨는 지난 4월부터 본사 인사팀으로 발령받아 일하고 있다. ‘보은성 특혜 입사’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조준웅 특검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 재산 4조 5000억 원을 찾아냈지만 비자금이 아니라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 물려받은 삼성생명 주식이 불어난 개인 재산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조 변호사 아들의 삼성전자 입사 사실이 이제 알려진 것을 두고 삼성 측에서는 ‘CJ에서 흘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삼성이 의심하는 까닭은 이렇다. 최근 CJ에 입사한 A 씨가 조준웅 변호사 아들의 대학 후배이며 중국 삼성전자에서 함께 일하기도 했는데, 그가 CJ에 들어온 이후 조 변호사 아들의 삼성전자 입사 사실이 퍼졌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미 2년도 더 된 일이 왜 이제 와서 알려지겠느냐”며 CJ에 대한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CJ그룹은 어이없다는 반응. CJ 관계자는 “A 씨는 계열사의 대리급 직원이다. 그룹 오너일가와 관련한 사안에 활용하기 위해 대리급으로부터 전해들은 정보를 외부에 흘릴 수 있느냐”며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그런 연관관계를 찾아내는 삼성이 놀라울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입사 당시에나 그 이후에나 2만 명이 넘는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친구나 선후배 중에 조 아무개 씨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이번에 뉴스를 통해 알게 되어 확인해보니 그렇더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지난해 삼성그룹 세무조사를 담당했던 국세청의 한 고위간부 아들이 삼성에 입사한 사실도 최근 들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이야기가 세간에서 오르내린 것에 대해서도 삼성에서는 ‘출처’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해당 직원이 입사한 시점은 국세청 세무조사 이전으로 문제 될 게 없다”며 “그 직원은 삼성에서 정상적으로 인턴 과정을 마쳤고 성적도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세무조사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밝혔다.
삼성을 배후로 의심할 만한 사건을 먼저 겪은 것은 CJ 쪽이다. 지난 2월 이재현 회장 미행사건은 검찰 수사에서 단순 미행으로 결론지어졌으나 양측의 법정 밖 신경전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일화였다.
또한 지난 7월 국회 내 괴문서 살포사건 역시 삼성의 견제작업으로 해석하고 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뿌려진 문건에 방송법 개정안이 CJ에 일방적인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요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고 CJ는 삼성의 소행으로 의심했다. CJ 측은 “이후 문광부 소속 의원실을 상대로 확인해보니 삼성 직원들이 다녀갔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엔 삼성전자가 CJ그룹 물류회사인 CJ GLS에 맡겨왔던 3000억 원 대의 물류 거래를 중단하기로 해 감정적 앙금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양 측은 “유산 소송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입장이지만, 이미 지난 4월 CJ가 보안업무를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에스원에서 외국업체로 바꾼 것에 이어 소송으로 인해 깊어지고 있는 양 그룹의 신경전 때문이라는 분석.
한편 삼성특검 자료 공개 등 소송 본격화를 앞두고 CJ 이재현 회장이 지난 11일 중국 출장길에 오르며, 이맹희 전 회장과 만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지난 5월 귀국을 고려했다가 9월께로 시기를 늦춘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당시 “4차 공판 뒤 귀국 일자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애초 삼성특검 자료 공개가 4차 공판으로 예정돼 있었다가 5차 공판으로 미뤄진 만큼, 이번 공판을 즈음해 이 전 회장이 직접 귀국하거나 이재현 회장을 통해 소송에 관한 긴밀한 상의를 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CJ 관계자는 “12~13일까지 베이징에서 개최하는 ‘글로벌 컨퍼런스’ 참석 차 방문했을 뿐 이맹희 전 회장과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