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성 교수는 ‘장하성펀드’ 등 최근의 ‘변신’에 대해 “시장의 기능을 통해서 경제민주화운동을 벌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으로 상징되는 경제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장하성 교수, 김상조 교수, 김선웅 변호사 등이 이달 초 참여연대에서 분리해 경제개혁연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기업지배구조펀드(장하성펀드)로 ‘분사’하자 향후 이들의 행동반경이 어떨 것인지, 어떤 결과물이 나올 것인지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는 것.
지난 10년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경제개혁센터 멤버로 활동해 온 이들의 ‘운동’이 사외이사 도입이나 주주 중시 경영, 공시 활성화 등으로 국내기업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해 동안 4대재벌급 기업에선 국회나 관가의 동향을 정기체크하는 것처럼 참여연대의 일거수 일투족을 체크하는 담당자나 부서를 두는 등 이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참여연대의 경제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가칭)경제개혁연대와 장하성펀드를 통해 새로운 전문가 운동의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장하성 교수(고려대 경영대 학장)를 만나봤다.
―24시간 경제전문 라디오 방송국을 만든다, 연구소 설립 등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7년 전에 장기적인 비전을 계획했었다. 시민운동에서 전문가 운동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인식했다. 그때 그린 그림이 연구소 설립, 경제민주화운동을 도울 법률회사 설립, 펀드 설립, 경제전문 뉴스매체 설립 등이다. 이게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설립, 법률사무소 설립 같은 게 현실화됐다.
―어떻게 바뀌는 것인가.
▲경제개혁연대는 더이상 시민운동이 아니다. 전문가 집단의 전문가 운동이다. 경제개혁연대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활동의 중심이 될 것이다. 장하성펀드는 라자드코리아가 운용주체가 될 것이다. 펀드 자문료는 사회운동 단체에 기부할 것이다.
라자드코리아와 장하성펀드에 관한 계약을 맺을 때 투자와 관련된 투자회사 선정이나 계약에 나의 자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일상적인 펀드의 운용에는 관여를 하지 않는다. 자금조달은 라자드자산운용에서 알아서 한다.
경제운동은 경제적 원리에 맞게 가야 한다. 전문가 운동은 공익적 성격에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사적 이익만 추구하지 않으면 된다.
―경제개혁연대의 운동방향은 과거 참여연대 시절과 달라지나.
▲펀드에 편입해 투자하며 문제제기를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경제개혁연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동일사안을 양쪽에서 다루면 띄워주기 논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장하성펀드가 투자한 기업이나 문제삼는 내용은 증시를 통해 공시될 것이고 소액주주 운동은 장하성펀드의 몫이 될 것이다. 이건 시민운동이 아니라 시장의 기능을 통해서 경제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지분을 갖고 주주총회 참석, 공개질의, 경영정보 공개, 장부 열람 등 시장이 허락한 모든 방법을 쓰겠다는 얘기이다. 때문에 경제개혁연대보다 장하성펀드의 활동이 더 적극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장하성펀드가 외국자본가의 이익에만 충실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일관성이 중요하다. ‘외국자본 앞잡이다’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나중에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해보면 진실이 밝혀진다. 나는 참여연대의 보직을 맡고 있을 때에도 시민단체 대표모임에 나간 적이 없다. 정부의 어떤 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기업의 사외이사 도입을 주도했지만 어떤 기업의 사외이사로도 가지 않았다.
장하성펀드 출범 전에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에게 참여해달라고 공문으로 요청했다. 국내 금융기관은 말로는 지배구조개선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서도 실제 참여하겠다는 의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장하성이 외국투자자들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고 비난하면서도 실상은 말로만 그럴 뿐 기회를 줘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국내 펀드는 두 곳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중 한 곳에선 확실히 투자의사를 밝혔다. 벌써 1300억 원 정도 모았다.
최근 삼성그룹 계열사에만 투자하는 펀드가 생기고 그쪽에서 사외이사 파견 등 기관투자가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기관투자가가 제역할을 한다면 한국시장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질 것이다.
장하성펀드의 애초 목표액은 2000억 원 정도다. 그 정도면 가치투자의 성공모델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동안 참여연대의 경제민주화운동 대상이 됐던 기업들은 모두 기업가치가 상승했다.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SK텔레콤 등 모두 주가가 올랐다. 애초 삼성전자를 상대로 운동을 시작했을 때 최소한 삼성전자 주가가 그때보다 두 배 세 배 더 가야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안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나.
―장하성펀드의 운용은 누가 하나?
▲코리아펀드의 운용 책임자였던 한국계 미국인 존 리가 한다. 코리아펀드는 스커더캠퍼가 운용했던 1조 원대 규모의 펀드로 외국인 최초의 국내 투자펀드였다.
엄격하게 얘기하면 장하성펀드는 라자드랑 하는 게 아니라 운용역인 존 리를 보고 하는 것이다. 그는 지배구조개선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스커더캠퍼의 닉 브랫 사장이 라자드로 이적하면서 라자드 쪽에서 제의가 왔다. 그때 내가 “라자드랑은 안한다. 헤드펀드매니저가 중요하다”고 하자 닉이 존 리를 라자드로 스카우트해왔다. 라자드애셋매니지먼트는 자산규모가 1000억 달러로 일본에만 진출해있을 뿐 신흥시장 진출은 장하성펀드를 통해서 한국이 처음이다.
▲국내 시민단체에도 지원하고 동남아 경제운동단체에도 지원하고 싶다. 소유지배 문제는 아시아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장하성펀드가 어떤 종목에 투자하고 문제제기를 통해 좋은지배구조 기업이 된다면 주가가 오를 것이고 그러면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내가 그 수수료를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고, 사회에 기부하기 때문에 운동의 정신이 훼손될 일도 없을 것이다.
―최근 참여연대의 신세계 차명주식 의혹 제기는 그간에 보여왔던 참여연대의 문제제기 방식과는 좀 다르다.
▲참여연대는 근거없고 확신없는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대한생명 건으로 최순영 전 회장과 관련된 사안을 방송에 공개해서 최순영씨가 나를 고소한 적이 있지만 결국 최 전 회장이 감옥에 갔다. 이번 신세계 건도 내가 구체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확신이 있기 때문에 공개했을 것이다.
―지난 7월 대한상의 제주도 세미나에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전문경영인’이라고 표현해 화제가 됐었는데.
▲이 회장 일가의 삼성 지분이 3.5%다. 이걸 오너라고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지분이 없는데 무슨 오너냐. 재벌 총수 중에는 오너라고 불릴 만한 지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오너처럼 행동하는 총수만 있을 뿐이지.
이 회장은 절대지분이 없어도 경영권 행사를 한다. 과거에는 이런 것을 문화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시장이 발달하고 지분이 분산되고 있다. 이 회장 같은 경우는 성과를 내니까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뿐이다.
경영권 유지방법에는 절대지분을 확보하는 방법과 절대지분 없이 경영을 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제일 좋은 것은 경영을 잘하는 것이다.
경영권은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은 난센스다. 정권도 바뀌고 경쟁의 대상이 되는데 왜 경영권은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나. 경영권에 대한 도전과 응전을 통해서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
절대지분이 안 되는데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경영을 잘하면 된다. 다만 경영을 잘못했다면 책임을 지면 된다. 절대지분이 안 되는 오너들은 공에 대한 보상과 실에 대한 보상이 같아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해법은.
▲국내에서 은행 없는 금융그룹이 가능한가.
예전에는 삼성그룹의 다른 제조업 회사들이 삼성생명의 돈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룹에 금융계열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삼성생명의 돈을 삼성전자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금조달 통로도 아니다. 오히려 전자 입장에선 삼성생명이 부담이다.
삼성생명 입장에선 미래에셋이나 동원금융 등과 경쟁을 펼쳐야 한다. 은행이 방카슈랑스를 하면 은행 없는 금융그룹은 경쟁력이 없다. 그래서 보험사들 중심으로 방카슈랑스를 막아놨는데 이걸 언제까지 막을 수 있나.
삼성이 금융과 전자를 같이 가져갈 방법이 없다.
―지난 2005년 8월 학장 취임 뒤 앙숙(?)으로 알려진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을 수업에 초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그런 관계 아니다. 윤 부회장과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서로 존중해오는 관계였다. 그래서 내가 학장이 되고 과목 개설을 주도할 만한 상황이 되자 ‘바른경영 가치경영’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재벌그룹 경영인(윤종용), 재벌그룹이 아닌 전문 경영인(이구택 포스코 회장), 신흥경영인(박병엽 팬택 부회장), 노동계(심상정 민노당 의원), 금융계(김승유 하나금융 이사회 의장) 등을 초빙해 강의를 맡겼다. 이는 참여연대 활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바른 방식에 의한 가치창출, 사회적 비용 없는 가치 창출’에 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삼성전자의 문제점이 아직도 남아있나.
▲삼성전자는 좋은 회사가 됐다. 이를 테면 오너의 이익과 관련된 ‘나쁜 짓’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과거처럼 삼성전자가 삼성자동차에 출자하는 것은 이제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다만 문제가 하나 남아있다면 삼성카드 지분이다. 이게 잠재 위험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치고 빠지기 식으로 돈만 챙겨간다는 비판이 있는데.
▲소버린이 SK㈜에 투자했다가 철수한 뒤 1년이 넘었지만 주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소버린의 지분은 15%였다. 소버린이 투자한 뒤 SK㈜는 시가총액이 1조 원에서 5조 3000억 원짜리 회사가 됐다. 소버린이 8000억 원을 벌었다면 나머지 85%의 주주들은 4조 5000억 원을 번 것이다. 나머지 85%의 주주 중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것은 대주주다. 누가 승자인가? 1년이 지나도 값이 안 떨어져 그 값이 거품이 아니라는 게 증명됐다. 소버린이 외국인이라는 감정적 차원을 빼면 국부는 4조 5000억 원이 늘어난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체제에서 기업의 가치는 국부이고, 부동산 거품 보다는 주식 시장에서 기업가치 상승이 실질가치의 증가이기도 하다.
그는 시장의 힘. 시장의 원리를 존중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는 삼성 포스코 현대차 등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을 배출해 세계 5대 제조업 국가로 꼽히는 나라에서 그런 기업에서 활동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이 세계 톱클래스가 못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몸담고 있는 대학을 적어도 아시아 톱클래스로 꼽히는 싱가포르국립대나 홍콩과기대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5대 제조국이면 그에 걸맞은 MBA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는 인터뷰 조건으로 학교 얘기를 꼭 써달라고 했다.
그의 운동 대상이 됐던 삼성전자나 SK텔레콤 등은 모두 주가가 두 배 이상 올랐다. 그는 국내 경영대학원에 대한 평판도 그만큼 올릴 것이라고 했다. 올 가을학기 고려대 경영대학원 신입생의 3분의 1인 25명은 13개국에서 온 외국인이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