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명주식 논란으로 신세계가 또 곤혹스런 지경에 빠졌다. 사진은 정용진 부사장. | ||
참여연대는 총수일가가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하고 있던 주식의 가치가 수천억 원대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현재 신세계 총 발행주식 수(1886만 주)와 8월 10일 현재 주가(48만 원)로 환산하면 수십만 주에 해당하며 지분율 1~10%를 오간다.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용진 부사장의 신세계 지분이 4.86%임을 감안하면 이명희-정용진 경영권 승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정도의 지분인 셈이다. 물론 이는 참여연대 주장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의 이야기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신세계 임원이 관리하고 있던 차명 지분이 발각돼 국세청이 이에 대한 수백억 원대의 세금 추징작업에 이미 들어간 상태”라고 밝혔다. 국세청의 추징 과정에서 참여연대 측에 정보가 입수된 것이 이번 폭로의 근거가 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함구하고 있다.
한편 신세계는 어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신세계 측은 “대꾸할 가치가 없다”며 “이번 건에 대해 뭐라 길게 설명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며 절대 사실이 아님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측은 “확실한 근거가 있어서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 맞받아친다. 참여연대 측은 “신세계 측의 증권거래법 등 실정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세금 추징만으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신세계가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고 진실을 밝혀줄 수 있는 국세청이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 이번 논란은 기나긴 진실공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참여연대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명희-정용진 모자를 필두로 한 총수일가의 주식을 누가 나서서 차명 관리했는가에 대한 점이 핵심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측은 “임원급인 것으로 안다”고만 밝혔다. 이와 관련, 재계 호사가들의 궁금증을 부풀리는 대목이 하나 있다. 지난해 신세계의 한 임원이 퇴직하면서 본인이 갖고 있던 신세계 지분 0.2%를 모두 처분한 것. 그런데 같은 시기에 정 부사장의 지분이 0.2% 증가했다. 이를 지켜본 일부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 ‘전직 임원이 차명계좌 주인일 것’이란 추측이 나돌고 있지만 신세계 측은 “대응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라 못박는다.
어차피 국세청은 세금 추징 과정에 대해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참여연대의 주장에 대해 신세계가 극구 반박할 경우 진실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상황을 참여연대가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참여연대가 공개적으로 포문을 연 배경 중 하나로 지난 4월 참여연대와 신세계 간의 맞고발을 꼽는 사람들이 있다. 참여연대가 신세계 정용진 부사장의 주식 취득과정의 문제점을 제기했을 때 신세계가 이를 맞고발한 것을 두고 재계 일각에선 “속시원하다”는 소리마저 터져 나왔다. 참여연대가 재벌의 지분승계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나올 때마다 수세를 취하기 바빴던 재벌들 입장에선 신세계의 공세적 대응에 대한 ‘조용한 지지’를 보냈던 것이며 이는 참여연대를 더욱 자극했을 것이란 평이다.
참여연대의 ‘삼성에 대한 스탠스’를 이번 사태와 비교해 거론하는 시각도 있다.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해왔으며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로 꼽히는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53)이 삼성 이건희 회장을 전문경영인으로 표현한 것에 대한 입방아들이 많아진 것이다. 장 교수는 지난 7월 20일 제주도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린 강연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과 그 가족 지분은 3.5%에 불과해 전문경영인에 가깝다”고 발언해 화제에 오른 바 있다. 이건희 회장 여동생인 신세계 이명희 회장을 비롯한 총수일가의 신세계 지분율이 28.67%라는 점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관계자는 “삼성을 국제적 명성을 지닌 기업으로 키워낸 이건희 회장에 대해선 참여연대가 전부터 ‘결격사유 없는 CEO’로 평가해왔다”며 “특별히 신세계에 대해서만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문제가 발견돼 지적한 것일 뿐”이라 밝혔다. 그러나 재계 호사가들 중에는 이번 사태의 배경을 삼성과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 삼성 측과의 ‘사전 상의 없이’ 신세계가 상속세 1조 원 헌납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삼성이 불편해한다는 시각 탓이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중에 터져 나온 신세계의 1조 원 상속세 발언은 이미 8000억 원 출연을 약속한 삼성에게 또 다른 짐을 안겨주었다는 관점이 부각된 것이다. 이는 ‘삼성이 신세계 관련 정보를 흘리고 다닌다’ ‘이건희-이재용 총수부자에 대한 소환여론을 희석시키려는 삼성의 의도가 표출됐을 수도 있다’는 등 다소 민감한 추측으로까지 이어졌다.
신세계의 상속세 발언이 이번 참여연대의 폭로 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조 원 상속세 발언이 있던 5월 말은 참여연대가 주장하는 ‘국세청이 신세계의 차명계좌를 발견해 세금을 추징하기 시작한 시점’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이는 갑작스레 터져 나온 신세계의 상속세 발언이 정치권과 권력기관으로부터 면죄부를 얻어내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신세계는 이에 대해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참여연대의 지난 4월 고발로 점화된 검찰의 신세계 편법증여 조사과정에서 이번 차명주식관리 건이 터져 신세계의 속을 더 쓰리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세계 건과 삼성에버랜드 건 담당검사인 서울지검 이원석 검사가 이번 검찰인사에서 수원지검으로 발령받았지만 파견근무 식으로 서울지검에 머물며 신세계와 삼성 건을 계속 담당해나갈 것이란 점도 범 삼성가 인사들을 ‘웃다가 울게’ 만들었다는 평까지 등장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