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사업을 키워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신동빈 부회장이 드디어 시험대에 섰다. 그는 과연 우리홈쇼핑 인수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 ||
특히 올해 초 롯데쇼핑을 상장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롯데그룹이 상장으로 마련한 3조 원이 넘는 자금으로 이렇다 할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다 보니 ‘롯데의 덩치만을 믿을 수는 없다’는 인식을 해소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다. 또 몇 년 전부터 롯데그룹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이 2세 경영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시험대에 서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세워 놓은 롯데를 바탕으로 신사업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롯데는 사업 확장과 기업 인수에 있어서 신중하기로 유명하다. IT열풍이 불었을 때도 성장성보다는 안정성이 있는 식음료, 유통에 집중했다. 까르푸 인수전에서도 ‘가격이 비싸면 무리해서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높은 가격을 베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우리홈쇼핑을 인수할 때도 예상 가능한 장애물에 대한 복안을 세워놓고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시장의 반응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있다는 롯데는 소리 없이 후속 작업을 진행중이라고 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방송위원회로부터 지배주주변경 승인을 받는 것. 주변 여건은 롯데에 우호적이지 않다. 우리홈쇼핑 대주주였던 경방이 2004년 4월 방송위원회로부터 재허가를 받을 때 “3년간 보유 주식을 처분하지 않고, 경영의 안정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서약서를 썼기 때문이다. 당시 서약서를 쓴 이유가 롯데의 우리홈쇼핑 인수설 때문이었는데, 결국 서약서 내용을 어기고 롯데에 지분을 처분하게 된 것이다.
서약서 내용이 알려진 뒤 경방은 적대적 M&A 때문에 경영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려워 지분을 매각한 것이므로 허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심스럽게 방송위 결정을 기다린다며 태도를 바꿨다. 롯데는 “서약서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고, 관행적으로 제출하던 것이다. 방송위에서 요구한 것이 아니고 경방이 협조를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낸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서약서 말미에는 ‘당사의 지분율이 적어 지배주주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홈쇼핑의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여 TV홈쇼핑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조치를 방송위원회에서 강구해 주기 바란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경영 안정성을 유지하는 대신 방송위가 경영권 위협에 대해서는 보장을 해달라는 얘기다.
결국 서약서의 내용은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는 셈. 우리홈쇼핑을 두고 경방과 지분 경쟁을 벌이던 태광은 “지금 롯데가 지배주주 승인을 받기 위한 물밑작업을 진행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광도 케이블방송사업자인 티브로드를 가지고 있어 방송정책과 운영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방송위를 둘러싼 논리 대결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가 홈쇼핑 진출 사업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경험도 방송위 결정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1994년, 2001년 두 차례 홈쇼핑 업체 선정 때마다 롯데가 떨어진 것은 당시 대기업을 배제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소기업의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 때문에 최종적으로 경방, 아이즈비전, 행남자기 등 중소기업 컨소시엄인 우리홈쇼핑에 돌아갔다.
또 CJ홈쇼핑, GS홈쇼핑, 현대홈쇼핑 등 기존 홈쇼핑 업체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금동원력이 뛰어난 롯데그룹이 홈쇼핑 사업에 뛰어들 경우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은 만큼 롯데의 지배주주 승인을 곱게 놔두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두 번째로 우리홈쇼핑의 가격 논란이다. 롯데쇼핑은 우리홈쇼핑 지분 53.03%를 4381억 원에 매입했다. 한 주당 가격은 11만 원이었다. 우리홈쇼핑의 지난해 매출액은 2463억 원으로 GS홈쇼핑의 5256억 원의 절반 수준이지만 매입가격은 GS홈쇼핑의 시가총액(지분 100%)인 4685억 원(8월 11일 종가 기준)과 비슷한 수준이다.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GS홈쇼핑의 4배 가까운 가격으로 산 셈이다.
롯데는 이에 대해 “미래 가치와 시장진출 프리미엄을 봤을 때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롯데는 오프라인 유통망은 구축이 잘 되었는데, 온라인 유통망이 취약하다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해마다 온라인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 롯데닷컴이 있지만 온라인 쇼핑몰은 홈쇼핑 방송과 연계된 업체가 잘된다는 점이 홈쇼핑에 욕심을 낸 이유다.
그리고 홈쇼핑은 생산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영업이익률이 상당히 높은 업종인 데다 우리홈쇼핑의 이익률이 타사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GS홈쇼핑이나 CJ홈쇼핑을 롯데가 매입한다고 하면 1조 원이 넘는 가격을 부를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라며 시장 진출 프리미엄에 비해 비싼 가격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SO(방송망 사업자) 확보다. 홈쇼핑은 공중파 사이에 채널을 확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두 배 가까이 차이난다고 할 정도로 채널 결정권을 가진 SO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CJ홈쇼핑은 200만 가구를 확보한 CJ케이블넷, 현대홈쇼핑은 100만 가구를 확보한 HCN을 계열사로 두고 있고, GS홈쇼핑은 뒤늦게 SO 인수에 뛰어들어 40만 가구를 확보하고 있다. 당장 롯데가 홈쇼핑 사업에 뛰어들어도 기존 SO 확보 없이는 채널 주도권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롯데 측은 SO 확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복안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M&A 계약을 체결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향후 조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사업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단계가 아니다”는 것. 그러면서도 내심 태광의 협조를 바라는 눈치다. “태광도 대주주로서 우리홈쇼핑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서로 윈-윈하는 길”임을 내세우고 있다.
300만 가구를 가지고 있는 국내 최대 SO인 티브로드를 계열사로 둔 태광은 롯데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롯데의 의도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홈쇼핑의 대주주라고 해도 티브로드가 국내 최대 SO로서 특정 업체를 밀어줄 경우 다른 업체들이 형평성 문제를 거론할 것이기 때문에 롯데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입장이다.
롯데가 홈쇼핑 인수와 동시에 몇몇 지역 SO들을 인수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기 시작했다. 태광 관계자는 “GS홈쇼핑이 뒤늦게 SO의 중요성을 깨닫고 가구당 130만 원의 비싼 가격으로 강남케이블방송을 사들인 것처럼, 롯데가 최소한의 베이스가 되는 100만 가구를 확보하려 해도 1조 원이 넘는 가격이 들 것이다. 결국 가지고 있는 현금을 다 거기 쏟아부을 셈인가”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한편 롯데가 우리홈쇼핑을 인수한 이후에도 사명을 롯데홈쇼핑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명 변경은 회사 정관 변경 사항으로 의결권 있는 주식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아야 가능하다. 46% 지분을 가지고 있는 태광이 있는 한 롯데가 뜻대로 홈쇼핑 사업을 벌이기는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